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삼성전자, 그 원인을 진단해 봅니다.

▲ 삼성전자의 위기는 갤럭시S22의 GOS 사태 때문이 아니다. 그 이면에 놓인 비전의 부재가 더 심각하다.(사진=삼성전자)
▲ 삼성전자의 위기는 갤럭시S22의 GOS 사태 때문이 아니다. 그 이면에 놓인 비전의 부재가 더 심각하다.(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가 작금에 겪고 있는 문제는 크게 세 가지다. 익히 잘 알려진 갤럭시S22에서의 ‘GOS(게임 옵티마이징 서비스) 사태’, 반도체 파운드리와 시스템LSI 등 시스템 반도체에서의 기술 열위, 끝으로 자사 IT 기기에서의 경쟁력 상실 문제다.

이 세 문제는 사실 그 원인이 무엇인가를 고민해봤을 때 하나의 이유로 귀결된다. 삼성전자가 특정 제품에서 이루려는 중장기적 목표, 더 나아가선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비전이 부재한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IT에서 가진 비전은 무엇일까. 갤럭시S22 출시를 앞둔 지난 1월, 삼성전자 모바일 사업 수장인 노태문 사장은 기고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다음 달 ‘갤럭시 언팩’에서 공개하는 신제품은 최고의 모바일 경험을 한데 모은 제품으로서, 역대 갤럭시 S 시리즈 중 가장 주목받는 제품이 될 것입니다.”

▲ 삼성전자 모바일 사업의 수장인 노태문 사장. (사진=삼성전자 뉴스룸)
▲ 삼성전자 모바일 사업의 수장인 노태문 사장. (사진=삼성전자 뉴스룸)

그는 곧이어 “사용자들은 야간에도 밝고 선명한 사진과 영상을 자신 있게 촬영할 수 있으며, 강력한 배터리와 실행 속도, 유용한 기능들을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될 것” “역대 갤럭시 폰 가운데 가장 스마트한 제품을 손에 쥠으로써, 최첨단 혁신을 바로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이라 말한다.

사실 이런 메시지는 의미하는 바가 다소 불투명하다. 소비자를 위해 무언가 좋은 일을 하겠다는 건 이해가 가는데,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선 윤곽이 잘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노 사장은 2년 전인 2020년에도 기고문을 통해 비슷한 말을 남긴다. “혁신을 위한 혁신이 아닌, 사용자들에게 최적화된 의미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시대가 될 것” “기기와 사람, 비즈니스와 커뮤니티를 넘나드는 더욱 지능적인 연결이 가능해질 것”. 2년 사이 문구에 차이만 있을 뿐, 공허한 메시지에는 큰 차이가 없다.

공교롭게도 삼성전자는 지난해 갤럭시S21에서의 발열 문제, 그리고 올해 갤럭시S22에서의 GOS 사태로 연이은 논란에 휩싸였다. 삼성 모바일의 메신저인 노 사장은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가 됐는데, 그 과정에서 개인 주주들은 물론 네티즌들에게 가장 비판을 많이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GOS 사태'의 원인은 기술에 있다
사람들이 갤럭시S22를 사는 심리는 뭘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표 업체라 으레 믿고 사는 것도 있겠지만, 그보단 시판되는 스마트폰 중 최고사양 제품을 쓰고자 하는 사람도 적잖을 것이다. 모바일 게임 인구가 엄청나게 많아졌기 때문이다.

▲ 전체 게임 시장에서 모바일 게임과 광고 등 관련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52%에 달한다.(자료=엑센츄어 'GAMING:THE NEXT SUPER PLATFORM' 갈무리)
▲ 전체 게임 시장에서 모바일 게임과 광고 등 관련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52%에 달한다.(자료=엑센츄어 'GAMING:THE NEXT SUPER PLATFORM' 갈무리)

세계적 IT 컨설팅업체 ‘엑센츄어’(Accenture)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게임 시장 매출의 절반 이상(52%)이 모바일 게임과 게임 속 광고에서 발생했다고 한다. 전체 게임 시장에서 모바일 비중이 52%로 PC를 뛰어넘었다는 게임산업 분석업체 ‘뉴주’(Newzoo)의 조사도 보인다. 삼성전자가 갤럭시S22 AP에 AMD의 ‘RDNA2’ 그래픽 칩을 탑재한 것도 이를 의식해서다.

