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기술 경쟁은 국가 방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 나라 간 ‘패권 다툼’으로 여겨지곤 합니다. 우주산업은 미국과 소련이 냉전기 때 체제 경쟁의 상징으로 삼으며 발전해왔죠. 현재 우주 기술 개발은 과거와 달리 민간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시장성이 열린 우주산업의 국내외 소식을 알기 쉽게 소개합니다.
▲ 스페이스X의 팰컨9 로켓이 24일 오후 3시 21분 미국 캘리포니아주 밴덴버그 우주군 기지에서 이중소행성경로변경실험(DART) 우주선을 싣고 발사되고 있는 모습.(사진=미국 항공우주국)
▲ 스페이스X의 팰컨9 로켓이 24일 오후 3시 21분 미국 캘리포니아주 밴덴버그 우주군 기지에서 이중소행성경로변경실험(DART) 우주선을 싣고 발사되고 있는 모습.(사진=미국 항공우주국)

미국 우주탐사기업 스페이스X가 또 새로운 역사를 썼다. 인류의 첫 소행성 충돌 방어 실험에 우주발사체를 제공하며 기술력을 입증해냈다. 우리나라 역시 스페이스X와 같은 세계적 우주 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 같은 성과를 내기엔 아직 갈 길이 먼 것으로 평가된다.

스페이스X의 로켓 ‘펠컨9’를 통해 발사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이중소행성경로변경실험(DART·Double Asteroid Redirection Test) 우주선은 28일 현재 소행성 디모르포스(Dimorphos)에 충돌하기 위해 우주 공간을 비행 중이다. 스페이스X는 지난 24일 오후 3시 21분 미국 캘리포니아주 밴덴버그 우주군 기지에서 DART를 성공적으로 발사하며 ‘뉴 스페이스(New Space)’ 시대의 선두 입지를 더욱 공고히 했다.

스페이스X는 국가 단위의 우주 개발 사업에서도 이루지 못한 성과를 내고 있다. 스페이스X는 이번 DART 발사 외에도 △재사용 우주발사체 운용 △지구 전역에서 이용 가능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구축(현재 인공위성 1700대 이상 운용) △전원 민간인으로만 구성된 우주관광 성공 등의 업적을 남겼다. 우리나라가 이제 막 자체 우주 운송 수단 확보에 나선 것과 대조된다.

▲ 스페이스X의 재사용 우주발사체 팰컨9.(사진=스페이스X)
▲ 스페이스X의 재사용 우주발사체 팰컨9.(사진=스페이스X)

1969년 달에 사람 보낸 美…1987년 자체 발사체 필요성 제기된 韓
우리나라도 지난 10월 21일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를 우주로 보내며 ‘민간 주도 우주 개발 시대’의 진입을 알렸다. 스페이스X와 같은 굵직한 우주 기업들은 국가에서 개발한 기술들을 이전받으며 빠르게 사업 외연을 확장했다. 정부는 이 같은 전략을 도입해 국내 우주 산업의 규모를 키우겠단 청사진을 그렸다. 정부는 향후 누리호 추가 발사 등을 통해 국가 우주 기술을 민간에 이전할 계획이다.

우리나라가 정책적 지원에 나섰지만 국내에서 세계 선두의 우주 기업 탄생은 아직 요원하다. 우주 강국인 미국·러시아 등에 비해 기반 기술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1960년대 이미 달에 사람을 보낸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 자체 우주 발사체의 필요성이 제기된 시점은 1987년이다. 당시 천문우주과학연구소(현 한국천문연구원)이 로켓 개발 등에 관한 기초 연구를 시행하면서 국가 차원 개발이 뒤늦게 시작됐다. 그러나 이마저도 각종 외교 문제를 겪으며 속도를 내지 못했다.

▲ 우리나라의 발사체.(자료=한국항공우주연구원)
▲ 우리나라의 발사체.(자료=한국항공우주연구원)

우주 기술은 ‘해외 수입’이 극도로 제한된 분야다. 우주 산업 발전이 미사일 고도화 등 군사 전략 증강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각국이 우주 기술을 독자 개발하고 있는 이유다. 특히 발사체의 경우 외교적 분쟁의 원인으로 작용, 연구·개발(R&D) 자체가 제한되기도 한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1990년대부터 개발해오던 고체연료 기반의 우주개발 발사체를 외교적 문제 때문에 중단, 액체연료 사용으로 방향을 선회하기도 했다.

