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 후보자가 1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에 마련된 인사청문 준비 집무실로 첫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과기정통부)
▲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 후보자가 1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에 마련된 인사청문 준비 집무실로 첫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과기정통부)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 장관 후보자에게 ICT(정보통신기술) 업계 종사자들은 규제보다 산업 진흥에 초점을 맞춰달라고 입을 모았다. 과학기술계에서는 반도체 전문가인 후보자가 미래 기술 확보를 위한 중심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기대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이 후보자는 지난 10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의 각 부처 장관 후보자 발표를 통해 과기정통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현재 서울대학교에서 공과대학 전기정보공학부 교수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그는 대표적인 반도체 전문가로 꼽힌다. 반도체는 스마트폰을 비롯해 각종 스마트 가전과 전기자동차 등 주요 ICT 기기에 빠질 수 없는 핵심 부품이다. 최근 코로나19의 여파로 전세계적으로 반도체 수급이 어려워져 반도체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이런 가운데 인수위가 반도체 전문가인 이 후보자를 ICT 전담부처 수장으로 낙점한 것은 반도체 원천 기술의 고도화와 이를 활용한 ICT 산업의 성장을 이끌어달라는 요구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통신·인터넷 업계 "규제보다 진흥" 한 목소리
과기정통부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소재 기술뿐만 아니라 통신·인터넷·미디어 등의 진흥 업무까지 맡고 있다. 이 후보자가 장관으로 임명될 경우 자신의 전공과 다소 거리가 있는 ICT 분야를 어떻게 이끌지 관심이 가는 이유다. ICT 업계에서는 이 후보자가 반도체 기술을 연구하며 관련 산업의 성장을 주도한만큼 ICT에서도 규제보다 성장에 초점을 맞춰줄 것으로 기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특히 정부의 규제를 직접적으로 받는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통신사들은 과기정통부 장관의 성향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통신 업계에서는 5G에 이은 차세대 통신 표준으로 꼽히는 6G에 대한 국가의 선제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6G는 위성과 해상통신까지 연계될 통신 표준으로 ICT뿐만 아니라 국가 안보 차원에서도 기술 선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 통신 업계 관계자는 "5G는 상용화는 가장 빨랐지만 관련 기기는 경쟁자들보다 다소 늦었다"며 "6G는 특히 중국이 이미 한발 앞서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새 과기정통부 장관은 민간 기업이 할 수 없는 국가 차원의 6G 원천기술 개발과 산업진흥에 앞장서 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네이버와 카카오를 필두로 한 ICT 플랫폼 기업들도 통신사 못지 않게 규제에 민감하다. 과거에는 규제산업을 영위하는 통신·방송사에 대한 규제가 집중됐지만 최근 네이버·카카오·구글·메타(페이스북) 등 플랫폼의 위상이 커지면서 최근 수년간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규제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이하 온플법)의 입법을 추진하면서 플랫폼 업계에서는 산업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구글과 메타 등 글로벌 플랫폼에 맞서 토종 플랫폼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국가는 한국을 비롯해 몇 안되는 가운데 규제를 강하게 할 경우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이 실추될 우려가 크다"며 "새 정부는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고 규제는 최소화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인수위는 최근 주요 ICT 업계 종사자들을 만나고 자율규제를 강조했다. 특히 공정위의 온플법에 대해 기존의 법으로도 규제할 수 있지 않느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공정위도 온플법의 입법에 대해 과거보다 속도를 내지 못하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자율규제와 산업진흥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반도체 전문가' 후보자에 과기계 기대감…"미래 기술 확보 최우선"
과학기술계에서는 반도체 전문가인 이 후보자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미래 기술력 확보'를 최우선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윤지웅 경희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미래혁신정책연구원 원장)는 차기 과기정통부에서 미래 기술력 확보를 제1 과제로 꼽으며 일본 수출 규제·공급망 재편 등 '세계화 시대 종말'을 의미하는 신호들에 적극적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윤 교수는 "패권 국가들이 과거에는 자국의 이익을 도모하는 데 세계화가 유리하다고 생각한 반면 지금은 블록화 쪽으로 가고 있는 분위기"라며 "산업통상자원부가 공급망 관리에 초점을 맞춘다면 과기정통부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혁신 역량의 강화'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래 기술력 확보를 위해 구체적으로 연구 현장에서 느낄 수 있을정도로 연구개발(R&D) 관리 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 명예회장(서울국제포럼 회장·전 환경부 장관)은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수준의 높은 R&D 투자율을 보이고 있지만 성과가 미흡한 편인데, 이를 개선하려면 R&D 관리 시스템을 합리적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새 정부에선)R&D 관리 정책이 자율성·창의성·독립성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운영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우일 과총 회장(서울대 명예교수) 역시 R&D 시스템의 개선을 차기 과기정통부에서 이뤄야할 과제로 꼽았다. 그는 "이제 한국은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R&D 시스템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할 때"라며 "이를 위해선 현재 획일적인 R&D 평가 방식을 벗어나 정밀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해당 구조를 개편하는 데엔 여러 반발이 있을 수 있는데, 과기정통부 장관에게 전권을 줘 차기 정부에서 이를 달성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과기정통부가 에너지 R&D에 대해서도 중장기적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정동욱 중앙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한국원자력학회 회장)는 원전과 탄소 관련 기술의 개발 과제가 산적한 점을 지적했다. 그는 "특히 탄소중립 달성은 산업·기술의 작은 개선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며 "2050 탄소 중립이라는 국제적 어젠다를 고려하며 단기적 R&D보다 장기적 관점으로 시장에 없는 기술에 대한 적극적 투자란 본연의 역할에 충실히 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1966년생인 후보자는 경북대학교에서 전자공학 학사 학위를, 서울대학교에서 전자공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초빙연구원, 경북대학교 전자컴퓨터공학부 교수 등을 지냈다. 2015년에는 제19회 한국공학한림원 젊은공학인상과 녹조근정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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