스마트폰에서 가장 많은 연산이 요구되는 작업은, 벤치마크를 제외하면 단연 게임이다. 이번 GOS 사태를 잡아낸 유튜버도 ‘원신’이란 게임을 돌리다가 생긴 의문을 풀어나간 끝에 벤치마크에서 GOS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발열에서 사용자를 보호할 것이었다면, 당연히 벤치마크에서도 GOS를 작동시켜야 했을 것이다. 여론이 삼성전자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이유다.

▲ 갤럭시S22 GOS사태는 공교롭게도 한 네티즌이 모바일 게임을 돌리다 특이점을 발견한 것부터 시작됐다.(사진=유튜버 '네모난꿈' 영상 갈무리)
▲ 갤럭시S22 GOS사태는 공교롭게도 한 네티즌이 모바일 게임을 돌리다 특이점을 발견한 것부터 시작됐다.(사진=유튜버 '네모난꿈' 영상 갈무리)

여기서 이런 ‘물음표’가 떠오른다.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성능이 최고수준이 아니라면, 과연 이 제품을 사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삼성전자 GOS 사태는 스마트폰의 발열을 소프트웨어로 억누르려다 사달이 난 것이다. ‘벤치마크 치팅’은 물론 ‘성능 사기’라는 비판까지 들은 끝에 한종희 부회장이 주주총회에서 사과했다. 삼성전자가 기기 성능을 놓고 ‘사과’한 건 연이은 배터리 발화 끝에 리콜은 물론 제품 판매를 중단한 ‘갤럭시노트7 사태’ 이후 6년 만이었다.

▲ 2016년 갤럭시노트7 폭발 이후 삼성전자는 발열 이슈을 최소화하는 정책을 보이고 있다.(사진=유튜브 'Samsung Galaxy Note 7 Defect Investigation Results' 갈무리)
▲ 2016년 갤럭시노트7 폭발 이후 삼성전자는 발열 이슈을 최소화하는 정책을 보이고 있다.(사진=유튜브 'Samsung Galaxy Note 7 Defect Investigation Results' 갈무리)

스마트폰의 성능을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발열은 필연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이를 잡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드웨어적으로 방열 설계를 잘 하거나, 또는 소프트웨어적으로 억누르는 방법이다. 특히나 스마트폰처럼 폼팩터가 한 손안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기기라면 물리적 방열은 쉽지 않다.

일각에선 갤럭시S22의 방열 설계가 부실하다는 말이 있는데, 업계는 오히려 전작 대비 발열 억제에 더 많이 투자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 또한 갤럭시S22의 홍보 포인트로 발열 억제를 위한 ‘신소재’를 강조한 바 있다.

그런데도 GOS 사태가 대두됐다는 건 분명 시사점이 있다. 발열이 애초에 적었다면 GOS를 과도하게 틀 일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방열 설계를 잘 했음에도 전작에 이어 똑같은 문제가 제기됐다는 건, 다시 말해 이 사태의 근본적 원인이 ‘AP쪽 문제’라는 의미가 된다.

▲ 삼성전자는 갤럭시S22에 신소재를 활용해 방열을 강화했다고 소개했다.(사진=삼성전자 갤럭시S22 언팩 영상 갈무리)
▲ 삼성전자는 갤럭시S22에 신소재를 활용해 방열을 강화했다고 소개했다.(사진=삼성전자 갤럭시S22 언팩 영상 갈무리)
퀄컴과 엔비디아가 삼성 파운드리를 떠나는 이유
AP에는 무슨 문제가 있을까. 갤럭시S22 AP는 퀄컴의 ‘스냅드래곤8 1세대’와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의 ‘엑시노스2200’이 동시 탑재된다. 두 제품은 모두 ARM(암)의 설계를 받아 자체 커스터마이징했고 또 삼성 파운드리에서 만들어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크게 두 가지 정황이 보인다. 애초 설계가 잘못됐을 가능성, 그리고 파운드리에서의 낮은 수율(다이에서의 양품 비율)이 성능과 발열에 악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다.

