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텔레콤 '비브릭' 관련 이미지(사진=세종텔레콤)
▲ 세종텔레콤 '비브릭' 관련 이미지(사진=세종텔레콤)

부동산 시장은 정보의 불투명성과 비대칭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연예인들도 숱하게 당하는 기획부동산 사기부터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 배당금 특혜 의혹이 핵심인 화천대유 사건 등 정치판을 뜨겁게 달구는 토건비리까지 부동산 관련 사건이 예나 지금이나 빈발한 이유입니다.

한편으로는 금융 시장에서도 시장 참여자들의 과도한 탐욕에 따른 사모펀드(PEF) 사태가 있었습니다. 이와 함께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한 '증권형 토큰'에 대한 관심이 커져왔습니다. 비트코인을 위시한 가상자산은 가치 변동성이 큰 맹점을 지닐 수밖에 없죠. 그러나 부동산과 같은 실물 자산을 블록체인 토큰에 연동하면 보다 가시적인 가치를 지닐 수 있을 것이라는 시장 참여자들의 긍정적인 기대가 생겨왔습니다.

이 두 시장이 만난 건 어떻게 보면 필연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스타트업부터 중견기업까지 블록체인을 활용한 증권형 토큰 기반의 부동산 유동화 사업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소액으로 쪼갠 부동산의 지분증권이나 수익증권에 누구나 투자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금융 시장의 풍부한 유동성을 부동산 시장으로 끌어올 수 있다는 계산에서입니다.

어, 이거 '리츠(REITs)' 아닌가요? 리츠랑 증권형 토큰이 뭐가 다른 것인가요? 증권형 토큰은 리츠엔 없는 특징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참여자간 합의로 형성된 거래가 '블록'으로 만들어지고, 이는 '체인' 형태로 연결돼 참여자들에게 동일하게 내역이 전파됩니다. 즉 거래 불변성과 함께 데이터 추적이 가능한 투명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지요.

알뜰폰으로 유명한 세종텔레콤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부동산 간편 투자 앱 비브릭(BBRIC, Busan Blockchain Real-estate Investment Currency)을 출시했습니다. 비브릭은 부산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에서 실증 중인 '부동산 집합투자 및 수익배분' 서비스입니다. 소수의 자산가 위주로 돌아가던 부동산 사모펀드 시장을 공모형 펀드로 조성한다는 의의를 내세웠습니다.

비브릭은 빌딩 수익권을 '브릭' 단위로 쪼개 소액으로 부동산에 간접 투자하고, 본인이 소유한 수익증권 비율만큼 임대료 등을 분배받을 수 있습니다. 수익증권을 앱 내에서 주식처럼 다자간 거래를 할 수도 있죠. 플랫폼 운영사, 자산운용사, 수탁사가 노드에 참여하고 예치금 입금, 청약, 거래 내역 등을 분산원장에 저장함으로써 보안과 수익권에 대한 철저한 입증, 거래의 투명성 실현이 가능하다고 사측은 설명합니다.

그런데 핀테크 투자에 익숙하신 분들이라면 '어느 서비스와 비슷한데?'라는 생각을 가지실 것입니다. 바로 부동산 디지털수익증권(DABS) 거래 플랫폼을 운영하는 카사(Kasa)죠. 카사는 지난해 금융위원회로부터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받아 출시된 이 시장의 개척자라 할 수 있습니다.

