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헬스케어의 성장 잠재력을 확인한 제약사들이 IT 플랫폼과 치료제 등 전통적인 합성의약품(화학물질의 합성을 통해 만들어진 의약품, 일반 알약과 캡슐약 등이 포함됨)  시장을 넘어서며 새로운 먹거리 만들기에 나서고 있다. 보건의료분야에서 쌓은 경험을 토대로 제품 개발부터 판매, 인프라 구축까지 바라보고 있어 디지털헬스케어 시장이 국내서 꽃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디지털헬스케어는 보건의료산업과 정보통신기술(ICT)을 융합해 질병을 예방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산업 분야다. 디지털헬스케어 분야서 제약기업들의 신사업 진출이 활발한 분야는 다름아닌 의료 IT 사업이다. 특히 EMR(전자의무기록) 시장 진출이 눈에 띈다. EMR은 병원에서 발생하는 의료정보를 전산화하는 의료정보시스템이다. 

▲ 사진=(픽사베이)
▲ 사진=(픽사베이)

GC녹십자는 이미 지난 2020년 2월 유비케어를 인수하며 일찌감치 IT분야 진출에 나섰다. 유비케어는 의원용 EMR 솔루션을 개발한 업체다. 대웅제약도 최근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에이치디정션과 손잡았다. 대웅제약은 에이치디정션의 클라우드 기반 EMR을 통해 동남아시아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다. 에이치디정션은 이러한 EMR을 가상서버 저장소인 클라우드를 활용, 데이터 백업 등의 안정성을 높인 것으로 알려졌다.

제약업계는 인공지능(AI) 기반 진단 사업 진출에도 적극적이다. 동국제약은 지난 2017년 조영제 사업을 분할한 동국생명과학을 통해 AI의료진단솔루션 사업을 추진 중이다. 유한양행 또한 휴이노에 투자하며 AI 진단 시장에 뛰어들었다. 휴이노는 심전도 모니터링 인공지능 솔루션을 개발한 기업이다. 휴이노의 ‘메모워치’는 지난 2020년 건강보험 요양급여대상 의료기기로 확인받으면서 국내 어느 의료기관에서든 건강보험을 적용 받고 쓸 수 있게 됐다. 휴이노에 투자한 유한양행은 유전체 빅데이터 기업인 신테카바이오와 알츠하이머병(치매를 일으키는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는 아밀로이드솔루션에도 투자하고 있다.

디지털치료제 개발에 나선 제약기업도 있다. 한독은 지난해 3월 알코올 중독, 불면증 등을 타깃으로 하는 디지털치료제를 공동개발하기 위해 웰트에 30억원을 지분투자했다. 삼진제약은 디지털 치료제 개발사인 휴레이포지티브와 지난 3월 MOU를 체결하고 사업 확대를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웅제약 등도 디지털치료제 개발에 관심을 두고 있다.

보건의료서 쌓은 경험, 디지털헬스케어 성장에 기여

디지털헬스케어에 대한 제약업계의 관심은 크게 위기감 인식과 익숙한 신사업을 찾는 과정에서 커졌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보건의료분야 주요 산업군인 제약산업은 현재 합성의약품 시장 성장이 정체돼 신사업을 찾아야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디지털헬스케어는 기존 사업과의 연속성이 있고, 고객층(의료기관과 의사 등)이 기존 사업과 같아 연계하기 좋다.

특히 기존 고객층과 겹친다는 점은 스타트업들이 놓치기 쉬운 시장성과 영업력을 제약업계가 담보해줄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제약업체들은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기술력만 좋은 제품이 아닌, 시장에 팔 수 있을만한 제품을 골라낼 수 있는 능력도 충분하다. 개발 단계부터 개입해 제품의 시장성을 향상시킬 수도 있고, 이미 개발된 제품을 합성의약품 시장서 닦아온 영업 네트워크를 통해 '스타트업 기업보다 더 많이' 팔 수도 있다. 심지어 의료기관 네트워크를 통해 플랫폼화시키는 방법도 불가능하진 않다.

글로벌 디지털헬스케어 시장도 점차 커지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글로벌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 규모는 2019년 1063억달러(약 125조원)였다. 여기에 더해 미국 글로벌 제약사인 화이자와 머크, 스위스 글로벌 제약사인 노바티스 등의 글로벌 제약사 투자가 잇따르고 있는 상황이다. 무역협회는 글로벌 디지털헬스케어 시장이 연평균 29.5% 성장해 오는 2026년 6394억달러(약 750조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윤석열 정부에서도 디지털헬스케어를 미래 성장동력 산업의 한 축으로 인식, ‘바이오·디지털헬스 글로벌 중심국가 도약’을 국정과제로 내걸고 전자약, 디지털치료기기, AI진단보조 등 디지털 헬스케어 제품의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원체계 구축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렇듯 제약기업의 디지털헬스케어 제품 개발이 활기를 띄자 관련 협회도 지원 사격에 나섰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최근 제5차 이사장단 회의를 개최, 디지털헬스위원회 설치안을 만장일치로 의결하고  전 회원사를 대상으로 위원 공모 절차에 들어갔다.

신설된 디지털헬스위원회는 디지털 헬스 관련 연구개발(R&D) 지원과 정보 수집, 네트워크 구축, 디지털헬스 관련 정부부처 정책개발 지원 및 유관단체와의 업무 협력 등을 수행할 예정이다.

정부와 업계, 유관기관까지 나서 디지털헬스케어 산업 육성에 적극적이지만 결국은 제품이 시장에서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000년대 초반부터 바이오분야 육성이 이뤄졌지만 현재까지 성과가 저조한 점, 정부가 바뀔때마다 산업 육성 청사진이 나오지만 실제 알맹이는 없던 점 등 분위기만 무르익는 산업 육성은 더이상 필요치 않다는 것이 일부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은 “4차 산업혁명 첨단 기술과의 융복합으로 글로벌 제약바이오산업 트렌드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며 “디지털헬스위원회 설치를 통해 산업계 관련 전문가들의 역량을 결집하고, 의약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를 주도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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