우주 기술 경쟁은 국가 방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 나라 간 ‘패권 다툼’으로 여겨지곤 합니다. 우주 산업은 미국과 소련이 냉전기 때 체제 경쟁의 상징으로 삼으며 발전해왔죠. 현재 우주 기술 개발은 과거와 달리 민간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시장성이 열린 우주 시대에 맞춰 개발 로드맵을 내놨습니다.
▲ 누리호가 10월 21일 오후 5시 전라남도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되고 있는 모습.(사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
▲ 누리호가 10월 21일 오후 5시 전라남도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되고 있는 모습.(사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

15일 대전 유성구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에서 제21회 국가우주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김부겸 국무총리가 국가우주위원장으로 주재한 첫 회의다. 위원들은 △우주산업 육성 추진 전략 △한국형위성항법시스템 개발 사업 추진계획 △국가우주위원회 운영 계획을 심의·의결했다.

정부는 이날 ‘10년 후에는 우주 비즈니스 시대를 연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우주개발 로드맵도 제시했다. 아직 성장 초기 단계인 국내 우주산업 역량을 한 단계 도약시키기 위한 구체적 실천계획이 나왔다.

세계 우주 시장 1% 차지…‘패스트 팔로어’ 전략 도입
정부의 이번 발표는 우리나라의 ‘뉴 스페이스(New Space)’의 진입과 무관치 않다. 현재 세계 우주개발의 추세는 ‘민간 주도’로 압축된다. 정부가 개발 사업을 제시하고 기업이 따라오던 기존 방식인 ‘올드 스페이스(Old Space)’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달 21일 700km 상공에 도달하는 비행을 마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를 개발하며 뉴 스페이스 시대에 진입한 것으로 평가된다. 12년 개발 과정 기간 동안 약 2조원이 투입된 국가 단위 사업인 누리호 프로젝트엔 약 300개의 국내 기업 참여했다. 정부는 향후 추가 발사를 통해 누리호의 핵심 기술을 민간에 완전히 이전할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누리호를 통해 1t급 대형위성을 스스로 발사할 수 있는 국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2022년 5월 누리호 2차 발사가 성공한다면 세계 7번째로 자체 우주 운송 수단을 갖춘 국가가 된다.

누리호를 통해 우주 산업의 역량을 끌어올렸지만, 갈 길이 멀다. 외교적 문제 등으로 우주 산업에 비교적 뒤늦게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해외 민간 우주탐사 기업 스페이스X·블루오리진·버진갤럭틱 등이 올드 스페이스의 유산을 이어받아 다양한 성과를 올린 점과 사뭇 대조된다. 이들 기업의 역사는 20년 안팎에 불과하지만 △재사용 가능한 우주발사체 확보(스페이스X) △지구 전역에서 이용 가능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구축(스페이스X·현재 위성 1700대 이상 운용) △민간 우주여행 성공(스페이스X·블루오리진·버진갤럭틱) 등의 기록을 세웠다.

▲ (자료=과학기술정보통신부)
▲ (자료=과학기술정보통신부)

민간 영역의 우주 개발 역량 차이는 시장 규모에서도 나타난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세계 우주산업 시장 규모는 2019년 기준 3660억달러(약 431조5000억원)로 추산된다. 이 중 민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2707억달러(약 319조1550억원)에 달한다.

우리나라는 이 대형 시장에 1% 정도만 차지하고 있다. 국내 우주산업 규모는 3조2610억원 수준이다. 국내엔 359개 기업이 우주산업에 진출해있는데, 이 중 연매출 10억원 미만 기업이 227개다. 스페이스X·블루오리진·버진갤럭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기업은 없다.

▲ 스페이스X의 재사용 우주발사체 팰컨9.(사진=스페이스X)
▲ 스페이스X의 재사용 우주발사체 팰컨9.(사진=스페이스X)

정부는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민간 우주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국가우주위원회 위원장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서 국무총리로 격상했다. 격상의 이유론 ‘연구개발 중심에서 외교·안보·산업 등 종합정책으로 확대되고 있는 우주 정책 총괄·조정을 위해’라고 밝혔다. 국가우주위원회 산하엔 안보우주개발실무위원회가 신설된다.

정부는 이날 회의의 개최 취지로 “우주개발이 냉전기 미·소 간 체제 경쟁으로 시작됐지만, 이제는 에어백·정수기·자기공명영상장치(MRI)·컴퓨터단층촬영(CT) 등 우리 생활 곳곳에서 다양한 우주기술이 활용되고 있다”며 “위성·발사체 제작 외에 위성항법우주인터넷·우주관광 등 신산업을 통해 민간이 주도하는 ‘뉴스페이스’시대에 진입하였다는 공감대하에 개최됐다”고 전했다.

정수기·전자레인지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이 1960년대 ‘사람을 달로 보낸다’는 아폴로계획을 진행하면서 식수와 음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한 기술로 탄생한 제품이다. 정부는 우주 산업의 육성을 통해 민간이 이 같은 이차적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독려할 방침이다.

▲ 스페이스X는 저궤도 소형위성 수만 개를 쏘아 올려 지구 전역에서 이용 가능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구축하는 사업인 ‘스타링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사진은 스타링크 구상도.(사진=스페이스X)
▲ 스페이스X는 저궤도 소형위성 수만 개를 쏘아 올려 지구 전역에서 이용 가능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구축하는 사업인 ‘스타링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사진은 스타링크 구상도.(사진=스페이스X)

대한민국 대표 우주기업 만든다
정부는 우주산업 육성 추진 전략을 통해 우리나라 대표 우주기업을 만들겠단 청사진을 그렸다. 우주 기술은 미사일 등 군사 전략으로 이어질 수 있어 국가 간 기술 전수가 극도로 제한된 분야로 꼽힌다. 독자 개발할 수밖에 없단 의미다. 정부는 기반 인프라를 확충해 우리 기업의 기술력 성장을 도울 계획이다.

