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광수 은행연합회 회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사진=은행연합회)
▲ 김광수 은행연합회 회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사진=은행연합회)

이달 5일부터 시행된 '마이데이터(본인신용정보관리업)' 제도를 놓고서도 은행업권이 빅테크(대형 IT기업)에 비해 규제 차별을 받고 있다는 '기울어진 운동장'론을 이어갔다. 마이데이터 서비스는 현재 금융소비자를 주요 대상으로 하지만 은행보다 IT기업을 통한 가입자가 더 많은 추세다.

김광수 은행연합회장은 지난 26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대표적인 기울어진 운동장 규제로는 금융의 비금융 진출이 어려운 점과 마이데이터 제도 하에서의 정보불균형"이라며 "이를 개선해야만 앞으로 공정한 경쟁기반 하에서 은행권도 데이터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정보불균형의 대표적인 사례로 '적요(摘要)정보(통장에 표시되는 송금인과 수취인 정보)'를 꼽았다. 마이데이터는 고객의 금융·비금융 정보를 한 데 모아 개인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개념이다. 마이데이터 사업자는 자사가 가진 정보를 다른 참여사들에 개방해야 한다.

김 회장은 "마이데이터 제도에서 은행은 은행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정보인 적요정보, 말하자면 송금하는 개인적인 동기까지 포함하고 있는 상세한 금융거래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며 "빅테크의 상거래 정보는 대분류만을, 그나마도 대부분 '기타'로 처리해서 제공되고 있어서 은행 입장에선 사실상 의미있는 정보를 제대로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높은 고객 접근성을 무기로 하는 핀테크기업에 '남 좋은 일'만 시키고 있다는 논지다. 배진교 정의당 의원실이 금융위원회에서 제출받은 '마이데이터 서비스 가입자 현황' 자료를 보면 이달 12일 기준 마이데이터 서비스 가입자 총 1084만명 중 핀테크·정보기술(IT)·신용평가(CB) 업권의 마이데이터 가입자가 398만명으로 1위를 기록했다. 카드업권(327만명), 은행·저축은행·상호금융 업권(315만명), 금융투자업권(44만명)이 그 뒤를 이었다.

마이데이터뿐 아니라 은행권은 금융당국의 정책에 누적된 불만이 크다. 신용카드와 비슷한 후불소액결제 도입 등 혁신을 명분으로 IT기업에 상당한 수준의 규제 예외를 해줬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빅테크는 전자금융법이나 인터넷은행법을 통해서 금융에 이미 진출할 수 있지만, 은행의 비금융 진출은 여전히 극히 제한돼 있다"며 "따라서 빅테크는 금융과 비금융 데이터 모두를 확보하기 쉽지만 반대로 은행은 비금융 데이터 확보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은행들은 빅테크들이 플랫폼과 데이터를 독점할 경우 경쟁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금융의 생활서비스 진출이나 데이터 활용을 제약하는 규제의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김 회장의 주장은 이를 방증한다는 분석이다. 국내 5대 금융지주 회장들도 올해 신년사에서 공통적인 위협 요인으로 빅테크를 꼽았다.

최근 취임한 금융당국 수장들은 이 같은 금융사들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6일 금융지주 임원들과 주요 빅테크 대표가 참석한 '금융플랫폼 간담회'를 열고 "금융회사와 테크기업은 '확대 균형' 체제로 나아가야 한다"며 "이 둘이 동반성장할 수 있는 넓고 평평한 운동장을 만들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피력했다.

그는 "기업 간 불합리한 규제차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공정한 영업환경을 만들겠다"며 "혁신을 이유로 최소한의 금융규제와 감독도 적용받지 않기를 바라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혁신성을 기치로 하는 빅테크를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정 원장은 "금융지주와 빅테크를 막론하고 동일기능·동일규제의 대원칙하에 감독 방향을 설정할 것"이라고도 했다. 동일기능·동일규제는 금융사 기능을 하면 금융사와 동일한 수준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에 앞서 고승범 금융위원장 역시 "금융업에 진출하는 빅테크도 동일기능·동일규제 아래 진출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다만 그는 "빅테크와 중소 핀테크와의 문제는 서로 다르다고 본다"며 이원화된 규제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고 위원장과 정 원장 공통적으로 빅테크를 규제 사정권에 넣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런 판세와 맞물려 빅테크들은 규제편차로 인한 이익을 스스로 일정부분 포기하기 시작했다. 곧 있을 대통령선거에 따라 정책적 유동성이 큰 상황이다. 핀테크업계에선 종합지급결제업 등을 새로이 허용하는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이 "올 하반기께 다뤄질 것"이라고 내다본다.

카카오페이와 네이버파이낸셜은 카드 수수료율을 인하하는 정부 시책에 맞춰 영세 소상공인들과의 상생을 위해 오는 1월 31일부로 수수료를 인하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카카오페이의 온라인 가맹점들은 규모에 따라 영세 0.3%p, 중소사업자 0.1~0.2%p 인하된 수수료를 적용받게 된다. 네이버파이낸셜을 이용하는 영세 사업자도 주문관리수수료가 2.0%에서 1.8%로, 결제형 수수료는 1.1%에서 0.9%로 낮아진다.

카드사는 여신전문금융업법에 따라 3년마다 카드 가맹점 수수료 비용을 분석하고 수수료를 조정받는 반면, 전자금융거래법 규제를 받는 빅테크는 수수료를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 이는 빅테크의 대표적인 규제차익으로 언급돼왔다.

유력 대선후보들은 금융사와 빅테크 어느 한 쪽의 편을 들고 있진 않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기본대출을 포함한 청년기본금융 제도를,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예대금리차(예금금리와 대출금리 간 차이) 투명 공시 제도를 약속했다. 모두 은행에 득이 되는 공약은 아니다.

저작권자 © 블로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