비브릭은 카사와 뭐가 다른 것일까요? 세종텔레콤은 자사 투자 플랫폼의 차별점으로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된 플랫폼(증권을 토큰화하는 작업에 활용)이라는 점과 전자증권법에 따라 발행 및 판매된 수익증권을 예탁결제원에 등록하고 또 블록체인 분산원장에 동시에 기록해 안정성이 보장된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상품의 성격도 차이가 있습니다. 세종텔레콤 비브릭의 상품은 집합투자업자가 전자등록을 해야 하는 투자신탁형 부동산펀드(집합투자증권)인 반면, 카사는 신탁회사가 신탁받은 건물의 자산유동화증권(ABS)을 거래합니다. 집합투자증권은 집합투자기구의 운용실적에 따라 손익이 결정됩니다. 세종텔레콤 측은 운용 주체인 자산운용회사(이지스자산운용사, 디에스네트웍스자산운용사) 내 전문인력이 선정한 물건으로 보다 나은 수익성을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카사 측의 입장은 다릅니다. 카사 관계자는 "감정평가법인을 통해 부동산 가치를 평가해 이를 기초로 국내 최정상의 신탁사에서 부동산 수익증권을 발행한다"며 "또 최고 수준의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상장심사위원회가 건물 상장을 검토하게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자체 개발해 거래소 서비스에 적용한 블록체인 프레임워크 'Kasa K-Ledger'는 원장 기록 속도가 일반 블록체인 프레임워크보다 100배 이상 빠르며 초당 수천명이 동시에 거래할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두 회사뿐 아니라 대전을 거점으로 한 테크핀 기업 '루센트블록'도 부동산 수익증권 거래 플랫폼인 '소유'를 개발했고, 펀드블록글로벌은 '펀블'을 통해 중형 빌딩을 비롯 물류·데이터센터 같은 상업용 부동산에 소액 투자할 수 있는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입니다. 이처럼 시장 내에서도 다양한 차별점을 가진 블록체인 서비스가 많이 생길수록 부동산 투자의 접근성 확대뿐 아니라 투명성 확대라는 효과까지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카사에 따르면 국내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4000조원에 육박합니다.

한국 고질병 '지역격차'도 해소될까? 주목받는 부산
블록체인이 가진 주요한 특성인 분권화, 탈중앙화에 기인한 지역격차 해소 효과도 기대되는 대목입니다.

부산시는 지난 2009년 금융중심지로 지정됐지만, 실제 위상은 그에 걸맞지 않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지방분권 균형발전 부산시민연대가 최근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내용을 보면 '금융중심지 지정 후 외형적으로 성장했으나 국제화 등 내실을 갖추지 못했다'는 응답이 78.0%에 달했습니다.

정부는 금융중심지 지정에 따라 금융기관들이 부산으로 많이 내려가서 지역 자금의 역외 유출을 방지하는 효과를 낼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금융권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보수적인 특성에 더해 서울에 몰려있는 자산이 많다는 이유였죠.

블록체인은 이런 한계를 깰 수 있는 돌파구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세종텔레콤의 비브릭은 투자에 부산은행의 계좌를 필요로 합니다. 대기성 투자자금이 부산은행에 유입되는 게 가능하죠. 또 메타버스 플랫폼인 '게더타운' 내 부산 광안대교 앞바다에 위치한 비브릭 스퀘어도 개관해 투자 정보와 부산의 정취를 함께 제공한다는 구상입니다. 

세종텔레콤 관계자는 "부산시에서도 거는 기대가 있다"며 "서울 쪽으로 몰려있던 관심도가 부산으로 많이 옮겨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블록체인을 활용한 주택금융 상품도 한국주택금융공사(주금공)가 소재한 부산에서 나올 가능성을 키우고 있습니다. 최준우 주금공 사장은 최근 "AI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안전하고 편리한 주택금융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공사의 화두"라고 말했습니다. 

블록체인을 통한 주택연금(역모기지) 상품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미국의 퀀텀RE(QuantmRE)라는 회사는 주거용 주택 소유자가 일정한 지분을 내놓으면 이를 유동화하는 서비스를 펼치고 있습니다. 주택을 팔지 않고도 현금을 확보할 수 있는 셈이죠. 주택연금과 비슷하지만, 퀀텀RE의 서비스는 고연령이지 않아도 되고 주택 가격의 제한도 없습니다.

엘살바도르가 국가 경제를 비트코인에 맡겼다면, 부산시는 블록체인과 전통금융을 융합하려는 다양한 시도를 보이는 데서 주목할 만합니다. 부산상공회의소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는 블록체인청(가칭)을 부산에 설립해야 한다는 제안도 담겼죠. 부산시가 블록체인을 통해 한국 제2의 도시라는 위상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관전 포인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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