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게 2050년 탄소중립 목표는 단순한 환경보호운동이 아니다. 21세기 기업의 존폐를 가를 새로운 생존게임이 시작됨을 의미한다. 이미 글로벌 기업들은 탄소 감축 주도권을 쥐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선제적으로 나서는 기업들도 있는 반면, 새로운 질서에 허덕이며 도태될 기미를 보이는 기업도 있다. 국내 기업들의 ESG 현재를 해부한다.

대한항공이 탄소배출 정보공개 프로젝트(CDP·Carbon Disclosure Project)에 제출한 자료에서 지속가능한 항공연료(SAF·Sustainable Aviation Fuel) 의무화 관련 추가 비용 발생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동시에 국내 SAF 물리적·정치적 인프라는 미숙한(immature) 상태라고 우려했다.

20일 CDP 홈페이지에 공개된 2021년도 대한항공 기후변화(Climate Change) 등급은 C다. 전년도와 동일한 등급이다. CDP 기후변화 등급은 대응 점수에 따라 A, A-, B, B-, C, C-, D, D-, F 9개로 나뉜다.

SAF 수차례 언급, “추가 비용 발생”
대한항공은 CDP 제출 자료에서 ‘SAF’를 수차례 언급했다. SAF는 폐식용유, 동물성 지방 등을 활용해 생산되는 친환경 항공 연료다.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항공연료보다 적게는 2배, 많게는 5배가량 비싸다고 알려졌다.

탄소배출량 감축이 항공업계 이슈로 떠오른 뒤 SAF 도입을 의무화하는 지역도 생겼다. 유럽연합(EU) 집행위는 지난 4월 목적지와 관계없이 EU에서 이륙하는 모든 항공기에 SAF 혼합 사용을 의무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적용 시점은 2025년부터다. 국내에선 유럽 노선을 운항하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영향을 받게 됐다.

대한항공은 CDP 제출 자료에서 “2025년 EU 출발 항공편에 SAF 의무 비중 2%가 적용된다고 가정하면, 연간 338만7152달러(약 40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EU가 2030년부터 SAF 의무 비중을 높이겠다고 밝힌 만큼 시간이 지날수록 추가 비용은 늘어날 전망이다.

국내 SAF 인프라를 두고선 유럽, 미국 지역과 달리 미비한 상태라고 언급했다. 지난 6월 현대오일뱅크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것도 국내 SAF 인프라 설비 확충을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9월에도 SK에너지와 탄소중립항공유 도입을 위해 협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동시에 정부 차원의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SAF 도입 관련 (정책적) 인센티브가 있어야 SAF 국내 사용을 촉진할 수 있다. 정책 입안자들과 협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주일 한국대사관 '日 정부 지속가능항공연료(SAF) 비축 방침 결정' 리포트 중 일부 내용. 
▲ 주일 한국대사관 '日 정부 지속가능항공연료(SAF) 비축 방침 결정' 리포트 중 일부 내용. 

유럽은 정부 주도로 SAF 도입을 촉진하고 있다. 공급망 차원에서 SAF 판매를 의무화하는 움직임이 생겨나고 있다. 항공사들이 SAF 확보에 어려움이 없도록 돕는 셈이다.

노르웨이는 2020년부터 연료 공급 사업자의 SAF 판매 비중을 0.5%까지 늘리도록 의무화했다. 프랑스도 SAF 의무 판매 비중을 2025년 2%, 2030년 5%로 제시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일본 정부도 SAF 비축 방침을 결정했다. 일본 국토교통성과 항공사, 연료 공급 사업자가 2027년 이전까지 SAF를 비축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SAF 도입 불가피한 이유는?
항공사들은 반도체 제조 업체들과 함께 탄소배출량 규모가 상당히 큰 업종에 속한다. 이에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지난 10월 2050년까지 업계 탄소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다고 결의했다. 

대한항공도 상당한 탄소배출량을 기록하고 있다. 올해 CDP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탄소배출량은 Scope 1(직접 배출량) 762만6574톤, 지역 기반 Scope 2(간접 배출량) 4만8655톤이다. 둘을 합산한 직·간접 탄소배출량은 767만5229톤으로 나타났다.

전년도(2019년)와 비교해 절대 배출량은 42.7% 줄었다. 2019년 Scope 1은 1333만5813톤, 지역 기반 Scope 2는 6만5331톤을 기록했다. 2019년 직·간접 탄소배출량은 1340만1144톤에 달했다. 코로나19로 비행 시간이 절반 수준에 그친 게 절대 배출량에 영향을 줬다. 대한항공 2021년 ESG 리포트에 따르면 지난해 비행시간은 전년 대비 42.9% 짧아진 37만2000시간이다. 

절대 배출량이 줄었음에도 CDP 평가 등급은 전년도(C)와 동일하다. 탄소 감축 효율성을 나타내는 원단위 지표가 비슷한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원단위는 매출 대비 탄소배출량을 의미하는 지표다. 2019년 원단위 지표는 1.09를 기록했다. 2020년 원단위 지표는 1.03으로 큰 차이가 없다.

시장에선 대한항공 환경 부문을 둔 상반된 평가에도 주목한다. 국내 기관과 해외 기관 평가가 갈리고 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 주관 평가에선 환경 부문 A등급을 받았다. 반면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는 ESG 등급 BB를 부여했다. MSCI는 등급을 7개(CCC-B-BB-BBB-A-AA-AAA)로 분류한다. 환경 부문에서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은 탓이다. 

MSCI는 대한항공 ‘온도 상승 설루션’ 평가에서 3.03 °C를 책정했다. 온도 상승 설루션은 기업의 현재 및 예상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지구 온도 상승 추정치로 변환하는 방식이다. 수치가 낮을수록 지구 온난화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평가한다. MSCI는 대한항공을 두고 탄소 배출량 관리 부문은 업계 평균보다 뒤처진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항공사 델타항공은 2.10°C를 받았다.

▲ MSCI 대한항공 ESG 및 온도 상승 평가. (자료=MSCI)
▲ MSCI 대한항공 ESG 및 온도 상승 평가. (자료=MSCI)

업계 관계자들은 “해외 기관 평가의 경우 국내 기관 평가보다 기준치들이 까다롭고,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대한항공과 함께 주요 항공사들로 꼽히는 중화항공, 일본항공, 스칸디나비아항공 등은 CDP 평가에서 B를 받았다. 대한항공보다 두 단계 높은 등급이다. 아메리칸 항공 그룹은 두 번째로 높은 등급인 A-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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