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게 2050년 탄소중립 목표는 단순한 환경보호운동이 아니다. 21세기 기업의 존폐를 가를 새로운 생존게임이 시작됨을 의미한다. 이미 글로벌 기업들은 탄소감축 주도권을 쥐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선제적으로 나서는 기업들도 있는 반면, 새로운 질서에 허덕이며 도태될 기미를 보이는 기업도 있다. 국내 기업들의 ESG 현재를 해부한다.

스타트업에 부는 ‘ESG 바람’의 정확한 출처를 찾으려면 글로벌 자본시장의 움직임을 들여다봐야 한다. 지난 2006년 당시 코피 아난 UN(국제연합) 사무총장은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전 세계 주요 연기금들을 포함해 금융회사들과 ‘사회책임투자원칙(PRI)’을 발표했다. 기후위기에 대비하고 지속가능투자를 통해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투자대상 기업의 재무적 측면뿐 아니라 비재무적 측면인 ESG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어 연기금뿐 아니라 운용 자산 규모가 큰 투자사들이 △기후행동 100+(Climate  Action 100+) △넷제로(탄소중립) 자산소유자 연합(UN-convened Net-zero Asset Owner Alliance) 등을 출범시켰다. 여기에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미국 블랙록(Black Rock)의 래리 핑크(Lawrence Douglas Fink) CEO(최고경영자)가 지난해 고객에게 보낸 연례서한에서 “기후 리스크가 투자 리스크”라고 선언하고 ESG 기준을 투자 전략에 엄격하게 적용하겠다고 밝히며 자본시장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미국 바이든 정부 출범도 이러한 움직임에 힘을 실었다.

실제 글로벌지속가능투자연합(GSIA)에 따르면 ESG 요건들을 고려하는 글로벌 지속가능투자 시장 규모는 2012년 13조2000억달러(현재 약 1경6000조원)에서 지난해 말 기준 35조3000억달러(현재 약 4경2000조원)로 약 2.7배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2016년부터 그 규모가 빠르게 성장했다. 또 올 1월 기준으로 현재 UN PRI에 가입한 연기금 및 회사는 총 3613곳으로, 운용자산 규모는 103조4000억달러(약 12경20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처럼 글로벌 큰 손들이 ESG 요건을 강화하기 시작하고 정부도 힘을 보태니, 기업들은 이에 반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ESG 통합' 부문에 대한 투자가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모두 ESG 요건들을 고려하는 '글로벌 지속가능투자'이지만, 그 전략에 따라 투자 방법을 분류해 놓은 것이다. ESG 통합은 재무 분석 프로세스에 ESG 요소들을 체계적·명시적으로 융합시키는 투자 방법이다. (사진=GSIA)
▲ 'ESG 통합' 부문에 대한 투자가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모두 ESG 요건들을 고려하는 '글로벌 지속가능투자'이지만, 그 전략에 따라 투자 방법을 분류해 놓은 것이다. ESG 통합은 재무 분석 프로세스에 ESG 요소들을 체계적·명시적으로 융합시키는 투자 방법이다. (사진=GSIA)

국내서도 지난해 세계 3대 연기금인 국민연금공단이 2022년까지 ESG 투자 기준을 적용하는 자산군 규모를 전체의 50%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1월 한국거래소는 ‘ESG 정보공개 가이던스’를 제정한 바 있는데, 2030년부터 모든 코스피 상장사에 ESG 관련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공시가 의무화되기 때문이다. 지난 2일엔 산업통상자원부가 관계부처와 합동으로 ‘K-ESG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결국 투자를 유치해야 하는 스타트업 입장에서도 ESG 바람을 탈 수밖에 없다. 이와 함께 일반 기업들의 경우 당장 비즈니스를 ESG 관련 포트폴리오로 전환할 수 없으니 관련 솔루션을 가지고 있는 스타트업과 협업을 모색하거나, 초기 단계 스타트업을 발굴 및 투자해 육성하는 방법을 택할 수 있다.

예컨대 국내 스타벅스가 서울 시청 근처 12곳의 매장에서 시범 운영하고 있는 ‘리유저블 컵(다회용 컵) 반납기’는 스타트업 오이스터에이블의 제품이다. 지난 8월 카카오와 SK텔레콤은 관련 스타트업에 투자하기 위해 200억원 규모의 ‘ESG 공동 펀드’를 조성하기도 했다.

상장을 앞두고 있는 스타트업이라면 역시 ESG 관련 요구를 무시할 수 없다. 업계 관계자는 “상장을 앞둔 스타트업은 무조건 다 공시를 준비해야 하는데, 결국 투자자들이 스타트업에 ESG 관련 가이드를 만들 것을 요구할 것”이라며 “상장하고 싶고 유니콘이 되고 싶은 스타트업이라면 자연스레 ESG를 고려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VC(벤처캐피탈)들도 PE(장기투자전문기구)투자를 받거나 상장을 위해 포트폴리오 스타트업들에게 ESG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라며 “단계적으로 연쇄 반응이 일어나 시드 투자를 하는 AC(액셀러레이터)들도 ESG 가이드를 초기부터 고려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엔 소비자 측면에서의 요구도 높아지고 있어, ESG를 고려하지 않으면 미래에 리스크가 될 수 있단 우려가 나온다. MZ세대를 비롯한 미래 세대가 가치 소비를 통해 자신의 신념 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미닝아웃 소비’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 행위에 ESG가 맞물려 있는 셈이다.

실제로 성장관리 앱 ‘그로우’가 지난 7월 발표한 MZ세대 928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10명 가운데 8명이 자신을 ‘가치 소비자’라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제품과 브랜드 선택 시 ESG 영향을 받는다(5점 척도)’가 평균 3.5점을 기록했다. 최근 ‘돈쭐내다(선한 영향력을 행사한 기업에 착한 소비로 보답)’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것도 이러한 요구의 연장선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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