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게 2050년 탄소중립 목표는 단순한 환경보호운동이 아니다. 21세기 기업의 존폐를 가를 새로운 생존게임이 시작됨을 의미한다. 이미 글로벌 기업들은 탄소 감축 주도권을 쥐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선제적으로 나서는 기업들도 있는 반면, 새로운 질서에 허덕이며 도태될 기미를 보이는 기업도 있다. 국내 기업들의 ESG 현재를 해부한다.
삼성전자가 자체 친환경 평가 지표 ‘SEPI(Semiconductor Environmental Performance Index)'를 만들고 영향력을 확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현재 MSCI, CDP 등 글로벌 ESG 기관들의 평가가 반도체 산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9일 열린 반도체 전시회 ‘세미콘 코리아’ 온라인 컨퍼런스에서 이 같이 밝혔다. 발표는 서현정 삼성전자 DS 지속가능경영 사무국 상무가 맡았다. 서 상무는 지난해 하반기 삼성전자에 합류했다. 그 전까지는 기업 대상 환경 컨설팅 업체 ERM 코리아 대표를 지냈다.

서 상무는 “고객사와 투자자의 반도체 기업을 향한 환경 경영 요구가 강해지고 있지만, 반도체 기업들은 혼란스러워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MSCI, CDP 등 국내외 여러 평가기관이 다른 평가 기준으로 기업을 평가하면서도 반도체 산업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SEPI 평가 체계. (사진=세미콘코리아)
▲ SEPI 평가 체계. (사진=세미콘코리아)

SEPI는 크게 △반도체 친환경 기여(40%) △협력회사 환경 관리(20%) △사업장 환경 성과(40%) △사용자 환경 편의(5%) 4가지 카테고리로 분류된다. 이중 사용자 환경 편의는 가점 지표로 제품의 친환경 정보를 공개한 기업에 부여된다. 4가지 카테고리는 6대 항목, 32개 지표로 나뉘어 구체적인 평가가 진행된다.

삼성전자는 SEPI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SEPI 검토위원회도 설립했다. SEPI 검토위원회는 삼성전자가 뽑은 전문가 5인으로 구성된다. 안병옥 호서대 교수, 유승직 숙명여대 교수,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 전형석 UL코리아 매니저, 김정남 삼정KPMG 상무다.

▲ SEPI 검토위원회. (사진=세미콘코리아)
▲ SEPI 검토위원회. (사진=세미콘코리아)

삼성전자는 SEPI를 단순 내부 평가 지표가 아닌 반도체 업계의 기준점으로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서 상무는 “향후 SEPI가 고객사 친환경 부품 선택 기준이자 투자자의 기업 평가 기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관련 반도체 업계가 SEPI를 활용해 환경 경영 확대하고 친환경 성장을 이어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CDP 등급 강등, 자체 지표 개발로 이어졌나
일각에선 글로벌 ESG 기관들의 삼성전자 친환경 평가 등급 하락이 SEPI 개발로 이어졌다고 평가한다. 가장 신뢰도가 높은 평가기관 중 하나로 꼽히는 탄소배출 정보공개 프로젝트(CDP·Carbon Disclosure Project)는 지난해 삼성전자 기후변화대응(Climate Change) 등급을 'B'로 제시했다. 전년 A-에서 한 단계 하락한 등급이다.

CDP에 따르면 B 등급은 매니지먼트(Management) 레벨이다. A 등급(Leadership Level)과는 차이가 크다는 게 관련 업계의 반응이다. 최근 삼성전자가 ESG를 강조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뼈아픈 강등이다.

CDP가 삼성전자 등급을 낮춘 건 4년 연속 늘고 있는 직접 탄소 배출량(Scope 1) 때문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CDP에 제출한 2020년 Scope 1은 572만6300톤이다. 3년 전과 비교하면 56.1%, 1년 전과 비교하면 13.0% 증가했다. 탄소 배출은 성격과 범위에 따라 Scope 1~3 3단계로 구분된다. Scope 1은 사업장에서 직접 배출되는 탄소를 의미한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CES 2022 미디어 간담회가 끝난 뒤 기자와 만나 "(탄소 배출량 증가는)매출이 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매출이 늘어나는 과정에서는 탄소 배출 관리가 사실상 어렵다는 의미다. 애플, 마이크론, LG전자 등 경쟁 업체들의 경우 매출 증가에도 절대 탄소배출량을 줄여나가고 있다. 

또 한 부회장은 절대 탄소 배출량의 증가가 '늘어난 매출'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실제 수치를 보면 상황이 다르다. 원단위 탄소 배출량 지표가 악화했기 때문이다. 

원단위 배출량은 탄소 총 배출량을 매출액으로 나눠 계산하는 방식이다. 삼성전자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도 해당 내용이 담겨있다. 2020년 원단위 배출량은 3.2다. 소폭이지만 전년(3.1)보다 단위 당 배출량이 늘었다. 쉽게 말해 매출 증가 추세보다 탄소 배출량 증가 추세가 빨랐다는 의미다. 

업계 관계자는 “산업 특성에 맞는 평가 기준은 좋지만, 투자자들과 고객사가 자체 개발 지표를 인정해 줄 지는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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