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이 펭귄 울음소리를 낸다'. 최근 ENA 채널과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넷플릭스와 seezn(시즌)을 통해 인기 방영 중인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3화 '펭수로 하겠습니다' 중 나온 한글 자막 내용이다. 해당 자막은 변호사 '우영우'가 극 중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의뢰인 '정훈'에게 왜 형을 때렸냐고 묻자 당황하며 낸 소리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극의 흐름에는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 사소할 부분일 수 있지만, 한글 자막은 콘텐츠를 또 다른 방향으로 즐길 수 있는 숨은 재미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한글 자막' 보는 시청자, 인기 요인은
넷플릭스와 웨이브·티빙·왓챠 등 국내 서비스 중인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들이 '한글 자막' 제작에 공을 들이고 있다. 외국 드라마나 영화의 번역을 위한 자막 외에도 한국 영화 및 드라마에 사용되는 자막도 포함된다. 한글 자막은 청각 장애인을 위한 자막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지금은 드라마의 재미 및 몰입을 위한 요소로도 주목받고 있다.
 
▲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한 장면. (사진=드라마 화면 갈무리)
▲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한 장면. (사진=드라마 화면 갈무리)

한국 콘텐츠를 시청하는 비청각장애인인 국내 이용자가 한글 자막을 켜는 이유는 다양하다. 자막을 통해 콘텐츠 내용에 더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인데, 대사가 많거나 법정물, 의학물 등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는 콘텐츠에서 유용하게 쓰인다. 방영 후 출간되는 대본집 인기의 영향으로 대본집을 보는 것 같다는 이유로 선호하는 시청자도 있다.  

한글 자막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넷플릭스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넷플릭스는 서비스 초창기부터 영어 말고도 다양한 국가 자막을 적용해 왔는데, 한국어 영상에서 볼 수 있는 한글 자막 역시 주목받았다. '청각 장애인용'이라고 명시돼 있지만 비장애인도 애용하게 된 것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한글 자막을 이용하는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국내 타 OTT 사업자들도 인력을 보강하거나 프로그램 개발에 착수하는 등 한글 자막 제작에 공을 들이고 있다. 

OTT, 한글 자막 제작 현황은
웨이브는 지난해 설립한 '스튜디오 웨이브'를 통해 제작된 오리지널 콘텐츠를 중심으로 한국 콘텐츠 자막을 제작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블로터>에 서비스 고도화의 일환으로 정확한 대사 전달 및 청각 장애인을 위한 자막 기능을 추가하고 개선하겠다고 밝힌 이후 자막 서비스 개선에 주력했다.

지난 상반기 기준 웨이브는 △원더우먼 △경찰수업 △모범택시 △뫼비우스: 검은태양 △악의 마음을 읽는자들 △꼰대인턴 △SF8 △러브씬넘버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트레이서 △검은태양 △꽃 피면 달 생각하고 등 12편의 콘텐츠에 한글 자막을 적용했다. 청각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로는 수어 및 화면 해설 도입도 검토한 바 있다.

▲ 왓챠 오리지널 예능 '지혜를 빼앗는 도깨비'. (사진=왓챠)
▲ 왓챠 오리지널 예능 '지혜를 빼앗는 도깨비'. (사진=왓챠)

왓챠는 한글 자막 서비스를 이미 진행 중이지만, 올해부터 예능, 웹툰 등 오리지널 콘텐츠 강화 전략에 따라 각기 다른 자막 서비스를 적용하고 있다. '지혜를 빼앗는 도깨비'나 '좋좋소' 등 자체적으로 자막을 포함하고 있는 예능 등 오리지널 콘텐츠의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위의 두 콘텐츠는 한글 자막을 지원하고 있지 않지만, 드라마 '시멘틱에러'나 '한화이글스: 클럽하우스' 등 콘텐츠에는 한글 및 영어 자막 동시 지원 등 다양한 자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쿠팡플레이 역시 '안나' 등 오리지널 콘텐츠를 확보하고 있는 가운데 상반기 중에는 한국어, 영어 자막을 제작하는 콘텐츠 번역팀 인력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선 바 있다. 쿠팡플레이는 당시 쿠팡플레이 시리즈의 한국어, 영어 자막 제작 및 외주 자막 에이전시를 관리하는 내용의 모집 공고를 냈다. 지난 6월 공개된 쿠팡플레이 웹드라마 '안나'의 한글 자막과 같은 콘텐츠다. 

OTT 업계 한 관계자는 <블로터>에 "국내 OTT들이 콘텐츠 국영문 자막을 개선하면 콘텐츠 전반적인 퀄리티도 개선될 것이라고 보고있다"며 "이에 자막 담당 인력을 확충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전했다. 

한글 자막의 전체 적용, 왜 어려울까?
OTT 사업자들의 자막 전체 적용 속도가 느린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 관계자들은 '비용'을 주요 원인으로 꼽고 있다. OTT에 입점하는 콘텐츠 수가 방대한 데다 기간 별로 입점하는 콘텐츠 계약 방식으로 한글 자막 제작에는 다소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다. 

▲ (사진=웨이브 오리지널 콘텐츠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 (사진=웨이브 오리지널 콘텐츠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대다수 OTT 사업자들은 콘텐츠를 직접 소유하는 않고, 일정 계약 기간을 두고 CP와의 계약 방식으로 서비스하고 있다. 최근에 제작되는 콘텐츠는 직접 소유 계약을 할 가능성이 있지만, 이전에 제작/방영된 영화 및 드라마의 경우 독점보다는 CP와 계약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콘텐츠를 소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넷플릭스 역시 방대한 콘텐츠와 제작 환경 탓에 모든 콘텐츠를 소유하고 있지는 않을 정도다. 

자막 제작을 위한 인건비도 제약 요소다. 자막 제작 과정에서 인력과 비용이 들어가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각 OTT 사업자들은 독점 또는 오리지널 작품에 먼저 한글 자막을 적용하고, 범위를 순차적으로 타 콘텐츠로 늘려가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블로터>에 "국내 많은 OTT 사업자들이 R/S(Revenue Sharing) 형태로 콘텐츠 계약을 한다"며 "모든 콘텐츠를 소유하지 않고 계약하는 형태로 가져온다. 수익률 역시 시청 시간에 따라 나누는 방식으로, 작품마다 계약 형태는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콘텐츠 수가 워낙 많은 데다, CP와의 계약기간을 정해두고 서비스를 하는 형태로 이뤄져 있는 만큼 현실적으로 모든 콘텐츠에 다 적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자막 서비스는 당초 청각 장애인을 위한 지원 서비스로 시작한 만큼, OTT 사업자들은 앞으로도 자막 서비스 고도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한글 자막 전체 적용 외에도 CC(폐쇄자막)이나 화면 개설 기능, 오디오 해설 추가, 텍스트 음성변환(TTS) 등 시청 약자를 위한 서비스가 강화돼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도 힘을 보태고 있다.

웨이브 관계자는 <블로터>에 "지난해 11월 한글자막 버전을 제공했던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는 자막 버전으로 재시청하는 시청자들도 많을 정도로 한글 자막에 대한 호응이 높았다"며 "비용 절감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 콘텐츠 전용 한국어 음성인식기나 장르별 문맥 기반 기계 번역기, 클라우드 자막 편집 도구 등 다양한 서비스 모델과 도구를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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