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가 가진 강점은 핸드셋의 핵심 부품이 되는 반도체와 그 인사이트를 같이 이끌어나가는 서비스다. 양단에서 세상을 이끌어나가는 리더가 되겠다”

지난 8일(현지시각) 폐막한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박정호 SK스퀘어·SK하이닉스 부회장은 기자들과 만난 ‘SK ICT 패밀리 퓨처 토크’ 행사를 통해 ‘미래 먹거리 시장에서 SK ICT연합은 무엇이 준비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밝혔다. 

▲ 지난 7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2022 행사장에서 열린 'SK ICT 패밀리 퓨처 토크' 행사에서 박정호 SK스퀘어·SK하이닉스 부회장이 발언하고 있다.(사진=SK 공동 보도자료)
▲ 지난 7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2022 행사장에서 열린 'SK ICT 패밀리 퓨처 토크' 행사에서 박정호 SK스퀘어·SK하이닉스 부회장이 발언하고 있다.(사진=SK 공동 보도자료)

발언의 전제에는 지난 20년 간 디지털 디바이스를 지배하는 스마트폰 너머에 대한 고민이 깔려있다. 지금까지의 서비스로는 스마트폰 이상의 유스케이스(Use Case)를 찾기 쉽지 않았지만,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메타버스 시대에는 분명 새로운 유스케이스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이번 행사에서 SK가 메타버스의 ‘SK 버전’인 ‘아이버스(AI-Verse)’를 공개하면서 동시에 SK텔레콤과 분할한 투자전문회사 SK스퀘어, 그리고 SK하이닉스가 함께 ‘ICT 연합’을 만들고, 또 퀄컴과도 미래 협업을 논의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쉽게 말해 2020년대가 아닌 ‘2030년대의 디지털 세계’를 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AI반도체 '사피온', 하이닉스 아닌 텔레콤이 만든 이유
SK ICT 연합은 SK스퀘어, SK텔레콤, SK하이닉스가 운영하는 ‘3사 시너지협의체’다. 단순히 3사 간 협업 수준을 넘어서 국내외 반도체, ICT 분야 R&D 협력, 공동투자 등을 논의하고 글로벌 진출까지 추진한다. 향후 SK ICT 3사는 전략적 투자를 통해 해외 유니콘 기업을 발굴하며, SK텔레콤과 SK하이닉스는 투자사와의 사업 파트너십을 강화하거나 향후 유리한 조건으로 M&A에 나설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3사는 ‘첫 단추’로 인공지능 반도체 사피온(SAPEON)의 글로벌 진출을 선언했다. 사피온은 SK텔레콤이 SK하이닉스와 협업해 개발을 주도했고, 현재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회사 TSMC의 12인치 웨이퍼 기반 공정으로 X220 버전이 탄생했다. 지난해 말 3사 연합은 한국 법인 사피온 코리아를 만들었고 현재 미국에 사피온 인크 아메리카(Sapeon Inc. America)를 설립하는 걸 결의한 상태다.

▲ SK텔레콤이 개발한 '사피온 X220'.(사진=SK텔레콤)
▲ SK텔레콤이 개발한 '사피온 X220'.(사진=SK텔레콤)

AI반도체는 개별 기업에 대한 맞춤형 칩이라 봐도 무방하다. 기존의 CPU나 GPU가 여러 기업에 공급하기 위한 제품으로서 소품종 대량생산에 적합했다면, AI반도체는 소수 기업의 특정한 요구에 맞춰주기 때문에 다품종 소량생산에 가깝다. SK가 사피온으로 AI반도체 시장에 뛰어든 건 아직까지 GPU에 의존하고 있는 AI 데이터센터 시장의 '대항마' 성격으로 기업의 특정한 요구에 맞춘 칩을 내놓겠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사피온은 일견 반도체 회사인 SK하이닉스가 만들어야할 듯하지만, 이 AI반도체는 SK텔레콤이 주도했다. SK하이닉스의 주력 제품은 D램과 낸드플래시와 같은 메모리 반도체, 8인치 웨이퍼 기반 파운드리, 이미지센서 같은 시스템반도체에 강점이 있다. 하지만 AI반도체는 반도체임에도 기존 전통적 반도체와는 다른 ‘이종 산업’의 면모가 있다.