국내 민간 우주 시장도 이에 따라 뒤늦게 성장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 발표에 따르면 세계 우주산업 시장 규모는 2019년 기준 3660억달러(약 431조5000억원)로 추산된다. 이 중 민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2707억달러(약 319조1550억원)에 달한다. 국내 우주산업 규모는 3조2610억원 수준이다. 세계 우주 산업 시장에 1% 정도만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국내엔 359개 기업이 우주산업에 진출해있는데, 이 중 연매출 10억원 미만 기업이 227개다. 스페이스X는 물론 최근 민간인을 대상으로 우주여행에 성공한 블루오리진·버진갤럭틱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국내 기업은 없다. 우리나라도 향후 국가 전략의 핵심으로 떠오를 민간 우주 산업 육성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는 이유다.

▲ (자료=과학기술정보통신부)
▲ (자료=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형차 크기 DART, 1100만km 날아 피라미드 크기 소행성과 충돌
국내 우주항공 기업의 한 관계자는 이번 DART 프로젝트에 대해 “서울에서 쏜 대포를 부산에서 총알로 맞추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그만큼 기술적 난도가 높다는 설명이다. 그는 “국내 기술로는 아직 꿈같은 이야기”라고도 했다.

빌 넬슨 NASA 국장도 “DART는 공상과학 소설을 과학 사실로 바꾸고 있다”며 “NASA는 우주와 지구를 연구하는 것 외에도 우리의 집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며, 이번 실험은 위협이 되는 소행성으로부터 지구를 보호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을 입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이중소행성경로변경실험(DART) 우주선을 밴덴버그 우주군 기지 내 스페이스X 탑재물 처리 시설로 옮기고 있다.(사진=미국 항공우주국)
▲ 이중소행성경로변경실험(DART) 우주선을 밴덴버그 우주군 기지 내 스페이스X 탑재물 처리 시설로 옮기고 있다.(사진=미국 항공우주국)

DART 프로젝트는 NASA의 첫 행성 방어 임무다. 이번 실험이 성공으로 기록된다면 인류는 소행성 지구 충돌이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기반 기술을 마련하게 된다. 스페이스X 입장에선 외부 천체에 우주선을 성공적으로 보냈다는 트랙레코드를 DART를 통해 확보할 수 있다.

DART의 타깃은 디디모스(Didymos)다. 지름 780m의 소행성인 디디모스는 약 160m 크기인 디모르포스를 위성으로 갖고 있다. 쌍으로 움직이는 소행성을 타깃으로 해 이번 실험 명칭도 ‘이중 소행성 경로변경’으로 붙었다. 두 천체 모두 지구와 충돌할 위험이 큰 천체인 근지구 소행성(NEA)으로 분류된다. 소행성 크기가 100m만 넘어도 도시 하나를 초토화될 정도의 충격량을 내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연구진들은 디디모스와 디모르포스가 지구에 충돌할 가능성은 없다고 분석하고 있다.

NASA는 중량 약 620kg의 소형차 크기인 DART 우주선이 이집트 ‘기자 대피라미드’ 크기의 디모르포스에 충돌시키는 것을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 목표로 잡았다. 연구진은 이번 실험을 통해 디디모스의 공전 주기가 ‘수 분’까지도 단축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의도적 충격을 가해 변화된 디모르포스 속도가 디디모스의 움직임에 영향을 줘 궤도 변경이 이뤄지는 원리다. NASA는 공전주기가 73초 이상 바뀌면 소행성의 궤도를 바꾸는 데 성공한 것으로 간주하기로 했다.

▲ 이중소행성경로변경실험(DART)의 개념도.(사진=미국 항공우주국)
▲ 이중소행성경로변경실험(DART)의 개념도.(사진=미국 항공우주국)

발사 시점 지구와 디모르포스의 거리는 약 1100만km에 달한다. DART 우주선은 이 거리를 약 10개월간 비행해 시속 2만4140km(초속 약 6.6km)의 속도로 디모르포스에 충돌한다. 충돌 예상 시점은 2022년 9월 26일부터 10월 1일 사이다.

DART 우주선이 싣고 간 이탈리아우주국의 큐브샛 ‘리시아큐브(LICIACube)’가 충돌 10일 전 본선에서 떨어져 나와 충돌 과정을 촬영해 지구로 전송한다. 연구진들은 해당 자료를 분석해 실험 성공 여부와 영향 등을 분석할 계획이다. 유럽우주국(ESA)도 DART 우주선 충돌로 인해 남은 분화구와 디모르포스의 질량을 측정하는 식으로 정보를 제공한다.

