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월요일, 주목할 만한 블록체인 프로젝트나 업계 트렌드를 알기 쉽게 풀어봅니다.
▲ (사진=픽사베이)
▲ (사진=픽사베이)

"가상자산(암호화폐)은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우리나라 금융당국이 가상자산 시장에 강경한 규제 입장을 유지한 준거논리로 작용했습니다.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이 2019년 말 발행한 '자금세탁방지 연차보고서'에서 당시 은성수 금융위원장, 김근익 FIU 원장은 가상자산 위험에 대응해야 한다고 직접적으로 경고했죠. 물론 가상자산 거래소를 통한 자금세탁 사례 등이 발생한 데 따라 이를 방지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세계 경제 질서의 중심으로 일컬어지는 미국은 어떨까요? 가상자산 범죄에 대해 더욱 촘촘한 방어계획을 세우지 않았을까요? 현실은 달랐습니다.

지난해 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서명한 2022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NDAA)을 살펴보면 테러 및 불법 금융에 대한 국가 전략에서 "이른바 암호화폐, 컴퓨터, 통신 또는 인터넷 기반 사이버 범죄 등의 방법들"이라는 문구가 삭제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신 "진화하는 형태의 가치 이전과 관련된 불법금융 동향에 대한 논의 및 데이터"라는 문구를 업데이트했죠. 법안에 담긴 국방 관련 예산이 역대 최대 규모인 7680억 달러(약 915조원)에 달하지만, 가상자산을 표적화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째서일까요? 미국 연방수사국(FBI), 중앙정보국(CIA)을 비롯한 세계 각국 정보기관이 활용하는 블록체인 데이터 플랫폼 기업 체이널리시스의 보고서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세계 암호화폐 거래액 중 범죄 용도로 송금된 비중은 2019년 2.1%(약 214억 달러)에서 2020년 0.3%(약 100억 달러)로 크게 낮아졌습니다.

2020년 범죄 활동과 관련한 암호화폐 수령액의 대부분은 사기(스캠)가 54%로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랜섬웨어의 비중이 7%에 그쳤지만, 이 수치가 2019년에 비해 311% 증가해 어떤 암호화폐 기반 범죄보다도 극적인 상승률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랜섬웨어 범죄자에 대한 송금액만이 아니라 기업과 정부의 총 경제적 손실을 고려했을 때 일부 전문가들은 랜섬웨어로 인해 200억 달러(약 24조원)의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즉 암호화폐 범죄는 사기와 랜섬웨어라는 '수단'을 근절할 역량이 무엇보다도 선행돼야 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목적'인 암호화폐만 놓고 볼 문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오히려 전 세계적으로 가상자산 도입이 지속되고 여러 추적 기술이 발달하면서 가상자산은 범죄에 악용되는 도구에서 범죄를 무너뜨리는 도구로 변할 것이라는 게 체이널리시스의 2022년 전망입니다.

전 미연방수사국(FBI) 고위 간부인 거바이스 그리그(Gurvais Grigg) 체이널리시스의 공공 부문 CTO는 "가상자산 추적성(Traceability)은 가상자산을 이용하는 범죄자들을 잡기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가상자산은 익명성을 통해 추적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데 이는 큰 오해"라며 "오히려 가상자산은 공개적이고 변경 불가능한 블록체인 장부가 생성돼 매우 투명하다. 여러 추적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가상자산은 점점 범죄와의 전쟁에서 경쟁력을 얻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이는 한국의 가상자산 관련 정책에도 시사점을 줍니다. 부정적 인식에 기반한 규제책만으로는 가상자산 범죄 해결에 결코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름의 규제책은 있어야 하겠지만, 그에 못지 않게 가상자산 산업에 대한 육성책 마련에도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있어야 범죄 예방 기술의 발전도 촉진될 수 있습니다.

체이널리시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암호화폐 도입률은 전세계 40위를 기록해 전년도(17위) 대비 23계단이나 하락했습니다. 한국의 암호화폐 투자 활동이 고립된 시장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글로벌 가상자산 생태계는 디파이와 NFT(대체불가능토큰)로 확장하고 있지만 국내 투자 활동은 알트코인 거래에 집중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죠.

이를 방증하는 최신 사례가 코인원의 외부지갑 등록 제도입니다. 본인 인증이 가능한 지갑만 등록할 수 있어, 본인식별 정보 없이 가입할 수 있는 '메타마스크'로 출금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죠. 메타마스크는 디파이, NFT 거래에 자주 사용되는 전자지갑입니다. 코인원과 실명계좌 계약을 맺은 NH농협은행은 자금세탁 방지를 위한 '트래블룰'과 관련한 조건을 까다롭게 요구했는데, 외부지갑 송금 제한이 농협은행의 계약조건 중 하나인 것으로 알려집니다.

이렇게 되면 가상자산 거래소는 24시간 운영되는 증권시장과 다를 바 없어보입니다. 중앙화된 시중은행에 예속된 상황에서 어떻게 디파이 시장이 성장할 수 있을까요? 블록체인의 고유한 특성을 살리면서도 추적 기술을 고도화하는 방법으로 사고를 방지할 수 있지 않을까요? 대선을 맞아 정치권에서도 블록체인 육성이라는 담론을 내놓고는 있지만, 블록체인과 가상자산의 특수성에 대한 리터러시(문해력)를 키우지 않는다면 산업 육성은 요원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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