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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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 풀었던 빗장을 잠근다. 유럽 국가들의 정책 선회가 국내 바이오·제약 기업들에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단 기대가 나온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바이오·제약 기업들이 유럽 일부 국가들이 다시 봉쇄 정책을 시행하는 데 따른 시장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코로나19 진단·치료·백신 개발에 나선 국내 기업들이 속속 성과를 내는 만큼 신규 시장 진출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도 제기되는 모양새다.

‘위드 코로나’로 세계 훈풍…경제적 효과 뚜렷
유럽 국가들은 높은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을 기반으로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 정책을 선제적으로 도입했다. 영국이 지난 7월 19일 코로나19에 대한 ‘자유의 날’을 선언하며 앞장섰다. 아스트라제네카의 종주국인 영국은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가장 먼저 도입한 국가이기도 하다.

영국을 시작으로 유럽 대다수 국가가 위드 코로나 정책을 시행했다. 국가별 세부 사안은 상이하지만 △마스크 착용 의무 완화 △백신 패스(백신 접종자의 한해 모임 인원 제한 등 출입 조건 완화) △공연 재개 등과 같이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정책들이 도입됐다. 유럽의 위드 코로나는 프리미어리그 경기 중계 중 마스크를 쓰지 않은 대규모 관람객의 모습이 잡히며 세계에 상징적으로 전달되기도 했다.

▲ 영국 프로축구 1부리그인 프리미어리그 경기장에 코로나19 상황에도 관중이 가득 들어차 있다.(사진=게티이미지)
▲ 영국 프로축구 1부리그인 프리미어리그 경기장에 코로나19 상황에도 관중이 가득 들어차 있다.(사진=게티이미지)

유럽 국가들의 위드 코로나 선제적 도입 후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싱가포르 등 세계 각지에서 이와 비슷한 정책을 시행했다. 위드 코로나 정책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며 세계엔 훈풍이 불었다. 대면 교류가 재개되자 경제도 활성화됐다.

실제로 한국은행(한은)이 최근 발표한 ‘주요 선진국 위드 코로나 정책 추진 현황 및 경제적 영향’을 보면 방역조치 완화는 소비회복으로 이어졌다. 한은이 미국·영국·독일·아일랜드·호주·멕시코·캐나다 등 7개국의 정책효과를 실증 분석한 결과, 위드 코로나는 경제주체의 이동성을 크게 향상시켰다.

▲ (자료=한국은행)
▲ (자료=한국은행)

소비회복 효과는 음식점·여가시설 부문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한은은 옥스포드대학이 만든 코로나19 정부 대응 ‘엄격성지수’를 기반으로 각국 현황을 조사했다. 방역조치 강도(0~100)가 10포인트 하락하면 음식점·여가시설 방문자수가 약 5%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식료품점 방문자수도 1.6% 증가했다. 엄격성지수는 △학교 및 직장 폐쇄 △공공행사 취소 △여행금지 등 국민의 이동 및 경제활동 제약을 평가해 측정된다.

위드 코로나 정책 추진은 코로나19에 대한 경제주체의 민감도 하락을 촉진시키는 요인으로도 작용했다. 민감도 하락 역시 소비회복에 기여하는 요소로 꼽힌다. 영국의 경우 방역조치가 크게 완화된 이후 신규 확진자수와 구글 검색량 간 상관계수가 크게 하락했다. 1~7월엔 0.86을 기록했지만 위드 코로나 도입 후인 7~10월엔 0.27로 떨어졌다. 미국 역시 이와 비슷한 현상을 보였다.

▲ (자료=한국은행)
▲ (자료=한국은행)

추운 날씨에 확진자 급증…위드 코로나 세계 확산, 제동 걸리나
위드 코로나의 경제적 효과가 나타나면서 세계적 확산 추세에 가속도가 붙던 중 문제가 발생했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날씨가 추워진 탓이다. 세계보건기구 유럽사무소 통계에 따르면 12일(현지시간) 기준 7일간 발생한 유럽의 신규 확진자 수는 211만7003명이다. 이 기간 2만8166명이 사망했다.

유럽 일부 국가는 이에 따라 봉쇄 조치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돌파감염(코로나19 백신을 맞고도 확진된 사례) 증가도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고, 사망자·위중증 환자 수도 높아지면서 각국 보건 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코로나19 확진자 급증으로 병상이 부족해지자 의료 체계에 구멍이 뚫렸다는 현지 언론들의 지적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유럽 국가 중에선 네덜란드가 가장 먼저 위드 코로나 정책을 선회했다. 12일(현지시간)부터 △상점 영업시간 제한 △모임 참석자 수 제한 △스포츠 경기의 무관중 진행 등을 도입했다. 9월 25일 위드 코로나 선언 이후 두 달도 안 돼 다시 방역 수준을 대폭 높였다.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하루 1만6000명 수준까지 오른 데 따른 극약처방이다. 네덜란드 전체 인구가 약 1744만명에 불과한 점을 고려하면 확진자 수 증가가 매우 가파르다.

오스트리아도 백신 미접종자를 대상으로 한 전국적인 봉쇄 조치를 시행했다. 15일(현지시간)부터 백신 미접종자는 생필품 구매와 같은 기본적인 외출만 가능하다. 오스트리아의 최근 일일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1만3000명 수준이다.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거리 모습.(사진=픽사베이)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거리 모습.(사진=픽사베이)

확진자 급증, 국내 바이오 기업에 기회 될까…“백신+α 필요”
코로나19 확진자 급증은 유럽뿐 아니라 방역 완화를 도입했던 국가들 모두에서 나타나고 있다. 위드 코로나를 도입한 국가는 대부분 백신 접종률 70% 안팎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돌파감염 사례가 증가하면서 부스터샷 접종 장려는 물론 치료제·진단키트의 수급 중요성도 함께 높아지고 있는 양상이다.

