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없다면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은행은 수익성을 예대마진(예금과 대출의 금리차이에서 얻는 이익)에만 의존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우리은행은 2018년부터 중소기업에 직접투자하는 제도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핀다 등 유망 스타트업을 투자 포트폴리오로 두고 있죠.

•골드만삭스는 배달의민족을 서비스하는 우아한형제들에 일찍이 투자해 매각 계약 당시 벌어들인 총수익이 조 단위에 달합니다.

▲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지난해 11월 24일 우리금융 본사 4층 강당에서 열린 '핀테크데모데이' 행사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사진=우리금융그룹)
▲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지난해 11월 24일 우리금융 본사 4층 강당에서 열린 '핀테크데모데이' 행사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사진=우리금융그룹)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한 기준금리 인상이 화두라지만 아직도 저금리 기조인 것은 분명합니다. 미국의 현재 기준금리는 0.00∼0.25%죠. 한국은행이 지난달 14일 기준금리를 1%에서 1.25%로 인상했다지만 여전히 1%대로 "저금리 시대 끝났다"고 하긴 어렵습니다. 한국의 저출생, 저성장 국면이 급변하지 않는 이상 저금리는 상수입니다. 은행의 수익성지표인 순이자마진(NIM)이 극적으로 상승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뜻이죠.

'돈으로 돈을 버는' 시중은행들에 있어선 언제까지고 대출이자에만 의존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물론 인건비와 점포 운영비 등 고정비용을 줄일 순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합니다. 이 때문에 은행권은 요즘 스타트업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우리은행이 대표적입니다. 이 은행은 2018년 6월부터 발전 가능성이 높은 중소기업에 직접투자하는 제도를 신설했죠. 2021년까지 총 8번의 공모를 통해 총 78개 기업, 약 730억원을 투자했습니다. 올해에도 이달 3일부터 18일까지 '제9차 중소기업 성장 지원을 위한 투자대상기업 공모'를 실시합니다. 혁신기술을 보유하고 있거나 성장 가능성이 높은 스타트업 등 중소법인을 심사해 올 6월까지 약 10곳 내외의 투자 대상기업을 선정합니다. 상환전환우선주(RCPS) 등의 방식으로 10억원 이내의 자금을 투자한다는 계획입니다.

우리은행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살펴볼까요? 최근 1000억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아 115억원 규모의 '시리즈 B' 투자를 유치한 핀다가 눈에 띕니다. 우리은행은 핀다를 앞선 '시리즈 A' 때 RCPS 10억원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투자했죠.

핀다는 업계 최대 규모의 비교대출서비스 핀테크 기업입니다. 누적 대출 승인액(대출비교 서비스 이용 시 모든 금융사로부터 승인이 난 금액의 총합)은 약 616조원에 달하죠. 성장에 힘입어 IPO(기업공개)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아울러 우리은행은 액티비티 플랫폼 프렌트립(Frip), 수산물 도소매 플랫폼 인어교주해적단을 운영하는 더파이러츠, 국내 최대 골프 플랫폼 스마트스코어, 리워드 커머스 기반의 스타트업 스타일씨코퍼레이션 등 성장성을 보이는 스타트업들에 투자를 단행했습니다.

이는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의 전략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는 지주사 전환 후 주주와 첫 공식 대면한 자리에서부터 "자산관리, CIB, 혁신성장부문을 집중 육성해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키워나갈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기존 이자이익 중심의 순이익 기반을 달리 만들 것이라고도 역설했죠.

손 회장은 취임하자마자 IB(투자은행)그룹 내에 혁신성장금융팀을 신설했습니다. 벤처에 직접투자하고 IPO까지 성공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목표를 내걸었죠. 해외 스타트업 투자·여신심사를 위한 별도 조직인 아시아심사센터를 싱가포르에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또 2020년 취임한 권광석 우리은행장은 IB그룹장을 역임했던 전문성을 살려 IB와 함께 자산관리사업을 키우며 은행의 비이자이익을 확대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은행의 지난해 1~3분기 비이자이익은 1조92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7.2% 늘었습니다. 총자본이익률(ROE)은 10.32%로 전년비 3.75%p 상승하며 여타 시중은행들을 추월했죠. 우리은행 IB그룹의 지난해 상반기 당기순이익도 약 60% 늘어난 1542억원에 달했습니다. 이는 그룹 전체의 비이자이익을 늘리는데 톡톡한 기여를 했습니다.

▲ 우리금융그룹 전체 비이자이익을 분기별로 나타낸 그래프.(사진=우리금융그룹)
▲ 우리금융그룹 전체 비이자이익을 분기별로 나타낸 그래프.(사진=우리금융그룹)

특히 우리은행은 금융이 아닌 문화분야에서도 감각과 선구안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2017년 당시 중견 벤처캐피탈 컴퍼니케이파트너스와 손잡고 시중은행 최초로 한국영화 전문투자 펀드인 '우리은행-컴퍼니케이 한국영화투자펀드'를 결성했죠. 이 펀드는 영화 '기생충'에 12억원을 댔습니다. 이에 앞서서는 영화 '택시운전사'에도 투자했죠.

더 나아가 우리은행은 스타트업 투자로 '투자대박'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일례로 글로벌 주요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배달 플랫폼 배달의민족을 서비스하는 우아한형제들에 2014년 400억원 투자를 시작으로 꾸준히 지분을 확보해 매각 계약 당시 벌어들인 총수익이 '조' 단위에 달합니다. 우리은행도 '돈을 굴릴 곳'이 필요한데 당연히 골드만삭스처럼 되고 싶지 않을까요?

우리은행이 RCPS로 우선주 투자를 하는 이유입니다. RCPS는 △투자금 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 '상환권'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전환권' △회사 청산이나 인수합병(M&A) 시의 잔여재산 및 매각대금 분배에 보통주보다 유리한 '우선권'을 포함한 주식입니다. 우선주로써 높은 배당을 받다가, 상장을 앞둔 때에는 보통주로 전환해 상장 후 장내 매각을 통해 차익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신규 벤처투자 금액 중 우선주는 5조6373억원(73.4%)을 차지했습니다. 2020년 2조8850억원에 비해 급증한 수치죠. 보통주가 1조3678억원(17.8%)을 기록한 것에 견줘보면 그 규모가 상당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우리은행의 당기순이익은 그동안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중 꼴찌를 차지하다가 지난해 3분기 3위로 올라서며 반등의 가능성을 봤습니다. 아직도 우리은행은 이익 확대에 배고픈 것이죠. '투자 대박'으로 위치 역전을 노리는 건 개인투자자뿐 아니라 우리은행도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우리은행은 혁신기업의 창업과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생각해 볼 문제

•비이자이익 확대를 핵심전략으로 내건 우리금융그룹은 벤처캐피탈 계열사를 갖추기 위해 적극적으로 M&A를 할 전망입니다. VC는 규모가 크지 않아 인수가격보다는 '알짜매물'의 출회가 관건입니다. 두산그룹 계열 창업투자회사인 네오플럭스를 인수한 신한금융그룹처럼 우리금융그룹이 좋은 매물을 찾을 수 있을까요?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RCPS보다는 상환의무가 없는 보통주를 선호합니다. 정부도 투자 안정성을 위해 보통주 투자를 권고하고 있습니다. 우선주로 쏠리는 벤처투자 시장에 보통주 투자비중을 늘리기 위해선 어떤 정책이 필요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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