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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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국가 경제 주도권을 확보하는 요소로 급부상했다. 정부가 세계 기술패권 경쟁이 과열되고 있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정부는 전통적 전략기술로 꼽히는 우주·항공을 비롯해 최근 공급망 구축이 국가 안보사항으로까지 떠오른 반도체·바이오 등을 ‘10대 국가 필수 기술’로 지정해 집중 육성·보호할 계획이다. 해당 분야의 기술 수준을 2030년까지 선진국 대비 90% 이상 달성하겠단 구체적인 목표도 제시했다.

정부는 22일 정부서울청사 대회의실에서 ‘제20회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를 개최했다.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 위원장인 김부겸 국무총리가 주재했다. 부위원장인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 장관을 비롯해 기획재정부·교육부·국방부·행정안전부·문화체육관광부·농림축산식품부·산업통상자원부·보건복지부·환경부·국토교통부·해양수산부·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민간에선 이광형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총장이 자리해 ‘글로벌 기술패권 동향 및 향후 정책방향 제언’을 주제로 발표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들은 △국가 필수전략기술 선정 및 육성·보호 전략(토론안건 원안 의결) △해양수산 연구인프라 중장기 로드맵(보고안건 원안 접수) △호라이즌 유럽(Horizon Europe)을 통한 유럽연합(EU)과 협력강화 방안(보고안건 원안 접수) 등을 논의했다. 호라이즌 유럽은 국가 공공부문에 속하는 연구기관들을 중심으로 임무중심형 과제를 추진하는 EU 프로그램이다. 관련부처들은 해당 안건과 관련된 사항을 비공개하기로 협의했다.

정희권 과기정통부 과학기술정책국장은 전일 정부세종청사 브리핑실에서 진행된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 사전 설명’을 통해 “비공개 안건인 EU 협력 강화는 국가 차원에서 첨단전략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국제협력을 추진해야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돼 논의된 것”이라며 “그간 국가 차원의 기술 분야 국제협력은 특별한 방향성이 없었으나 이번 안건을 바탕으로 후속조치를 마련, 전략적 육상방안이 추진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 정희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정책국장이 21일 정부세종청사 브리핑실에서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 사전 설명’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사진=정두용 기자)
▲ 정희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정책국장이 21일 정부세종청사 브리핑실에서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 사전 설명’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사진=정두용 기자)

반도체·배터리·바이오 등 전략 기술, 최고 기술국 대비 90% 수준 달성 목표
이번 회의를 통해 국가 필수전략기술 선별된 10개 분야에 대한 전략적 육성 방안이 구체화됐다. 정부는 이번 정책의 추진 배경에 대해 “기술경쟁력이 국가 경제·안보를 좌우하는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시대에 국익을 위해 반드시 경쟁력을 갖춰야 할 필수전략기술을 선별했다”며 “선도국 간에만 기술을 공유하고 외부에 통제하는 기술동맹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전략적 통상·협력 관점에서도 독보적 우위기술 확보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미·중 기술패권 경쟁이 글로벌 산업지형과 공급망을 흔들고 있다. 그 여파가 국가 간 안보·동맹 및 주변국을 포함한 국제질서 재편으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실제로 미국·중국·유럽·일본 등은 패권경쟁의 승패를 결정할 열쇠를 기술로 보고 10개 내외의 전략기술을 선정해 기술의 우위 확보에 국가적 역량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이에 따라 △인공지능 △5G·6G △첨단 바이오 △반도체·디스플레이 △이차전지 △수소 △첨단로봇·제조 △양자 △우주·항공 △사이버보안 등 10개 기술을 글로벌 기술패권 관점에서 집중 육성·보호해야 할 국가 필수전략기술로 선정했다. 한정된 국가자원을 해당 분야에 보다 효율적으로 투입, 최대의 효과를 창출하겠단 청사진을 그렸다.

우리나라의 연구개발(R&D) 예산은 경제 대국에 비해 뒤처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미국 224조원 △EU 124조원 △중국 124조원 △일본 39조원을 전략기술 등에 투자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20조원을 정부 R&D 예산으로 운영했다.