정부는 구체적으로 2022년부터 2031년까지 공공목적의 위성을 총 170여기 개발하겠단 계획을 세웠다. 국내 발사체도 위성개발과 연계해 약 40회 발사된다. 민간과 공동 개발하는 식으로 사업을 진행, 기업의 우주개발 참여 기회를 넓힌다.

▲ (자료=과학기술정보통신부)
▲ (자료=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정부는 특히 민간의 다양한 아이디어 실현을 지원하기 위해 나로우주센터 내에 기업 전용 발사체 발사장도 구축한다. 우주산업 거점으로서 발사체·위성·소재·부품 등의 우주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내용도 우주산업 육성 추진 전략에 담겼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기업이 마음 놓고 우주개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하고 창의·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된다”며 “기업이 기술 경쟁력을 확보한 부분부터 단계적으로 계약방식을 도입하고, 기술료 감면·지체상금 완화로 부담을 경감하는 등 기업이 마음 놓고 우주개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정책이 운용된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특히 세계 우주산업의 93.6%를 차지하는 위성TV·위성통신·지구관측 등 위성정보산업 관련 산업에 역량을 집중한다. 위성정보 개방성 확대를 통한 사업화를 지원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겠단 계획이다. 스마트폰·자율자동차 등 한국형위성항법시스템 연관 산업을 발굴하고, 6G 위성통신기술 및 서비스를 실증해 민간이 상용화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다.

▲ 국가우주위원회 구성.(자료=과학기술정보통신부)
▲ 국가우주위원회 구성.(자료=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주개발 역사상 최대 규모 사업 ‘KPS’ 추진
국가우주위원회가 이날 추진계획을 의결한 ‘한국형 위성항법시스템(Korean Positioning System·KPS) 개발’은 우리나라 우주개발 역사상 최대 규모의 사업으로 꾸려진다. KPS엔 2022년부터 2035년까지 14년간 총 3조7234억5000만원의 사업비가 투입된다. 이는 누리호 개발사업보다 약 1조8000억원 많다.

정부는 KPS를 통해 4차 산업혁명 인프라를 구축할 방침이다. 초정밀 위치·항법·시각 정보서비스를 제공하는 한국형 위성항법시스템 개발해 신규 산업군의 진흥을 촉진할 계획이다.

▲ 한국형 위성항법시스템 구상도.(자료=과학기술정보통신부)
▲ 한국형 위성항법시스템 구상도.(자료=과학기술정보통신부)

위성항법시스템은 다수의 인공위성을 이용해 정확한 위치·항법·시각 정보를 제공한다. 교통·통신 등 경제·사회 전반의 기반기술이자 자율주행차·도심항공교통(UAM) 등 4차 산업혁명 신산업을 위한 핵심 인프라로 꼽힌다. 정부는 2018년 2월 ‘제3차 우주개발 진흥 기본계획’을 수립하며 한국형 위성항법시스템 개발 계획을 반영한 바 있다. 이날 국가우주위원회 회의에선 사업 착수를 위한 세부계획이 마련됐다.

정부는 또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에서 산업체로 기술을 적극적으로 이전해 KPS의 초정밀 위치·항법·시각 서비스를 활용한 서비스 산업을 육성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항우연 내 ‘KPS개발사업본부’가 설치된다. 향후 ‘KPS위원회’와 ‘KPS개발운영단’ 등의 전담추진체계 마련을 위해 ‘국가 통합항법체계의 개발 및 운영에 관한 법률(가칭)’ 제정도 함께 추진한다.

정부는 “KPS가 구축되면 유사시에도 금융․전력․통신․교통망 등 주요 국가기반 인프라의 안정성이 확보될 것”이라며 “cm급 초정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 자율주행차, 도심항공교통(UAM) 등 4차 산업혁명 신산업을 위한 기반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 김부겸 국무총리가 15일 대전 유성구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열린 제21회 국가우주위원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사진=국무총리실)
▲ 김부겸 국무총리가 15일 대전 유성구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열린 제21회 국가우주위원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사진=국무총리실)

김 총리는 이날 “짧은 우주개발의 역사에도 우리는 우리 땅에서 우리 손으로 만든 누리호를 발사해 세계 7번째로 1t급 이상의 대형위성을 스스로 발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나라가 됐다”며 “우주선진국은 우주기술을 넘어 우주 비즈니스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오늘 이 자리에서 우주기업을 키우고 강한 자생력을 갖춘 우주산업 생태계를 만드는 것을 우리의 다음 목적지로 설정해 정책적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신연우 국가우주위원회 민간위원(한화에어로스페이스)은 “국민이 원하는 인프라 서비스와 부가가치 창출 및 국내 우주산업 전반에 걸친 발전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회의를 마치고 항우연 내 연구현장을 찾아 누리호 발사 결과를 청취했다. 달 궤도선, 지상정밀관측위성인 다목적 실용위성 6·7호 제작현장도 시찰했다. 우리나라는 내년 5월 누리호 2차 및 8월 달 궤도선 발사 등을 앞두고 있다. 김 총리는 “우리 우주개발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정부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한화가 ‘서울 ADEX 2021’ 전시를 통해 일반에 공개한 누리호 75t급 엔진. 누리호 1단에 4기, 2단에 1기가 탑재됐다.(사진=정두용 기자)
▲ 한화가 ‘서울 ADEX 2021’ 전시를 통해 일반에 공개한 누리호 75t급 엔진. 누리호 1단에 4기, 2단에 1기가 탑재됐다.(사진=정두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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