전자의 설계 문제는 개연성이 다소 낮아 보인다. 동일한 ARM 설계를 사용하는 대만 미디어텍의 ‘디멘시티9000’은 성능과 발열 억제에서 우위를 드러냄은 물론 애플의 AP ‘A15’에 버금간다는 게 확인됐다. 디멘시티9000과 A15 모두 대만 TSMC의 4나노미터(nm) 공정에서 만들어졌다.

▲ ARM 아키텍쳐를 받아 만든 미디어텍의 디멘시티9000은 퀄컴 스냅드래곤 1세대, 엑시노스2200을 뛰어넘는 벤치마크 성능과 '전성비'를 보여준다.(사진=미디어텍)
▲ ARM 아키텍쳐를 받아 만든 미디어텍의 디멘시티9000은 퀄컴 스냅드래곤 1세대, 엑시노스2200을 뛰어넘는 벤치마크 성능과 '전성비'를 보여준다.(사진=미디어텍)

자연스럽게 후자(파운드리 이슈)로 시선이 옮겨진다. 갤럭시S22 출시 전 확인되지 않은 루머들을 통해 삼성 파운드리 4nm에서의 낮은 수율 문제가 꾸준히 제기된 바 있다. 삼성전자는 오피셜하게 진위 여부를 확인해주지 않지만, 각기 다른 라인에서 만들어진 두 제품 중 자사 제품인 엑시노스2200가 아닌 스냅드래곤8 1세대가 메인으로 탑재됐다는 건 명확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외신에 따르면 퀄컴은 곧 출시될 신작 AP ‘스냅드래곤8 Gen1플러스’를 삼성 파운드리가 아닌 TSMC에서 만들고 있다. 예정대로 다음달 출시돼 벤치마크 점수가 공개된다면 전작의 발열이 설계 문제였는지 여부를 대략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래픽카드 설계 업체 엔비디아 또한 RTX 시리즈 차기작인 ‘RTX40’ 시리즈를 TSMC에서 만들기로 했다는 설이 파다하다.

▲ 엔비디아가 차기 GPU 'RTX40' 시리즈의 파운드리를 삼성전자가 아닌 TSMC로 정했다는 설이 나온다. 사진은 젠슨 황 엔비디아 창업자.(사진=엔비디아)
▲ 엔비디아가 차기 GPU 'RTX40' 시리즈의 파운드리를 삼성전자가 아닌 TSMC로 정했다는 설이 나온다. 사진은 젠슨 황 엔비디아 창업자.(사진=엔비디아)

반도체 업계 두 ‘거물’이 연이어 삼성에서 TSMC로 위탁업체를 바꾼다면, 그 의미는 분명하다. 선단 공정에서 TSMC가 삼성 파운드리에 앞서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노태문 사장은 지난 3월 직원 미팅에서 “갤럭시만의 AP를 만들 것”이라 했다고 한다.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사태의 근본적 문제를 자체 설계 역량 부족으로 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10년대 중반 추진했다가 중단한 ‘몽구스 프로젝트’ 같은 걸 다시 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다만 만약 실제로 갤럭시S22의 발열 문제가 파운드리 수율 이슈 때문이라면, 삼성전자는 ‘외통수’에 걸리게 된다. 삼성전자가 갤럭시S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AP를 TSMC에 맡길 순 없기 때문이다. 자존심을 접으며 자사 파운드리가 아닌 TSMC 문을 노크하는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다.

삼성 제품을 사야 할 이유가 없어지고 있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와보자. 그렇다면 우리가 삼성전자 스마트폰을 살 이유는 무엇일까. 플래그십 라인에서 삼성전자는 2년 연속으로 발열 문제로 논란에 휩싸였고, 그 과정에서 고객 대응 또한 실망스럽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문제는 미세하지만 조금씩 삼성전자의 아성이 균열을 내고 있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에서 매년 고점이 깨지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플래그십 스마트폰이 출시되는 매년 1분기를 기준으로 보면, 2015년 24.5%에서 2016년 23.8%로, 2017년 23.3%로 내려갔다. 2018년 23.9%로 소폭 올랐지만 2019년 23.0%, 2020년 21.2%로 내려앉았고 지난해에도 21.8%로 전년 대비 높았을 뿐 그전보다 낮아졌다.

