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 MWC 2022에서 기자들과 만난 노태문 삼성전자 MX사업부장 사장은 “삼성전자가 애플이 구축한 생태계를 따라잡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그러면 좋겠다. 기기 간 부드러운 사용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더욱 노력 중”이라고 답했다. 이는 지난 10년간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 1위 자리를 지키고도 ‘내실’을 다져줄 생태계 완성도는 여전히 애플에 미치지 못한 삼성전자의 고민이 엿보인 대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애플은 여전히 iOS(아이폰 운영체제)를 중심으로 자사 제품 간 연결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나아가 최근에는 외부 플랫폼 연결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며 경쟁사들과 생태계 격차를 넓히고 있다. 지난 6일 애플이 개최한 연례행사 WWDC 2022에서는 차세대 카플레이 기반 자동차 융합, 애플 외 가전들과의 스마트홈 연결을 가능케 해줄 매터 IoT(matter IoT) 지원 등 애플 생태계 고도화와 관련된 크고 작은 발표들이 이어졌다.

▲ 지난 2월 삼성 갤럭시언팩 2022에서 '갤럭시S22' 시리즈를 소개하고 있는 노태문 MX사업부장. (사진=삼성전자)
▲ 지난 2월 삼성 갤럭시언팩 2022에서 '갤럭시S22' 시리즈를 소개하고 있는 노태문 MX사업부장. (사진=삼성전자)

하드웨어에 머무는 삼성전자의 ‘혁신’
삼성전자는 2010년대 초만 해도 애플로부터 ‘카피캣(따라쟁이)’ 취급을 받던 회사였다. 아이폰 디자인을 모방했다며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반격은 점점 매서워졌다. ‘갤럭시 노트’ 시리즈는 대화면 스마트폰 전성시대를 이끌었으며 애플이 비웃던 스타일러스(펜)의 활용성이 재발견됐다. 디스플레이 지문인식, 펀치홀 카메라를 적용한 풀스크린 설계, 최근 차세대 스마트폰 폼팩터로 불리는 폴더블폰 시장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는 기업도 삼성전자다. 한때 소송까지 당했던 디자인 코드는 이제는 삼성만의 정체성이 확고해진 모습이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주도한 혁신은 주로 외적인 것, 하드웨어에 그치고 있다.
▲ 지난해 전세계 폴더블폰 시장 성장을 이끈 갤럭시Z플립3. 특히 디자인에 대한 시장의 호평이 잇따랐다. (사진=삼성전자)
▲ 지난해 전세계 폴더블폰 시장 성장을 이끈 갤럭시Z플립3. 특히 디자인에 대한 시장의 호평이 잇따랐다. (사진=삼성전자)

애플은 조금 다르다. 최근 몇 년 사이 하드웨어 변화에 대단히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일례로 아이폰12와 13 시리즈의 경우 겉으로는 구분조차 쉽지 않은 수준이다. 성능 차이도 카메라를 제외하면 크지 않다. 그럼에도 아이폰은 여전히 전세계적인 히트작이다.

2021년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쉘쉘이 브랜드 충성도에 대한 소비자 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보자. 아이폰 소유자 5000명 중 91.9%(전년 90.5%)가 ‘다음에도 아이폰을 구입하겠다’고 답했다. 그들 중 65%는 ‘아이폰을 좋아하거나 사용에 전혀 문제가 없음’을, 21%는 ‘애플 생태계에 고정됨’을 이유로 꼽았다. 애플은 자사 제품 중심의 폐쇄적인 플랫폼 전략을 펼치기로 유명하지만, 실제 사용자들은 오히려 그 안에서 편안함과 만족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

반면 삼성전자의 브랜드 충성도는 직전 85.7%에서 74%로 하락했다. 이때 갤럭시 대신 아이폰을 사겠다고 대답한 소비자들은 주된 이유로 ‘더 나은 개인정보보호’(31.5%)를 꼽았다. 소비자들은 하드웨어 혁신보다는 안전한 사용 환경, 편리한 생태계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는 얘기다.

생태계를 대하는 삼성전자와 애플의 차이는 양사의 연례행사에서 두드러진다. 애플은 매년 6월 WWDC에서 자사의 최신 아이폰, 아이패드, 애플워치, 맥 운영체제(OS) 등을 공개하고 개발자들이 이를 통해 생태계에서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가이드를 제시한다. 애플 엔지니어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어 9월에는 신제품 공개 행사(Special Event)를 열고 자사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어떻게 결합되어 사용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 애플은 WWDC 2022에서 개발 중인 '차세대 카플레이' 플랫폼을 공개하고 차량에 대한 스마트폰 미러링을 넘어 차량 내 기능 제어까지 가능해진 변화를 선보였다. (사진=WWDC 2022 갈무리) 
▲ 애플은 WWDC 2022에서 개발 중인 '차세대 카플레이' 플랫폼을 공개하고 차량에 대한 스마트폰 미러링을 넘어 차량 내 기능 제어까지 가능해진 변화를 선보였다. (사진=WWDC 2022 갈무리) 

반면 ‘갤럭시 언팩’으로 대표되는 삼성전자 행사의 주인공은 여전히 스마트폰, 노트북 등 하드웨어 중심이다. 삼성에도 ‘삼성 소프트웨어 개발자 콘퍼런스(SSDC, 구 오픈소스 콘퍼런스)’라는 연례 개발자 행사가 있지만 여기서 다루는 주제는 △AI(인공지능) △IoT(사물인터넷) △5G △클라우드 △빅데이터 △로봇 등으로 주연은 갤럭시가 아니다.

