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첫 소행성 탐사로 기대를 모았던 ‘아포피스 계획’이 전면 무산된 것으로 확인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가 아포피스 소행성 탐사를 위한 예산 확보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24일 <블로터> 취재 결과, 과기정통부는 오는 6월에 진행하는 2분기 예비타당성(예타)조사 심사 대상 접수에 아포피스 탐사 사업을 올리지 않기로 잠정 결론지었다. 1분기 평가에서 지적된 사안을 3개월 만에 보완하는 게 어렵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결정이다.
아포피스 탐사 사업은 2024년부터 2030년까지 3873억원을 투입해 우리나라 최초의 소행성 탐사 임무 수행을 목적으로 기획됐다. 과기정통부가 예산 확보를 포기하면서 국내 연구진은 2만년에 한 번꼴로 이뤄지는 소행성 지구 초근접 현상을 지켜만 보게 됐다. 현재로선 우리나라 연구기관이 참여하는 구체적인 아포피스 탐사 국제 공동 연구 계획도 없다.
예타 조사 대상으로 사업을 올릴 기회는 1년에 총 4번, 각 분기에 한 번씩 주어진다. 앞선 1분기 평가에선 과기정통부 내 연구개발타당성 심사 업무 등을 담당하는 과학기술혁신본부가 아포피스 탐사 사업을 ‘추진 불가’로 판정했다. △성공 가능성이 불확실한 점 △중장기 우주 개발 계획에 해당 탐사가 포함되지 않은 점 등이 이유였다.
아포피스 탐사를 예타 심사 대상으로 올린 과기정통부 뉴스페이스정책팀은 연구기관들과 2분기 예타 조사 대상에 해당 사업을 다시 올리지를 두고 검토 절차를 진행해 왔다. 1분기 평가에서 지적된 사안을 보완할 수 있을지를 분석, 2분기 접수에서 다시 기회를 노릴 수 있을지를 살폈다.
뉴스페이스정책팀과 연구진은 이 과정에서 과학기술혁신본부가 지적한 사안들이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다고 판단, 2분기 예타 심사 대상에 아포피스 탐사 사업을 올리지 않기로 했다. 윤미란 과기정통부 뉴스페이스정책팀장은 “3개월 만에 다시 예타 조사 대상으로 사업을 넣어도 상황적으로 변화는 점이 없다고 봤다”며 “6월에 진행하는 2분기 예타 심사 대상 접수에 아포피스 탐사 사업을 올리지 않는 것으로 얘기 중”이라고 설명했다.
예타 심사 대상으로 선정되면 연구 기대 효과와 경제적 타당성 등을 조사하는 추가 절차를 거쳐 예산 집행이 확정된다.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에 국고 지원이 300억원이 넘는 경우 예타 조사를 통과해야 사업이 진행될 수 있다. 아포피스 탐사 사업은 1분기에 이 조사 대상으로도 오르지 못했고, 2분기엔 진행 자체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완전히 무산됐다.
과학계에선 1분기 예타 심사 대상으로 올라온 사업 계획상으로도 개발 일정이 빠듯하다고 봤다. 2분기 예타 심사 대상 선정이 ‘마지노선’으로 여겨진 이유다. 2분기에도 예타 조사 대상으로 접수하지 않는 아포피스 탐사 사업이 3분기엔 추진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셈이다.
370m 크기로 추정되는 소행성 아포피스는 오는 2029년 4월14일 지구와 3만1600km 떨어진 지점을 지나간다. 국내 연구진은 천리안과 같은 정지궤도위성(3만6500km)보다 가깝게 지나가는 아포피스를 직접 관측하기 위해선 탐사선 발사가 2027년 10월 중순에는 이뤄져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는 달리 말해 이 시기에 맞춰 R&D가 완료돼야 탐사를 진행할 수 있단 의미다. 해당 기간에 맞춰 모든 준비 절차를 마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점은 1분기 평가에서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그러나 과학계에선 아포피스 탐사를 진행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봤다. 아포피스와 같은 근지구 소행성은 대부분 소행성대에서 유입돼 태양계의 초기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학술 가치가 높다는 의미다. 더욱이 300m급 천체가 정지궤도 인공위성보다 가까이 지나가는 사건은 2만년에 한 번꼴로 발생한다.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관측이 이뤄질 수 있는 만큼 소행성에 대한 인류의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천재일우(千載一遇)’로 여겨졌다.
또 아포피스 크기의 소행성은 지구 충돌 시 대륙 하나를 초토화할 수준의 위협 요인이기도 하다. 국내 연구진은 이러한 천체를 현장에서 관측하고 분석해 행성방위(planetary defense)에 필요한 자료를 선제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고 봤다.
이를 수행할 구체적 계획도 나왔다. 국내에선 한국천문연구원(천문연)이 주도적으로 아포피스 탐사 사업을 준비해 왔다. 2027년 10월 중순 탐사선을 발사해 12.5개월 동안 항행, 아포피스에 10km까지 접근해 동행비행을 수행하는 탐사 기획도 제시됐다. 천문연은 지난 2월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국방과학연구소(국과연)와 연구개발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구체적인 일정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이를 추진할 예산 확보가 무산되면서 해당 계획은 휴지 조각이 됐다.
과기정통부는 다만 아포피스 탐사 사업 평가에서 걸림돌로 작용한 ‘우주개발진흥기본계획’에 소행성 탐사에 대한 비교적 구체적인 내용을 추가할 계획이다. 윤 팀장은 “올해 말 우주개발진흥기본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라며 “아포피스 외 다른 소행성을 정해 탐사하는 골자의 사업이 우주개발진행기본계획에 들어갈 수 있을지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 인사는 우리 정부 결정과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의 방식의 차이점을 꼬집기도 했다. 나사의 경우 미국 애리조나대가 주도한 소행성 탐사선 오시리스-렉스의 임무를 연장해 아포피스를 18개월간 탐사하기로 최근 정했다. 아포피스 탐사란 기회를 잡기 위해 당초 계획을 수정하는 유연한 모습을 보였다. 우주개발기본진흥계획에 아포피스 탐사가 포함되지 않았다고 예타 심사 대상에서 탈락시킨 우리 정부 결정과 사뭇 대조된다.
이번 아포피스 탐사 계획 수립을 주도해온 최영준 천문연 책임연구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아포피스에 대한 연구 정보는 학계에서 공유될 수 있지만 그런데도 탐사를 직접 진행하고자 했던 이유는 ‘우리나라가 모든 과정을 주도적으로’ 수행해 연구 생태계를 꾸리고 싶었기 때문”이라며 “아포피스 탐사가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기 어렵지만 해당 사업 외에도 누리호 발사나 달 탐사 등 다양한 우주탐사 계획이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향후 우주개발기본진흥계획에 소행성 탐사가 잘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