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셀 팀머만 기초과학연구원 기후물리연구단장이 지난 12일 정부세종청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브리핑실에서 기후 변화와 인류 진화 사이의 연관성을 규명한 연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정두용 기자)
▲ 악셀 팀머만 기초과학연구원 기후물리연구단장이 지난 12일 정부세종청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브리핑실에서 기후 변화와 인류 진화 사이의 연관성을 규명한 연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정두용 기자)

기초과학연구원(IBS)이 보유한 슈퍼컴퓨터 알레프(Aleph)를 활용해 ‘기후 변화와 인류 진화 사이의 연관성’을 규명한 연구 결과가 자연과학 분야 세계 최고 권위 학술지 네이처(Nature·Impact Factor 49.962)에 14일 게재됐다.

IBS 기후물리연구단 연구팀은 독일·스위스 연구진과 함께 기후 변화와 인류 진화 사이의 연관성을 규명했다. 연구진은 알레프를 활용해 과학계의 오랜 난제로 꼽혀온 기후 변화가 인류 진화에 미친 영향을 풀어냈다. 알레프는 연산 속도 1.43PF(1PF=1초에 1000조번 연산)와 8740TB의 저장 용량을 갖춘 IBS의 첫 번째 슈퍼컴퓨터다. 2019년 4월 공식 개통해 기후 물리 연구 분야에 활용되고 있다.

악셀 팀머만 IBS 기후물리연구단장은 지난 12일 정부세종청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브리핑실에서 진행된 사전 설명회를 통해 “연구의 핵심은 우리가 어떻게 진화해왔는지 추정한 것뿐만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진화됐다는 것을 밝혀 인류의 지적호기심을 충족하는데 기여했다는 점”이라며 “기후 시뮬레이션 모델이 과거 데이터를 통해 얼마나 정확한지를 입증하고, 이를 통해 향후 기후가 어떻게 변화할지를 예측했다는 점도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기후 변화가 인류 진화에 영향을 준다는 점은 화석과 고고학적 증거들을 통해 제시돼 왔다. 그러나 기후 변화 영향을 명확히 규명하는 일은 이뤄지지 못했다. 인류화석 유적지 근처의 기후와 관련된 자료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팀머만 단장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후모델링 △인류학 △생태학 전문가를 포함한 연구진을 구성, 다각적인 측면에서 기후 변화가 인류 진화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했다. 연구진은 △대륙 빙하 △온실가스 농도 △천문학적 변동 등을 강제력(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요인들의 영향력)으로 설정해 기후 모델링을 수행했다. 연구진은 알레프를 6개월 이상 사용해 시뮬레이션을 수행했고, 이에 따라 생성된 데이터는 500TB에 달한다.

연구진은 이 같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과거 200만년의 기온과 강수량 등의 기후 자료를 생성했다. 천문학적 변동에는 밀란코비치 이론을 사용, 지구의 자전축과 공전궤도 변화에 따라 태양에너지의 양을 변화시켜 기후를 추정했다.

연구진은 과거 200만년 동안 아프리카·유럽·아시아 3200개 지점의 인류 화석과 고고학적 표본을 포함한 포괄적인 편집본을 만들었다. 또 기후 자료를 비롯해 식생·화석·고고학 자료들을 결합, 현대 인류의 조상인 호미닌 종이 시대별로 살았던 서식지를 추정할 수 있는 시공간 지도를 구축했다.

팀머만 단장은 “고대 인류종이 서로 다른 기후 환경을 선호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서식지가 2만1000년에서 40만년까지의 시간 주기에서 발생한 천문학적 변동으로 인한 기후 변화에 따라 모두 이동됐음을 확인했다”며 “지난 200만년 동안 변화하는 기후와 식량 자원에 인류가 어떻게 적응해 왔는지를 설명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연구진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초기 아프리카 인류는 200만~100만년 전 안정적인 기후 조건을 선호, 특정 지역에만 서식했다. 그러나 80만년 전 발생한 ‘큰 기후 변화’ 이후 호미닌 종의 하나인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는 더 다양한 범위의 식량 자원에 적응했다. 덕분에 하이델베르겐시스 종은 유럽과 동아시아의 먼 지역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약 100만~80만년 전후를 기점으로 빙하기-간빙기의 주기가 약 4만1000년에서 10만년 주기로 바뀐데 따라 인류가 진화했다는 설명이다. 연구진은 더 춥고 오래 지속되는 방하기에 적응할 필요가 있었다고 봤다.

▲ 호미닌 종족별 생존 시기 및 서식지 설명 자료. IBS 기후물리 연구단은 새로운 고기후 모델 시뮬레이션과 화석 및 고고학 자료를 종합해 △호모 사피엔스(왼쪽 보라색음영)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가운데 빨간색음영)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오른쪽 파란색음영)의 선호 서식지를 계산해냈다. 음영 값이 옅을수록 서식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입된 날짜는(1ka= 1950년 기준으로 1000년 전) 연구에 사용된 가장 최근의 화석과 가장 오래된 화석의 나이를 나타낸다.(자료=과학기술정보통신부)
▲ 호미닌 종족별 생존 시기 및 서식지 설명 자료. IBS 기후물리 연구단은 새로운 고기후 모델 시뮬레이션과 화석 및 고고학 자료를 종합해 △호모 사피엔스(왼쪽 보라색음영)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가운데 빨간색음영)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오른쪽 파란색음영)의 선호 서식지를 계산해냈다. 음영 값이 옅을수록 서식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입된 날짜는(1ka= 1950년 기준으로 1000년 전) 연구에 사용된 가장 최근의 화석과 가장 오래된 화석의 나이를 나타낸다.(자료=과학기술정보통신부)

다른 호미닌 종이 접촉해 같은 서식지 내에 혼재 할 수 있는지도 이번 연구를 통해 조사됐다. 이를 통해 5가지 호미닌 집단의 족보가 도출됐다. 연구진은 현대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30만년 전 아프리카 개체군인 후기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로부터 유래됐다고 추정했다.

팀머만 단장은 “이번 연구로 재구성한 기후 기반 혈통은 유전자 정보나 인간 화석의 형태학적 차이 분석에서 얻은 최근의 추정치와 매우 유사한 결과”라며 “이번 연구는 인간 기원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기후 모델 시뮬레이션 자료를 활용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알레프를 통해 역대 최고로 긴 기후 시스템 모델 시뮬레이션을 완료했다. 해당 시뮬레이션은 대기-해양-해빙-지면 과정이 결합된 전지구 기후 시스템 모델로 여러 가지 지구계의 특징을 포괄적 추정할 수 있다. 이는 지난 200만년의 지구 환경 역사를 다루는 최첨단 기후 모델을 사용한 최초의 연속적 시뮬레이션이기도 하다.

팀머만 단장은 현재 기후 변화의 가속화 현상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이번 연구는 기후가 우리 호모 종의 진화에 근본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증명한다”며 “연구에 사용된 슈퍼컴퓨터 시뮬레이션은 미래 기후를 예측하는 데도 사용하고 있는데, 현재 기후 변화가 상당히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장 추웠던 빙하기를 고려하더라도 수십만년 간 이뤄진 기후 변화는 5℃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산화탄소 방출이 많아지면서 향후 100년 안에 5℃가 오를 것이란 결과가 나왔다는 점을 ‘심각한 경고’로 받아드려야 한다는 견해다.

해당 연구 결과가 담긴 논문명은 ‘Climate effects on archaic human habitats and species succession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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