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혜준 카이헬스 대표.
▲ 이혜준 카이헬스 대표.

"난임 시술은 우리나라에서 한 번 할 때 300만원 이상, 미국에서는 한 번에 2만 달러(약 2500만원) 드는데 성공률이 30%밖에 되지 않아요. 한 번 실패하면 두 번째, 세 번째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데 '다음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게 굉장히 힘든 시술입니다."

이혜준 카이헬스 대표는 지난달 29일 <블로터>와 만난 자리에서 회사를 창립한 이유를 이 같이 밝혔다. 카이헬스는 최상의 배아를 골라 임신률을 높일 수 있는 '난임 인공지능(AI) 솔루션'을 만드는 스타트업이다. 최근 디캠프(은행권청년창업재단)와 서울대 의대가 공동개최한 창업경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현재는 디캠프에 입주해 올 하반기를 목표로 의료진용 앱을 개발하고 있다.

의료 현장에선 세포 분열 속도와 모양을 기준으로 배아를 상·중·하급으로 나눈다. 착상률의 차이 때문이다. 최대한 좋은 등급의 배아를 이용한 시험관 아기 시술(IVF)이 난임 치료 최후의 방법으로 꼽힌다. 이 때 배아를 가려내는 주요 과정을 육안이 아닌 인공지능 알고리즘으로 판별해 임신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게 카이헬스의 핵심 가치다. 이 의사결정 지원 시스템을 산부인과 등 병원 일선에 B2B(기업 간 거래) 방식으로 공급해 수익을 창출한다.

이 대표는 "임신율에 제일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배아의 질"이라며 "연구원들이 현미경으로 보고 판단하는 게 정확도가 50%라면 인공지능으로 하는 것은 60~70%까지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아기가 될 부분(근거)은 사람이나 인공지능이나 똑같이 잘 보지만, 인공지능은 눈으로 볼 수 없는 미세한 '양상'을 더 잘 읽어낸다"며 "보통 컨설트를 할 때는 15~20년 이상 하신 실장님들과 일을 하는데 그분들도 '저거는 나는 못 맞췄을 거 같다'고 할 정도로 인공지능, 데이터를 바탕으로 판단하는 것이 훨씬 평균적으로 좋은 결과를 낸다"고 주장했다.

카이헬스가 결과 도출에 활용하는 인공지능 모델은 아마존웹서비스(AWS)의 클라우드상에서 만들어졌다. 머신러닝 서비스인 아마존 세이지메이커(Amazon SageMaker)를 활용해 딥러닝 개발 환경을 구축했다. 카이헬스의 자문인 고태훈 서울성모병원 교수가 대학원 연구를 할 때부터 클라우드를 활용한 경험을 살려 카이헬스에 빠르게 도입될 수 있었다.

고 교수는 "AWS를 썼을 때 가장 큰 장점은 탄력적으로 컴퓨팅 파워를 조절해서 쓸 수 있다는 유연함"이라며 "그리고 사용자들을 위한 편의 기능이 많아 이를 조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고 말했다.

민감한 데이터를 다루는 회사가 퍼블릭 클라우드를 활용하는데 따른 우려는 없을까. 퍼블릭 클라우드는 인터넷상의 서버를 통해 IT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대표는 "백업 자료부터 법률적 자문까지 탄탄하게 해놓을 수 있기 때문에 저희를 비롯한 헬스케어들이 지금 계속 클라우드로 가고 있다"며 AWS의 보안성을 신뢰한다는 입장이다.

