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도 먹는(경구용) 코로나19 치료제가 도입된다. 정부는 약 100만4000명분에 달하는 선구매 계약도 추진 중이다.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한 사업을 펼치고 있는 국내 기업들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는 소식이다.
27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미국 제약회사 화이자가 개발한 경구용 코로나19 치료제 ‘팍스로비드’의 국내 긴급사용 승인을 결정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23일)의 긴급사용 승인과 이스라엘(26일)의 긴급사용 승인을 받은 약품이라는 게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먹는 약은 백신과 함께 코로나19 팬데믹 종식의 전제조건으로 꼽혀왔다. 특히 경구용 치료제는 ‘게임체인저’로 불릴 만큼 팬데믹 초기부터 시장의 주목을 받아왔다.
경구용 코로나19 치료제의 국내 공급은 이르면 2022년 1월 중순에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화이자와는 이날까지 약 36만2000명분에 대한 선구매 계약을 완료했다. 또 경구용 코로나19 치료제를 개발하고 승인 절차를 밟고 있는 머크앤컴퍼니(MSD)와는 24만2000명분의 선구매 계약을 완료했다. 정부는 이 밖에도 약 40만명분을 추가로 구입해 총 100만4000명분의 먹는 코로나19 치료제를 확보할 계획이다.
이 중 화이자 경구용 코로나19 치료제가 이날 긴급사용 승인을 획득함에 따라 국내에 먼저 들어온다. 화이자는 팍스로비드가 바이러스 체내 복제를 막아 환자의 중증 진행을 멈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화이자가 공개한 팍스로비드 임상 2·3상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감염 고위험군이 증상 발현 사흘 안에 먹을 경우 위중증·사망 위험이 89%까지 낮아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5일 안에 복용하면 효과가 88% 정도로 나타났다. 임상은 코로나19 고위험군 2246명을 대상으로 했다.
식약처는 △코로나19 확진자 증가에 따른 먹는 치료제 도입의 필요성 △안전성·효과성 검토 결과 △전문가 자문회의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번 긴급사용 승인 결정을 내렸다. 또 ‘공중보건 위기대응 의료제품 안전관리·공급위원회’의 심의도 거쳐 팍스로비드의 긴급사용 승인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팍스로비드의 1회 복용분은 ‘니르마트렐비르’ 2정과 ‘리토나비르’ 1정이다. 환자는 5일간 하루당 2회분을 복용해야 한다. 증상 발현 후 가능한 한 빠르게 투여돼야 높은 효능을 기대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체중 40㎏ 이상인 12세 이상 연령층 가운데 중증 진행 위험이 높은 경증·중등도 환자가 의사 처방을 받아 이 약을 먹을 수 있도록 했다. 이는 FDA 승인 기준과 유사한 수준이다. 화이자가 임상에서 설정한 ‘중증 진행이 높은 환자’는 △60세 이상 △비만 △만성 신질환 △당뇨병 △암환자 △만성 폐질환 △심혈관계질환 △고혈압 등을 앓고 있는 경우다.
국내 공급은 정부가 화이자로부터 구매한 뒤 병원·약국 등에 보내는 식으로 이뤄진다. 보건소·지방자치단체 재택치료자·생활치료센터 입소자 등에게도 배송돼 투약될 전망이다. 정부는 해당 약에서 △미각 이상 △설사 △혈압 상승 △근육통 등의 부작용이 보고됐으나 대부분 경미해 안전성에 대한 우려는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국내 기업 셀트리온 개발한 코로나19 항체치료제와 화이자의 팍스로비드는 투약군이 유사하다. 두 약 모두 중증으로 진행될 위험이 높은 경증 및 중등증을 대상으로 한다. 직접적으로 경쟁이 이뤄지는 셈이다.
시장에선 투약 방법과 보관 용이성에서는 팍스로비드의 손을 들어주는 분위기다. 렉키로나는 정맥투여 방식으로 약 60분이 소요된다. 가정에서도 복용이 가능한 팍스로비드와 비교해 간편성이 떨어지는 셈이다. 보관 방법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렉키로나주는 차광한 상태로 냉장보관(2~8℃) 보관해야한다. 그러나 팍스로비드는 실온(15~30℃)에서 보관할 수 있다.
렉키로나와 팍스로비드 간 효능 비교는 아직 정확한 데이터가 없어 업계에선 판단에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다만 렉키로나는 지난 2월부터 식약처로부터 조건부허가를 받아 방역 현장에 사용돼왔고, 지난 9월에는 정식 품목허가로 변경 승인된 만큼 팍스로비드보다 투약 사례가 많다는 장점이 있다. 렉키로나는 유럽의약품청(EMA)로부터 정식 품목허가를 획득하기도 했다. 회사는 이에 따라 최근 유럽 9개국에 렉키로나 공급을 시작했다.
중앙방역대책본부 집계에 따르면 렉키로나는 국내에서만 23일 기준 전국 212개 병원서 3만3915명의 환자에게 투여됐다. 아직 사망 사례는 물론 심각한 부작용도 보고되지 않았다.
렉키로나의 치료 효과는 국가 연구원을 통해서도 확인된 바 있다. 국립보건연구원 국립감염병연구소는 실제 의료현장에서 렉키로나의 치료 효과를 분석해 발표했다. 삼성서울병원 등 3개 병원에서 연구용역으로 수행된 조사 결과 렉키로나 치료군이 대증요법(원인이 아닌 증세에 대해서만 실시하는 치료법) 치료군보다 중증으로의 진행 비율이 78% 낮게 나타났다.
정부는 이 같은 효능을 확인한 뒤 렉키로나의 투약을 늘리고 있다. 27일에는 셀트리온의 의약품을 국내에 공급하는 셀트리온제약과 질병관리청이 렉키로나의 추가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회사는 약 5만명분의 렉키로나를 내년 1분기 동안 전국 지정 치료기관에 공급한다. 질병청은 지난달 24일부터 단계적 일상회복을 시작하면서 늘어나는 중증 환자의 증가세 감소를 위해 중증 이전 단계부터 항체치료제 렉키로나를 적극 사용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먹는 약의 국내 사용은 코로나19 백신에 사업적 역량이 집중된 SK바이오사이언스에도 영향이 불가피한 소식으로 꼽힌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진행하는 사업이 대부분 코로나19 백신과 관련이 있지만, 화이자 치료제와 직접적인 시장경쟁을 벌이진 않는다. 다만 먹는 약은 코로나19 종식의 가장 필수적인 전제조건으로 여겨지는 만큼 백신 사업 확대에 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경구용 치료제는 분명 코로나19를 종식할 수 있는 강력한 요건 중 하나로 여겨져 ‘게임체인저’로 불려왔다”며 “화이자 경구용 코로나19 치료제의 효능을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먹는 약의 등장은 백신·치료제 개발 기업의 향후 사업 확대에 영향을 줄 요소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셀트리온과 SK바이오사이언스엔 해당 소식이 비교적 ‘악재’로 여겨지고 있지만, KPX생명과학엔 ‘호재’로 꼽힌다. KPX생명과학은 화이자에 항생체 중간체 ‘EDP-CI’를 독점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KPX생명과학의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가격제한폭(29.86%)까지 치솟은 1만2천700원에 거래를 마쳤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먹는 약 등장은 코로나19 팬데믹 종식을 앞당길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관련 기업들엔 사업적 영향이 불가피해 달갑지 않은 소식일 수 있다”며 “다만 화이자가 개발한 코로나19 경구용 치료제가 향후 얼마나 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더 지켜볼 필요가 있고, 치료제만큼이나 백신 확보도 중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