물론 삼성전자도 자사 생태계 성장에 관심이 있다. 노 사장은 2020년 취임 직후 ‘갤럭시 에코 시스템’을 언급하며 갤럭시 기기 간 생태계 통합을 중요한 화두로 제시했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생태계 통합은 아직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특히 애플과 달리 OS 측면에서 모바일은 구글 안드로이드, PC는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에 종속되어 있는 점을 문제로 꼽는다.

OS를 직접 만드는 애플은 자사가 개발할 하드웨어에 맞춰 OS를 미리 업데이트하고 제품도 OS 특성에 최적화해 설계할 수 있다. 가령 애플은 ‘애플 ID’를 키로 삼아 자사의 모든 제품을 매끄럽게 연동한다. ‘가까이만 가도’ 각종 편의 기능과 데이터 연동이 물 흐르듯 이어지는 애플 특유의 생태계 연결성은 애플이 운영체제와 하드웨어를 모두 보유한 업체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범용, 개방형 OS인 안드로이드와 윈도를 사용 중인 삼성전자는 이런 이점과 거리가 멀다. 삼성전자도 ‘삼성계정’ 기반으로 앱, 기기 간 연동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자체 OS 기반이 아닌 탓에 애플 대비 기능이 제한적이고, 연동 속도나 절차가 상대적으로 느리고 복잡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 사장의 말처럼 ‘기기 간 부드러운 연결 경험’은 생태계의 품질을 결정하는 주요한 요소지만 OS를 보유하지 못한 삼성전자가 이를 따라잡기에는 한계가 따른다.

OS 개발은 무의미…중요한 건 ‘사용자 중심’ 생태계
그렇다면 OS 보유가 답이 될까? 한때는 삼성전자도 자체 OS를 갖고자 했다. 2010년에 이미 ‘바다OS’라는 모바일 OS도 공개한 이력이 있다. 2012년에는 인텔과 손잡고 모바일, 웨어러블, 가전제품 등에 탑재할 수 있는 범용 OS ‘타이젠’을 개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웨이브’라는 스마트폰까지 출시된 바다OS는 대중화에 실패했고 타이젠에 흡수됐다.

타이젠 또한 아직 일부 삼성전자 웨어러블 기기와 가전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나 모바일 OS로서는 역시 안드로이드의 아성을 넘는 데 실패했다. 개발사인 삼성전자조차 타이젠 스마트폰은 만들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게다가 시장은 이미 완성판에 가까운 안드로이드와 iOS로 양분돼 굳어진 지 오래다. 뒤늦은 OS 개발보단 차선의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선 삼성전자가 사용자 중심 생태계 개발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는 ‘메시지’가 중요하단 목소리가 나온다. 국내 대형IT 기업에서 모바일 부문 개발자로 근무 중인 A씨는 “삼성전자와 애플이 생태계를 대하는 가장 큰 차이는 ‘사용자’를 중심에 두는가”라며 “개발자 입장에서 보면 애플의 생태계 진화 방향에는 항상 쓰는 이의 편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사용자경험이 우선시된다는 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어 “반면 삼성전자는 여전히 ‘기술’ 중심이란 느낌이 강하다. OS 유무에 따른 기술적 한계는 차치하더라도 ‘소비자를 위한 더 좋은 사용자경험’을 생태계 개발 중심에 두지 않는다면 두 회사의 차이는 앞으로도 쉽게 좁혀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10일 제1회 ‘MX비전데이’를 개최한 삼성전자는 이 행사를 통해 갤럭시 생태계 강화 의지를 재확인했다. 노 사장은 이날 "새로운 기술에 대한 시장과 소비자의 요구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개방성을 통한 핵심 기술 확보, 우수 인재 양성이 MX사업부의 핵심 가치"라며 “지속적인 산학협력을 통해 '열린 혁신을 실현하고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로 갤럭시 생태계의 미래 가치를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 삼성의 다양한 가전제품을 하나의 플랫폼에서 연동, 관리할 수 있는 스마트싱스. (사진=삼성전자)
▲ 삼성의 다양한 가전제품을 하나의 플랫폼에서 연동, 관리할 수 있는 스마트싱스. (사진=삼성전자)

이에 삼성전자의 변화 가능성을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삼성전자는 OS를 제외하면 이미 오래전부터 자체 스마트폰, 태블릿, 노트북을 비롯한 세탁기, 냉장고, TV 등 다양한 가전제품을 포트폴리오로 보유하고 있다. 강력한 스마트홈 구축을 가능하게 하는 스마트싱스(SmartThings) 플랫폼도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삼성페이와 삼성패스의 결합을 통해 삼성페이 하나로 각종 결제부터 티켓, 쿠폰 관리, 집과 차량에 대한 디지털 키 기능도 수행할 수 있게끔 접근성을 개선하기도 했다. 가장 큰 약점인 OS의 부재는 대신 MS와 강력한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갤럭시 스마트폰과 윈도, 원드라이브 간 연결성을 확보하는 방법 등으로 개선 중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지난해 말 ‘고객 경험’ 중심의 조직 개편과 더불어 생태계 통합, 고도화를 목표로 한 내부 변화들이 이어지고 있다”며 “긍정적인 시선으로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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