이유는 명백하다. 고가 라인업에서 시장을 평정한 애플이 매년 상단을 경신하고 있고, 중저가 라인업에선 중국 업체들이 빠르게 치고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매년 4분기가 피크 시즌인 애플은 2015년 4분기 18.7%에서 2021년 4분기 23.2%로 올라갔다. 중국 업체 3강인 오포(13.9%)와 샤오미(12.7%), 비보(9.8%)도 지난해 4분기 기준으로 삼성전자를 꽤 근거리에서 추격하고 있다.이들 업체들은 퀄컴 스냅드래곤은 물론 미디어텍의 AP를 탑재했거나 할 예정이다. 다시 말해, 이제 최소한 칩 성능에서 삼성전자에 밀리지 않는다는 의미다.

▲ 국내 노트북 점유율 1위인 삼성전자는 글로벌 노트북 시장에서 5위권 밖 '아더스'(Others)에 속한다.(자료=스트래티직애널리틱스)
▲ 국내 노트북 점유율 1위인 삼성전자는 글로벌 노트북 시장에서 5위권 밖 '아더스'(Others)에 속한다.(자료=스트래티직애널리틱스)

비단 스마트폰만의 문제가 아니다. 노트북에서 삼성전자는 국내 1위이지만 세계에선 5위권에도 들지 못하는 신세다. 태블릿에서 삼성전자는 1위 애플(2021년 4분기 기준 39.2%)과 격차가 큰 2위(16.4%)면서 레노버(11.3%)에 추격당하고 있다. 스마트워치도 압도적인 애플 뒤에 삼성전자는 샤오미, 아이무(imoo) 등과 고만고만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삼성전자가 2010년 갤럭시S 시리즈를 처음 만들었을 당시, 이 스마트폰은 엄청난 혁신 기기로 평가받았다. 애플이 스마트폰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시기였다. 삼성전자는 자사가 가진 모든 IT 역량을 집약해 애플에 대적할 수 있는 기기를 만들었고, 이를 통해 12년여 기간 엄청난 부가가치를 뽑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껏 누려온 지위는 2020년부터 확실히 깨져나가고 있다. ‘무어의 법칙’이 깨지며 난관에 봉착한 파운드리와 부족한 팹리스 역량이 전면에 있고, 이면엔 매년 한 개의 스마트폰을 찍어내야 한다는 압박과 성과주의가 자리잡은 걸로 보인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 결과, 고가와 중저가에서 애매한 포지션을 취하고 있던 삼성전자는 매년 애플과 중국 업체들에게 점유율을 조금씩 내주고 있다.

▲ 삼성전자는 2020년 IM사업부 매출 100조원을 하회했다. 이후 경영진단을 받고 2021년을 끝으로 CE사업부와 통합됐다.
▲ 삼성전자는 2020년 IM사업부 매출 100조원을 하회했다. 이후 경영진단을 받고 2021년을 끝으로 CE사업부와 통합됐다.

가장 큰 문제는 오늘날 삼성전자가 과거의 차별점을 잃고 ‘비전 없는 회사’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애플이 자체 실리콘 시스템온칩(SoC)을 만들고, '카피캣'이란 오명을 듣던 중국이 경쟁력 있는 스마트폰을 내놓고 있다. 인텔은 'IDM2.0'으로 파운드리 시장에 빠르게 치고 들어오고 있고, 메모리에선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이 삼성전자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IM(모바일) 사업본부를 CE(소비자 가전)본부와 합쳐 MX(모바일 경험) 사업부로 바꿨다. 수년 전부터 강조했던 ‘소비자 경험’을 방점에 두고 자사 생태계를 통합하는 방향을 택한 걸로 해석된다. 다만 지금까지 나온 메시지만 봐선 그들이 정확히 어떤 비전을 세우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향후 수 년은 그들의 미래 생사존망을 좌우할 시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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