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지능형반도체 개발에 10년에 걸쳐 1조원을 투자하고 있는 정부가 메모리 연산 통합 반도체(PIM) 개발에 약 4000억원을 추가로 투입한다. 차세대 인공지능(AI) 반도체의 패러다임을 혁신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PIM에 적극 투자함으로써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목표다. 정부는 초거대 AI용 API(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 개발, AI 학습용 데이터 수집 시 저작권 침해 면책 규정을 마련해 기업들의 AI 개발도 지원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는 19일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제2회 인공지능 최고위 전략대화(이하 최고위)를 서울중앙우체국에서 개최했다. 최고위에는 임혜숙 과기정통부 장관과 이성환 인공지능대학원협의회장을 비롯해 국내 주요 빅테크 기업, 스타트업 대표들이 포함돼 있다.

2회 전략대화에서 눈길을 끈 대목은 한국형 AI 반도체 개발에 대한 대폭적인 지원 강화다. 정부는 2020년 수립한 AI 반도체 산업발전전략에 따라 2029년까지 총 1조원 규모의 대형 연구개발(R&D)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번 회의에서는 여기에 한국이 강점을 가진 메모리 반도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PIM 반도체 개발에 2028년까지 4027억원을 추가 투입하기로 했다.

▲ 제2회 인공지능 최고위 전략대화 결과를 발표하는 류제명 과기정통부 인공지능기반정책관 (사진=브리핑 영상 갈무리)
▲ 제2회 인공지능 최고위 전략대화 결과를 발표하는 류제명 과기정통부 인공지능기반정책관 (사진=브리핑 영상 갈무리)

AI 반도체 개발부터 실증까지 정부가 적극 지원한다 
PIM 반도체는 메모리가 CPU·GPU 등과 데이터를 주고받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메모리 내에서 직접 연산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특수 반도체다. 기존 명령어 처리 방식보다 속도가 빠르고 전력 소모도 줄일 수 있어 차세대 AI 반도체의 패러다임을 혁신할 수 있는 대안으로 꼽힌다.

이를 위해 AI 반도체 NPU(신경망 처리장치)칩의 설계 기술을 확보해 패키지형 제품 생산을 지원하는 한편, 한국이 취약한 AI 반도체 개발환경 소프트웨어 개발도 추진한다.

류제명 과기정통부 인공지능기반정책관은 "현재 엔비디아가 글로벌 AI 반도체 선도기업인데 여기엔 하드웨어 기술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플랫폼인 쿠다(CUDA)의 영향력도 적지 않다"며 "우리 역시 하드웨어와 더불어 강한 소프트웨어 경쟁력도 확보하겠단 의미"라고 말했다.

이렇게 개발된 AI 반도체는 사용 사례 발굴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는 개발된 국산 AI 반도체가 다양한 국가 R&D, 실증 사업 및 민간데이터센터까지 확산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나아가 기술개발 과정에서 많은 비용이 수반되는 'AI 반도체 설계툴'의 공동 활용을 지원하고, 학사부터 석·박사급에 이르는 AI 반도체 전문인력 양성에 힘쓸 예정이다.

현재 실무형 인력 양성 방안으로는 AI 반도체 관련 학제 간 학부 연합전공 신설, 기업과 대학의 교차 인턴십 프로그램 등이 계획 단계에 있다.

▲ 자료=과기정통부
▲ 자료=과기정통부

아울러 국가 AI 반도체 R&D 사업에는 가급적 많은 기업이 함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할 방침이다. 최동원 정보통신방송기술정책과장은 "이제 구글, 애플, 테슬라 등 글로벌 IT업체들도 자체 AI 반도체를 개발 중이고 국내에선 SKT나 KT 같은 대기업들도 AI 반도체를 개발 중"이라며 "전통적인 반도체 업체들을 넘어 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기 때문에 많은 기업이 참여할수록 한국 AI 반도체 기술에도 많은 발전 가능성이 생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 반도체의 취약점으로 지목되는 시스템 반도체 경쟁력 강화도 향후 중요 과제로 제시됐다. 최고위에 따르면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는 한국기업의 점유율이 약 3%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기업 간 협력, 수요 기업들과의 연계 등을 적절히 결합할 수 있는 협의체 운영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대기업이 만든 초거대 AI, 중소기업도 함께 쓴다
AI 반도체 외에도 초거대 AI 활용 방안과 AI 학습용 데이터 수집 범위를 더욱 확대하는 방안도 중요하게 논의됐다. 초거대 AI는 말 그대로 대량의 학습량, 연산력을 바탕으로 일반 AI보다 훨씬 고성능, 고품질 활용이 가능한 AI 시스템을 말한다.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대기업들은 지난해부터 이미 초거대 AI 개발 경쟁에 불을 붙이고 있는 상황이다.

최고위는 초거대 AI 활성화를 위해 중소기업의 활용 기회 확대가 중요하다고 봤다. 이에 따라 정부는 대기업이 개발한 초거대 AI 모델을 활용해 인공지능 솔루션·서비스를 개발하는 국내 중소기업에 API 사용 비용을 지원할 계획이다. API는 이미 개발된 기능을 제3의 시스템에서 명령어 호출 형식으로 간단히 이식해 쓸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된 코드를 말한다.

또 중소기업과 연구기관, 대학 등이 AI 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GPU 자원도 광주 인공지능 집적단지를 통한 대규모 단위(1페타플롭스 이상) 지원안을 검토 중이다.

AI 학습용이라면 공개 데이터 수집은 '무죄'
정부가 디지털 뉴딜 정책에서도 강조한 AI 학습용 데이터 구축 사업은 앞으로도 법적 허들이 줄어들게 된다. 이번 최고위 회의를 통해 정부는 인터넷에 공개된 데이터를 AI 학습용 목적으로 사용할 시 저작물 이용 면책 규정이 적용될 수 있도록 법적 기반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된 법률안이 이미 국회에 발의돼 있으며, AI 학습용 데이터 구축 중 저작권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데이터의 개방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나아가 구축된 AI 학습용 데이터는 'AI Hub'를 통해 2025년까지 1300여종을 개방할 계획이며, AI Hub가 인공지능·데이터 활용의 핵심 플랫폼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민·관 데이터 플랫폼 연계 및 교육·실습 기능 보완 등을 추진한다.

▲ AI 학습용 데이터 구축 및 활용 로드맵 (자료=과기정통부)
▲ AI 학습용 데이터 구축 및 활용 로드맵 (자료=과기정통부)

끝으로 데이터 구축 참여인력의 능력개발, 전문성 증진을 지원하기 위해 연 1만명 규모로 추진 중인 교육과정의 전문·관리자 비중을 점진 확대하고, 크라우드 소싱 적용분야도 데이터 수집·가공을 넘어 검수·품질관리 등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로 점차 넓혀갈 예정이다.

임혜숙 과기정통부 장관은 "인공지능 전략대화는 기업과 정부가 함께 논의해 정책 실현 방안을 구체화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매우 크다"며 "앞으로도 우리나라의 AI 경쟁력 확보를 위해 민관이 함께 고민하고, 우리 기업이 글로벌 무대에 우뚝 설 수 있도록 정책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자료=과기정통부)
▲ (자료=과기정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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