▲ (자료=과학기술정보통신부)
▲ (자료=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정 국장은 “우리나라도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과 6G·양자·우주 등 첨단기술에 대한 포괄적 협력관계를 구축하며 발 빠르게 대응해 왔다”면서도 “국가 간 협력·경쟁의 지렛대가 될 필수전략기술에 대한 기술주권 확보를 목표로 국가적 우선순위 설정과 전략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다양한 기술 중에서도 현재 기술패권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분야에 우선순위를 부여해 육성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정부가 국가적으로 육성·보호하고 있는 세부기술은 5000개 이상이다. 그간 성장동력 발굴․소부장 등에 대응해 각 분야별 정책과 기술체계를 운영하면서 지정된 기술들이다. 일정한 방향성을 갖지 못했던 기술 육성 전략을 정비해 기술패권 경쟁 시대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던 이유다.

10대 국가 필수전략기술이 선별은 이에 따라 추진됐다. 정부는 △공급망·통상(경제안보) △국가안보(외교·국방) △신산업(미래혁신) 등 통합적 관점에서 우리나라가 반드시 주도권을 확보해야 할 필요성을 분석해 지정했다고 설명했다. 선정은 △기술의 전략적 중요성 △집중 지원 시 주도권 확보 가능성 △지원 시급성 등을 전문가가 평가하고 관계부처 협의·조정을 통해 이뤄졌다.

▲ 10대 국가 필수전략기술 평가 표.(자료=과학기술정보통신부)
▲ 10대 국가 필수전략기술 평가 표.(자료=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구체적인 목표도 제시됐다. 현재 최고 기술국 대비 60~90%에 머무는 기술 수준을 2030년까지 90% 이상 달성할 계획이다. 우리나라의 첨단 기술은 반도체·이차전지·5G 등을 제외하면 아직 추격자에 위치한다. 기술패권 경쟁에서 지렛대로 쓸 원천기술이 많지 않은 셈이다. 과기정통부가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차세대 핵심 기술로 꼽히는 양자 분야의 국내 기술력은 최고 기술국 대비 62.5% 수준에 그친다. △중국 93.2% △일본 90.4%와 비교에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인공지능의 경우에도 국내 기술 수준이 87.4%인 반에 중국은 91.8%, 일본은 88.2%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기반 기술은 보유했으나 선진국 대비 격차가 큰 전략 분야에 국가 자원 선제적으로 투입, 빠르게 육성하는 게 이번 정책의 핵심이다. 과기정통부 등은 이를 위해 필수전략기술별 특성과 기술 수준을 고려한 육성·보호 종합전략을 구체화할 방침이다. 또 기술의 확보부터 보호까지 전방위 지원책을 강화하기로 했다.

각 필수전략기술 내 더욱 집중해야 할 ‘세부 중점기술’도 정해진다. 향후 R&D 로드맵을 토대로 △투자 확대 △R&D 예타 간소화 △산학연 거점 연구기관 지정·육성 등을 강화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실증·사업화 인프라 및 세제지원 △선제적 규제개선 △전문인력 확보 △특허·표준개발 △기술보호 등 민간의 혁신역량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국제협력과 공조 체제를 갖추기 위한 다각적 지원도 추진된다.

▲ 10대 국가 필수전략기술.(자료=과학기술정보통신부)
▲ 10대 국가 필수전략기술.(자료=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정부는 “필수전략기술 R&D는 국가적 임무를 수행한다는 전제하에 명확하고 과감한 목표를 설정하겠다”며 “목표달성을 위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고 달성도를 치밀하게 관리하는 체계를 갖추도록 제도를 개선해 가겠다”고 전했다.

장관급 위원회도 신설된다. 국가필수전략기술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전략의 수립 및 이행을 총괄·조정한다. 또 민간전문가와 관계부처가 모두 참여하는 기술별 ‘민관 협의회’ 구성·운영을 통해 R&D 로드맵과 상세 종합전략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제도적으론 ‘(가칭)국가필수전략기술 육성에 관한 법률‘ 제정을 추진해 지원할 방침이다.

임혜숙 과기정통부 장관은 “기술경쟁력이 국가의 흥망을 결정하는 기술패권 경쟁시대에 ‘기술주권’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닌 민·관이 힘을 모아 반드시 확보해야 할 국가적 임무”라며 “이번 전략을 통해 미래 국익을 좌우할 필수전략기술 분야에 국가역량을 결집, 대체 불가한 독보적 원천기술 확보에 주력함으로써 기술주권 확보라는 성과를 거두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자료=국무총리실)
▲ (자료=국무총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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