NASA는 홈페이지 등을 통해 DART가 발사 후 약 3시간 뒤 28피트(약 8.5m)의 태양 전지판을 펼치는 과정까지 성공, 디모르포스를 향한 비행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이번 실험에는 3억2500만달러(약 3870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 디모르포스에 접근한 이중소행성경로변경실험(DART) 우주선 상상도.(사진=미국 항공우주국)
▲ 디모르포스에 접근한 이중소행성경로변경실험(DART) 우주선 상상도.(사진=미국 항공우주국)

‘패스트 팔로어’ 전략 추진하는 정부
당장 ‘한국판 스페이스X’ 탄생을 기대하긴 어렵지만, 우리나라도 민간 우주 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전략을 추진 중이다. 정부는 최근 ‘10년 후에는 우주 비즈니스 시대를 연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우주개발 로드맵을 제시했다.

우리나라는 700km 상공에 도달하는 비행을 마친 누리호의 첫 발사 이후 크고 작은 성과를 내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은 지난 25일 9t급 액체엔진의 재점화에 성공했다. 재점화 기술은 우주 발사체를 재활용하는데 필요한 핵심 기술 중 하나로 꼽힌다. 또 NASA가 추진 중인 민간 달 착륙선 사업 ‘CLPS(Commercial Lunar Payload Services Initiative)’에도 우리나라 기술이 쓰인다. 2024년 발사 예정인 무인 달 착륙선에 한국천문연구원과 선종호 경희대 교수 연구팀이 개발 중인 달 우주 환경 모니터(Lunar Space Environment Monitor·LUSEM)의 탑재가 지난 18일 공식화되기도 했다.

정부는 이 같은 우주 기술을 민간 기업에 이전해 관련 시장을 빠르게 키우겠단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국가우주위원회 위원장을 과기정통부 장관에서 국무총리로 격상하며 중요도를 높였다. 연구개발 중심에서 외교·안보·산업 등 종합정책으로 확대되고 있는 우주 정책을 총괄·조정하기 위해서다. 국가우주위원회 산하엔 안보우주개발실무위원회가 신설되기도 한다.

▲ (자료=과학기술정보통신부)
▲ (자료=과학기술정보통신부)

지난 15일 김부겸 국무총리가 국가우주위원장으로 주재한 첫 회의에선 △우주산업 육성 추진 전략 △한국형위성항법시스템 개발 사업 추진계획 △국가우주위원회 운영 계획이 심의·의결됐다. 정부는 구체적으로 2022년부터 2031년까지 공공목적의 위성을 총 170여기 개발하겠단 계획을 세웠다. 국내 발사체도 위성개발과 연계해 약 40회 발사된다. 민간과 공동 개발하는 식으로 사업을 진행, 기업의 우주개발 참여 기회를 넓힐 계획이다.

대형 사업도 추진된다. ‘한국형 위성항법시스템(Korean Positioning System·KPS) 개발’은 우리나라 우주개발 역사상 최대 규모의 사업으로 꾸려진다. KPS엔 2022년부터 2035년까지 14년간 총 3조7234억5000만원의 사업비가 투입된다. 이는 누리호 개발사업보다 약 1조8000억원 많다. 정부는 KPS를 통해 4차 산업혁명 인프라를 구축할 방침이다. 초정밀 위치·항법·시각 정보서비스를 제공하는 한국형 위성항법시스템 개발해 신규 산업군의 진흥을 촉진할 계획이다.

▲ 한국형 위성항법시스템 구상도.(자료=과학기술정보통신부)
▲ 한국형 위성항법시스템 구상도.(자료=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국내 우주산업을 제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나섰다. 우주산업에 진출한 기업들의 활동 범위를 넓히는 게 목표다. 과기정통부는 우주산업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우주개발진흥법 개정안’을 마련 중이다. 이 개정안은 법제처 심사를 거쳐 올해 안으로 국회에 제출된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기업이 마음 놓고 우주개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하고 창의·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된다”며 “기업이 기술 경쟁력을 확보한 부분부터 단계적으로 계약방식을 도입하고, 기술료 감면·지체상금 완화로 부담을 경감하는 등 기업이 마음 놓고 우주개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정책이 운용된다”고 설명했다.

▲ (자료=과학기술정보통신부)
▲ (자료=과학기술정보통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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