AI반도체는 오히려 기업에 소프트웨어적으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SK텔레콤이 담당하는 게 더 유리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에만 치중됐던 SK텔레콤이 고객사에 하드웨어적 지원을 해줄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유영상 SK텔레콤 사장은 통신사이자 디지털 서비스 회사로서 SK텔레콤은 스마트폰 너머 차세대 디바이스를 준비해야 하며, 그런 면에서 향후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기술적 요소’를 제공해야 한다고 사피온 개발 이유를 설명했다.

▲ 지난 7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2022 행사장에서 열린 'SK ICT 패밀리 퓨처 토크' 행사에서 이석희(왼쪽) SK하이닉스 사장, 유영상 SK텔레콤 사장이 각각 발언하고 있다.(사진=SK 공동 보도자료)
▲ 지난 7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2022 행사장에서 열린 'SK ICT 패밀리 퓨처 토크' 행사에서 이석희(왼쪽) SK하이닉스 사장, 유영상 SK텔레콤 사장이 각각 발언하고 있다.(사진=SK 공동 보도자료)

유영상 사장은 “통신사업과 SK텔레콤이 10년 후 어떠한 모습이 되어야 하는가 고민하면서 나온 화두가 커넥티드 인텔리전스(융합과 지능의 합성어)”라며 “스마트폰이란 디바이스가 변하지 않는 상태에서 5G 유스케이스를 찾기 쉽지 않았지만 메타버스 디바이스가 나왔을 때 새로운 유스케이스가 창출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석희 SK하이닉스 대표도 “수많은 고객사가 그런 것(AI반도체)을 한다”라며 “좀 더 지능화된 메모리 만들려고 하면 사피온 같은 엑셀러레이터와 같이 협업하면서 전체 퍼포먼스를 올리고 전력 소비를 줄이는 ‘퍼포먼스 퍼 와트’(Performance per Watt) 개념을 혁신할 수 있는 그런 지능화된 메모리를 하려면 긴밀히 협업해야 한다”라고 부연했다.

대(大) 협업의 시대
박정호 부회장을 비롯한 SK ICT 연합 주요 경영진들이 CES2022에서 퀄컴 부스에 노크한 것도 이와 결이 닿는다. 퀄컴은 모바일용 어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와 모빌리티 기기에 적용되는 칩에서 세계적 강자이지만, 차세대 디바이스나 칩에 대해선 시작 단계에 불과한 만큼 그들 또한 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지난 6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2022 행사에서 박정호(사진 오른쪽) SK스퀘어·SK하이닉스 부회장이 크리스티아노 아몬 퀄컴 CEO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사진=SK텔레콤)
▲ 지난 6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2022 행사에서 박정호(사진 오른쪽) SK스퀘어·SK하이닉스 부회장이 크리스티아노 아몬 퀄컴 CEO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사진=SK텔레콤)

박정호 부회장은 “퀄컴은 우리나라에서 모바일 칩 강자 이미지가 있지만 모바일 칩조차 굉장히 많은 도전에 직면했다”라며 “새 CEO(크리스티아노 아몬)는 차량이나 오큘러스(VR 헤드셋) 같은 새로운 단말에 칩이 들어가는 데 대해 시장 생태계 개척을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반도체, 통신이 주력인 SK와 협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윤풍영 SK스퀘어 투자책임자(CIO)는 “퀄컴이나 SK텔레콤, 하이닉스, 스퀘어 모두 AR과 VR 등으로 개설되는 새로운 플랫폼과 서비스, 기술에 대한 고민이 많다”라며 “퀄컴도 별도의 내부 투자 조직이 있고 우리도 스퀘어를 중심으로 그런 조직이 있어 양사가 그룹대 그룹으로 투자 철학을 공유하고 합의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SK하이닉스 측은 퀄컴과의 미팅에서 SK하이닉스는 그들의 데이터센터용 애플리케이션와 PC에 탑재할 수 있는 고속 메모리 공동 개발 방안을 모색했고, SK텔레콤도 메타버스와 스마트팩토리 사업 등 5G 관련 B2C·B2B 사업 분야에서의 협력과 투자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박정호 부회장은 “글로벌 ICT 경쟁 환경이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글로벌 협업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SK ICT 패밀리는 ICT 전 영역에서 글로벌 기업들과의 장벽 없는 초협력을 통해 혁신을 선도해 나갈 것”이라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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