우리나라 바이오 기업들은 최근 코로나19 관련 제품의 성과를 내고 있다. 이 시기가 세계 확진자 급증 추세와 맞물리며 더욱 주목받고 있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백신 접종만으론 위드 코로나를 완성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퍼져가고 있는 분위기”라며 “원활한 치료제 수급과 진단키트 확보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기업 중 가장 먼저 성과를 낸 기업은 셀트리온이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는 셀트리온이 개발한 ‘국산 1호’ 코로나19 항체치료제 ‘렉키로나(성분명 레그단비맙)’의 정식 품목허가를 지난 11일(현지시간) 승인했다. 이는 유럽의약품청(EMA) 산하 약물사용자문위원회(CHMP)로부터 ‘승인 권고’ 의견을 획득한 지 하루 만에 이뤄졌다. EC는 CHMP 의견 접수 후 통상 1~2개월 이내에 정식 품목허가 여부를 발표한다. EC가 매우 이례적으로 렉키로나의 승인을 처리한 것으로 해석되는 이유다. 회사 관계자는 “유럽 내 코로나19 확진자 증가 추이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 셀트리온 렉키로나 제품 이미지.(사진=셀트리온)
▲ 셀트리온 렉키로나 제품 이미지.(사진=셀트리온)

셀트리온이 판매 허가를 까다롭게 내리는 유럽 당국의 승인을 따내면서 글로벌 시장 진출이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 시장의 허들을 넘었다는 성과만으로도 안전성·효능 등에 대한 입증이 끝났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셀트리온은 EMA 승인을 획득한 최초의 국산 항체 신약을 개발한 업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됐다. 렉키로나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브라질·인도네시아에 이어 유럽에서도 사용된다.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렉키로나는 12일 기준 국내 129개 병원에서 2만2587명 환자에게 투여됐다. 아직 사망 사례는 물론 심각한 부작용도 보고되지 않았다.

셀트리온은 코로나19 치료제 외에 신속진단키트도 공급하고 있다. 지난 9월 미국 국방부 산하 조달청(DLA)의 공급업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최대 7382억원 규모의 코로나19 전문가용 항원 신속진단키트 ‘디아트러스트’를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김형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국방부 납품을 위해 셀트리온 미국법인에 일차적으로 공급한 1674억원 규모의 항원진단키트 중 일부가 올 4분기에 매출로 인식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 (자료=셀트리온 3분기 실적 보고서)
▲ (자료=셀트리온 3분기 실적 보고서)

대웅제약도 코로나19 진단키트 영역에서 성과를 냈다. 15일 베트남 최상위 제약사 중 하나인 비에타파마사와 약 120억원 규모의 코로나19 진단키트 수출판매계약을 체결했다.

베트남 정부는 최근 코로나19 일일 확진자가 8000명 수준을 보이고 있는 상황을 고려, 진단키트 1억개를 민간에 공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대웅제약은 공공입찰에 강점을 가진 현지 파트너사를 발굴,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해 연간 2000억원 규모로 추산되는 조달 물량을 집중적으로 공략할 계획이다.

▲ 대웅제약이 켈스사로부터 공급받아 베트남에 수출하는 올체크 코로나 항원검사 키트.(사진=대웅제약)
▲ 대웅제약이 켈스사로부터 공급받아 베트남에 수출하는 올체크 코로나 항원검사 키트.(사진=대웅제약)

삼성바이오로직스 역시 최근 코로나19 확진자 급증에 수혜를 볼 수 있는 기업으로 꼽힌다. 바이오의약품의 위탁개발생산(CDMO) 글로벌 1위 기업을 목표로 대규모 투자를 집행 중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현재 단일 공장 기준 세계 최대 생산시설인 3공장(18만L)을 확보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인천 송도 4공장(1조7400억원 투입)과 5·6공장(2조5000억원 투입)의 증설을 앞둔 상태다.

코로나19 치료제 수급에 대한 세계 수요가 높아지면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생산시설을 이용하려는 고객사가 증가할 수 있단 분석이 나온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금도 모더나 코로나19 백신 243만5000회분을 생산 중이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기존 위탁생산(CMO) 사업 외에도 코로나19 항체 치료제 CMO와 백신 완제 의약품 위탁 생산, mRNA 백신 원료 의약품 사업 등을 신규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다”며 “모더나 백신 위탁 생산 매출이 4분기부터 인식될 예정”이라고 분석했다.

▲ 삼성바이오로직스의 CDMO 수주·승인 현황.(자료=삼성바이오로직스 3분기 경영실적 보고서)
▲ 삼성바이오로직스의 CDMO 수주·승인 현황.(자료=삼성바이오로직스 3분기 경영실적 보고서)

코로나19 백신 개발 영역에선 SK바이오사이언스가 순항 중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지난 5일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이 우수한 효과를 보인다는 임상 결과가 나왔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해당 물질은 현재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등 14개 기관에서 건강한 성인 328명에 GBP510을 투여하는 임상 1·2상을 진행했다. 면역증강제를 함께 투여한 투약군 99% 이상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무력화하는 중화항체가 형성됐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국내 바이오산업은 비교적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세계 시장의 인식이 많았지만 최근 코로나19 관련 성과들이 나오면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며 “우리나라 바이오산업의 인식이 개선된다면 코로나19 외에도 추가적인 사업 발굴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 ‘GBP510’의 임상 1·2상 결과.(자료=SK바이오사이언스)
▲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 ‘GBP510’의 임상 1·2상 결과.(자료=SK바이오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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