의료에 인공지능을 도입하기 위한 노력은 카이헬스를 비롯한 많은 회사들이 도전하고 있지만 성공의 보증수표는 아니다. 정보기술(IT) 대기업인 IBM의 왓슨(Watson)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IBM의 왓슨 사업은 올 1월 사모펀드인 프란시스코 파트너스(Francisco Partners)에 매각됐다. IBM은 왓슨이 진료능력을 높일 수 있다고 했지만, 정작 의료진과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설명 가능한 AI'의 수준까지는 올라서지 못한 셈이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저희도 인공지능이 모든 사람의 복합적이고 복잡한 결정을 내려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저희의 목적은 이미지에 대해 사람보다 인공지능이 더욱 잘 보는 부분을 밝혀내는 것"이라며 "난임은 전 세계적으로 비보험이 굉장히 많아 고가이고 환자분들이 아파서 오신 것이 아니므로 질병 위주의 시장과는 조금 다르다"고 설명했다.

카이헬스는 난임치료를 바탕으로 식이조절부터 운동습관까지 조언하는 데이터 기반의 '난임케어'까지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이 대표는 "배아평가 솔루션을 만든 후 난자분석 솔루션을 만들어 난자의 질과 라이프스타일을 매칭시키는 케어 프로그램을 구축할 것"이라며 "데이터를 잘 모아서 환자에게 조언에 대한 에비던스(증거)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이처럼 헬스케어 솔루션의 발전에는 병원이 축적한 보건의료데이터가 동력이 되고 있다. 다만 병원 등 기관이 의료데이터를 대내외에 활용하기 위해선 보건복지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기관별로 데이터심의위원회를 조직하고 반출, 결합이 적절한지를 판단받아야 한다. 헬스케어 분야에서 공동연구가 늘어나고 있지만 소규모 기관은 부담이 크다.

고 교수는 AWS 기능을 조합해 퍼블릭 클라우드 환경에서 데이터를 밖으로 반출시키지 않고 외부 연구자들이 공동으로 연구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가능하다고 피력했다. 그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만든 정보분석실은 인터넷 접속이 아예 안 되고 오로지 데이터만 분석할 수 있다"며 "그런 폐쇄적인 정보 분석실을 퍼블릭 클라우드에 똑같이 구현할 수 있는 게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기존 의학연구 사이클이 '예산 확보→인프라 도입→데이터 준비→컴퓨팅 구성→연구용 SW 설치→연구'라는 복잡다단한 준비과정을 수행했다면, 클라우드를 통한 연구는 '예산 확보→데이터 연결→도구 선택→실행→연구'로 축약할 수 있다는 게 고 교수의 설명이다.

현재 카이헬스는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의 인공지능용 데이터셋(특정한 작업을 위해 데이터를 관련성 있게 모아놓은 것) 구축 사업에서 배아 이미지를 구축하는 협력도 진행하고 있다. 이로써 난임 치료에 활용하는 인공지능 모델을 더욱 고도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대표는 "국내 시장도 있지만 유럽이랑 미국 시장이 굉장히 유망하다"며 "비싸서 환자들이 여러 번 하는 것을 경제적으로 힘들어하기 때문에 한 번에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이 같은 니즈를 충족하기 위해 빠르게 글로벌 쪽으로 진출하려고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 대표는 서울대학교 병원 산부인과 전공의, 전임의와 마리아병원 진료과장 및 국제클리닉 과장을 역임한 의사 출신 기업인이다. 체인지 헬스케어(Change Healthcare)에서 전략, 인공지능 부문을 맡았고 미국의 정밀의료 플랫폼 회사인 사이앱스(Syapse)에선 아시아태평양지역(APAC) 비즈니스 개발을 담당했다.

카이헬스의 자문을 맡고 있는 고 교수는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정보학교실·서울성모병원 스마트병원 지능의료데이터센터 연구조교수, 대한의료정보학회 이사, 대한보건정보통계학회 위원, 한국보건의료정보원 데이터 심의 전문위원을 맡고 있는 등 보건의료분야의 데이터 전문가로 꼽힌다.

▲ 카이헬스 고태훈 자문(왼쪽), 이혜준 대표(오른쪽).
▲ 카이헬스 고태훈 자문(왼쪽), 이혜준 대표(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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