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게 2050년 탄소중립 목표는 단순한 환경보호운동이 아니다. 21세기 기업의 존폐를 가를 새로운 생존게임이 시작됨을 의미한다. 이미 글로벌 기업들은 탄소감축 주도권을 쥐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선제적으로 나서는 기업들도 있는 반면, 새로운 질서에 허덕이며 도태될 기미를 보이는 기업도 있다. 국내 기업들의 ESG 현재를 해부한다.

스타트업에 ‘ESG 바람’이 불고 있지만, 한편에선 ESG를 ‘스타트업’에 요구하는 건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스타트업 자체가 당장의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있는 초기 기업이라는 데 기인한다. ESG는 스타트업 대표들에게 대개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주제다.

업계 관계자는 “스타트업 입장에서 회사 매출 데이터를 챙기는 것도 힘든데, ESG 관련 데이터를 챙기기는 여력이 되지 않을 수밖에 없다”면서 “대기업의 경우 ESG 전문가를 채용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지만 스타트업은 이 또한 쉽지 않고, 국내 ESG 전문가 자체도 숫자가 부족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관련 컨설팅을 받는다고 해도 스타트업이 불필요한 비용을 지불해야 할 수 있다는 점이 현장의 고민이다.

실제로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 지난 6월 중소벤처기업 10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ESG 경영 대응에 준비가 됐거나 준비 중인 기업이 26% △ESG 경영 전담조직이 없는 기업이 76%로 각각 나타났다. 애로사항으론 비용부담(37%)과 전문인력부족(23%)이 가장 많이 꼽혔다.

초기 기업이다 보니 자연스레 ESG 가운데 G인 ‘지배구조’ 자체가 태생적으로 이루기 어려운 부분이라는 점도 문제로 제시된다. 스타트업은 대개 창업자 한 명으로부터 시작해 어쩔 수 없이 대표에게 의사결정구조가 몰리고, 오랜 시간 대표 한 명의 의사결정 하에 기업이 성장해 나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표 한 명을 보고 투자사가 투자를 진행하는 일도 적지 않다.

그렇다고 E(환경)와 S(사회)에 대한 평가가 마냥 쉬운 것도 아니다. 아직 명확한 측정을 위한 전 세계 통일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외 주요 기관 등에 600여개 이상의 ESG 평가 지표가 존재하는 것으로 전해지지만, 자세한 평가기준과 결과도출 방식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공개되고 있지 않다. 또 이러한 기준들이 절대적으로 맞다고 맹신할 수도 없다.

그나마 환경 부문은 글로벌 공감대가 형성돼 있고 환경 변화 자체가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챙기기 쉬운 요소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생각이다. 대표적으로 ‘탄소발자국’ 계산을 들 수 있다. 다른 예로 중고거래 플랫폼인 당근마켓이 지난해 동안 진행된 중고거래로 약 2770만 그루의 나무를 심은 효과를 냈다며, 재사용된 자원의 가치를 표현한 것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이러한 계산도 통일된 산출방식이 있는 건 아니다. 컨설팅 업체, 평가 기관 등이 각각 나름의 방식으로 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결국 측정과 평가의 문제다”면서 “점수화, 수치화해 측정하고 어떤 기준으로 잘했는지 못했는지 평가해야 하는데 글로벌 통용 기준이 없는 상태”라면서 “하지만 내년부터 세계 표준협회 등에서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ESG 및 임팩트 측정 기준을 발표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맞춰 국내서도 관련 기준이 확대 적용되지 않을까 하는 전망이다. 

어쨌든 현재까진 스타트업들도 대비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인증 등을 포함한 다양한 ESG 관련 평가에 따라 현재도 유망기업 선정이나 지원사업 가점, 해외 진출, 세액공제나 기금 우대 지원 등이 연관돼 있다 보니 마냥 손놓고 있을 수만도 없다. 이런 흐름은 더 가속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 중소벤처기업을 위한 ESG 경영안내서 내용. (사진=중소벤처기업부)
▲ 중소벤처기업을 위한 ESG 경영안내서 내용. (사진=중소벤처기업부)

물론 명확한 기준이 마련된다고 해도 우려는 나온다. 예컨대 기준이 하나로 모이고 정부 차원에서 이를 인증제 도입 등 제도적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또 하나의 ‘규제’가 될 수 있단 시각이다. 현재 대기업을 기준으로 ESG 가이드라인이 준비되고 있는데, 이 또한 상대적으로 스타트업에겐 높은 장벽과 압박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앞서 지난 11월 중소벤처기업부는 ‘중소기업 ESG 촉진방안’을 발표하면서 지난 8월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K-ESG 가이드라인(초안)’을 기반으로 ‘중소기업 ESG 체크리스트’를 마련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업계에선 스타트업에 맞는 가이드라인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편에선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 우려도 제기된다. 전 세계적으로 자금이 ESG 쪽으로 몰리다 보니,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ESG 관련 인증 등을 이용할 수 있어서다. 이는 스타트업뿐 아니라 투자사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ESG 투자와 인증이 맞물릴 때 예상할 수 있는 문제다.

‘ESG 투자’ 자체가 ‘네거티브 스크리닝’ 전략을 취하기 때문이다. 특정 ESG 항목에 근거해 부정적으로 인식 및 평가되는 산업 또는 기업을 포트폴리오나 펀드 구성에서 배제하는 투자 방법이다. 즉 부정적 요소들을 스크리닝하는 데서 끝나고, ESG 자체 리스크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관리하지 못할 가능성 때문에 무늬만 인증을 받은 ESG 기업들이 나올 수 있단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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