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게 2050년 탄소중립 목표는 단순한 환경보호운동이 아니다. 21세기 기업의 존폐를 가를 새로운 생존게임이 시작됨을 의미한다. 이미 글로벌 기업들은 탄소감축 주도권을 쥐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선제적으로 나서는 기업들도 있는 반면, 새로운 질서에 허덕이며 도태될 기미를 보이는 기업도 있다. 국내 기업들의 ESG 현재를 해부한다.
스타트업계에서도 ‘ESG’는 화두다. 하지만 현재 스타트업도 ESG가 중요하니 필수적으로 대비해야 한다는 시각과, 스타트업에 ESG를 요구하는 건 또 다른 규제가 될 수 있다는 시각이 양립한다. 이러한 가운데 스타트업계에 관련 투자를 확대하고 평가에 대비하는 모습이 포착되고 있다.

일단 전 세계적으로 ESG 투자에 대한 관심이 ‘기후위기’ 대비와 함께 촉발된만큼 스타트업계에선 E(환경)를 중심으로 관련 투자와 펀드 조성 등이 확대되는 모양새다. 기존 ‘임팩트(가치창출) 투자’사들의 움직임이 돋보인다. 임팩트 투자는 환경이나 사회 문제 해결을 통해 긍정적 영향을 이끌어내기 위한 투자방법이다. ‘ESG 투자’와 같은 지속가능투자 방법 가운데 한 종류다.

국내 대표 임팩트 VC(벤처캐피탈)인 ‘인비저닝파트너스’는 ‘기후변화’를 최우선 투자 영역으로 두고 관련 스타트업에 꾸준히 투자하고 있다. 지난 9월엔 기후 기술에 대한 투자를 위해 667억원 규모의 ‘클라이밋 솔루션 펀드’를 신규 결성하기도 했다. 기후변화가 야기한 중대한 문제에 도전하는 시리즈A 전후 단계 국내외 스타트업에 집중 투자하기 위해서다.

특히 해당 펀드는 전액 민간자금으로 조성됐는데 한화솔루션, GS, 무신사, 아이에스동서, 예스코홀딩스, 옐로우독, 한국카본, 인선이엔티 등이 참여했다. 이 기업들은 향후 국내외 피투자 스타트업의 빠른 성장을 위해 다각도로 협력할 예정이다.

국내 첫 임팩트 AC(액셀러레이터)인 ‘소풍벤처스’는 현재 ‘농식품’ 부문에 대한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전체 투자 포트폴리오 가운데 4분의 1을 차지할 정도다. 기후위기를 농식품 부문 혁신으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전 세계적으로 있어서다. 실제 농식품 전문 VC ‘애그펀더(AgFunder)’에 따르면 지난해 코로나19 확산에도 전 세계 농식품 분야 스타트업 투자 규모는 310억달러(약 37조원)로 추산되는데 이는 전년대비 34.8% 급증한 것이다.

소풍벤처스는 지난 4월 SK텔레콤 주도로 결성된 ‘ESG 코리아 2021’ 얼라이언스에 참여하기도 했다. 해당 얼라이언스는 관련 스타트업에 ESG 성과 측정과 구체적 전략 수립 등 실질적 도움을 주기 위해 탄생했다. 마이크로소프트, SAP, HGI, 벤처스퀘어, SK사회적기업가센터, SBA 성수 허브 등도 참여했다.

기존에 임팩트 투자에만 집중하지 않았던 투자사들도 ESG 관련 투자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는 움직임이다. 국내 VC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는 내년부터 ESG 관련 투자에 본격 진출하기 위해 관련 전문 인력을 최근 충원했다. 또 다른 VC인 ‘스톤브릿지벤처스’는 지난 9일 ‘IBK-스톤브릿지 뉴딜 ESG 유니콘 PEF(사모펀드)’ 설립을 완료하기도 했는데, 1636억원 규모로 스톤브릿지벤처스가 결성한 펀드 가운데 최대 규모다.

업계 관계자는 “보통 그간 ESG 투자기관들이 임팩트 투자사를 주로 하는 곳이었다”면서 “하지만 최근엔 일반적인 투자사들도 ESG 중요성이 높아지니까 ESG를 고려한 투자를 확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관련 투자는 미래 블루오션으로 각광받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나온 유니콘의 경우 ‘컨슈머테크(소비자 대상 기술)’가 대부분인데, 이제 컨슈머테크는 레드오션이고 다음 분야로 ‘딥테크(첨단 기술)’가 꼽힌다”면서 “기후나 농식품 등 환경도 딥테크의 대표적 분야라 관련 솔루션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 (사진=동구밭)
▲ (사진=동구밭)

ESG 평가에 대비하는 움직임도 보인다. 국내 VC인 ‘위벤처스’는 지난 5월 국내 대표 ESG 평가기관인 ‘서스틴베스트’와 업무협약을 맺기도 했다. 투자 과정에서 ESG 실사와 투자기업의 ESG 관리 정책을 강화하기 위한 내부 ESG 스크리닝 지표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앞서 언급한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는 지난 7월 ESG 요소를 투자 과정에서 고려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글로벌 지속가능발전목표(UN SDG)를 준용해 자체 개발한 바 있다.

이러한 가운데 상대적으로 측정 및 평가가 어려운 S(사회) 관련 스타트업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ESG 평가에 대비한 건 아니지만, 그간 사회적 효과 측정을 위한 노력을 실질적으로 해왔기 때문이다. 이커머스 풀필먼트 테크 스타트업 ‘두손컴퍼니’는 나름의 로직을 만들어왔다. 두손컴퍼니는 지난 2012년 설립 이래 홈리스, 저소득층, 고령자 등 사회적 취약계층 일자리 창출을 통해 빈곤문제를 해결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두손컴퍼니는 전체 직원 가운데 30%를 취약계층으로 고정해 채용함으로써 앞으로의 임팩트 성장에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고 있다. 또 예컨대 두손컴퍼니가 채용하는 취약계층의 인건비를 기본적인 임팩트로 두고, 두손컴퍼니가 없었더라면 취할 수 있었던 공공근로 등의 일자리에서 발생하는 인건비는 제하고, 지자체 관련 예산에서 취약계층 한 사람에게 드는 복지 비용 등을 구해 두손컴퍼니의 임팩트에 추가하는 식이다. 복잡하지만 나름대로 이 사회 안에서 두손컴퍼니가 복합적으로 어떻게 ‘임팩트’를 내고 있는지 측정해 보는 것이다.

2014년 발달장애인 자립을 돕기 위해 설립된 스타트업인 ‘동구밭’은 임팩트 지표로 월 매출 증가와 발달장애인 추가 고용을 연계하고 있다. 현재 30명의 발달장애인을 고용해 환경과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고체 화장품 및 생활용품을 생산하고 있다. 2016년 투자를 받은 이후 추가로 투자를 받지 않았지만, 글로벌 10개국에 제품을 수출하며 높은 매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저작권자 © 블로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