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플페이를 이용하는 모습.(사진=애플페이 홈페이지 갈무리)
▲ 애플페이를 이용하는 모습.(사진=애플페이 홈페이지 갈무리)

현대카드와 애플의 간편결제 서비스 '애플페이' 제휴가 정황상 '사실'로 무게가 기울고 있다. 양사의 협상은 상당히 비밀스러운 탓에 애플페이 도입과 반박 기사가 한 세트로 이어지는 패턴이 반복되면서 소비자들이 확신을 갖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현대카드가 남긴 단서는 애플과의 협력이 사실이 아니고서는 이상하게 보인다.

5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카드는 최근 게재한 채용 공고에서 자사의 신규 페이 서비스인 '크림페이'의 모바일 앱 테스트 및 가맹점 모집 영업을 담당할 인력을 채용한다고 했다. 크림페이라는 키워드가 주목되는 건 NFC(근거리무선통신) 결제이기 때문이다. 현대카드는 해당 공고에서 담당 업무로 'NFC Acceptance 오퍼레이션 지원 및 현장 테스트'라는 문구도 포함했다.

카드사들은 이미 한 번 NFC 결제 서비스를 도입하려다가 뼈아프게 실패한 경험이 있다. 2018년 8개 카드사가 NFC 규격을 통일해 만든 '저스터치'가 그것이다. NFC 결제를 하기 위해서는 마그네틱 카드 단말기가 아닌 NFC 단말기가 가맹점에 설치돼 있어야 한다.

카드사들은 저스터치 사업을 위해 9만여대의 NFC 단말기를 1차적으로 공급하기로 하고 약 200억원의 공급 비용을 분담할 계획이었지만 이견차를 좁히지 못했다. 금융당국이 전 카드사가 동일하게 비용을 지불한다면 리베이트가 아니라는 유권해석도 내렸지만 진전이 안 됐다. 이런 점을 비춰보면 카드사들은 NFC 결제가 크게 이득이 안 된다고 본 것이다. 이미 카드결제 방식은 마그네틱 단말기 기반으로 뿌리내린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저스터치에 함께 참여해 실패경험을 봤던 현대카드가 특정한 이익요건 없이 NFC 결제에 재진출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NFC 결제에서 확실한 주도권을 가진 애플페이와 손잡는다면 현대카드의 NFC 결제 진출은 전략적인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다.

▲ 현대카드가 크림페이 가맹점 모집 영업을 담당할 인력을 채용한다는 내용의 공고. NFC 결제임을 알 수 있다.
▲ 현대카드가 크림페이 가맹점 모집 영업을 담당할 인력을 채용한다는 내용의 공고. NFC 결제임을 알 수 있다.

현대카드가 단독으로 NFC 결제를 하기 위해 단말기 보급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재무적으로도 비합리적이다. 현대카드의 별도 재무재표를 보면 올 6월 말 기준 현금및현금성자산이 4440억원 수준이다. NFC 단말기를 전국 카드 가맹점에 구축하는 비용만 약 3000억원 정도로 알려졌다. 이미 경쟁 카드사들의 간편결제 서비스가 즐비한 상황에서, 자체 NFC 결제를 띄운다고 해서 성공 가능성을 크게 잡을 수 없고 비용만 날릴 가능성이 상당하다.

그렇다면 현대카드가 자체 NFC 페이 서비스를 개발할 정도로 IT(정보기술) 인력을 보유한 것일까? 간접적으로 이를 알 수 있는 지표가 회사 구성도다. 카드업계 1위 신한카드의 경우 디지털퍼스트본부 산하에 넥스트페이먼트팀을 두고 있다. 이 팀은 안면인식결제 '페이스페이' 등 차세대 간편결제 기술을 담당한다.

현대카드의 편제를 살펴보면 디지털부문 산하에 기술기획실, AI사업1본부, AI사업2본부, 디지털프로덕트본부, IT서비스본부가 있다. 간편결제 개발만 단독으로 담당하는 '실' 단위는 파악되지 않는다. 디지털부문에서 핀테크 담당 인력을 채용하고 있는데 해당 부문은 결제서비스를 기획, 운영,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이 부문에서 '개발'까지 한다면 업무량이 매우 상당할 것으로 추측된다.

현대카드는 크림페이의 앱 테스트를 진행한다고 했다. 이는 앱이 이미 상당히 개발됐다는 뜻이다. 그러나 특허정보검색서비스 '키프리스'에서 크림페이를 검색하면 결과값이 나오지 않는다. 장기간의 개발 과정에서 경쟁업체가 크림페이라는 명칭을 가로채 선점한다면 현대카드는 실이 큰데도 상표권 등록을 먼저 하지 않은 셈이다.

이런 점에서 크림페이의 '크림'이 현대카드가 편의적으로 지칭하는 '암호명'이라는 추측이 제기된다. 현대카드는 코스트코 제휴를 시작으로 PLCC(상업자표시신용카드) 프로젝트에 암호명을 붙이기 시작했다. 현대카드에 따르면 △우리말로 두글자여야 한다 △발음하기 쉬워야 한다 △해당 기업과 특별한 연관성을 발견하기 어려워야 한다 총 세 가지 원칙으로 암호명을 부여하고 있다.

이런 점을 종합하면 크림페이는 곧 애플페이 또는 애플페이 서비스를 상당부문 연계한 서비스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의 남다른 '취향'도 간접적인 증거로 꼽힌다. 현대카드는 금융권 최초로 '애플뮤직' 큐레이터로 선정된 바 있다. 슈퍼콘서트, 뮤직라이브러리, 바이닐앤플라스틱 등 현대카드의 문화적 자산은 정 부회장 체제에서 구축됐다. 정 부회장도 직접 개인 SNS에 애플뮤직 큐레이터 선정을 언급하는 등 애플과 문화적 코드가 통한다는 점을 어필하고 있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블로터>에 크림페이 관련 질의를 받고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답변을 거절했다.

만약 애플페이와 협력 체결이 최종적으로 이뤄질 경우 현대카드가 볼 이득은 충성도 높은 애플 고객을 카드사 중 단독으로 한 번에 이끌어올 수 있다는 점이 꼽힌다. 애플페이 수요가 현대카드를 거칠 경우 신한카드의 신한플레이 등 경쟁사 디지털 플랫폼을 일거에 뛰어넘을 수 있는 기회다. 카드 본업뿐 아니라 디지털 부문까지 사업기회가 확장할 수 있다.

특히 현대카드는 PLCC 파트너사들과 각 사의 데이터 및 분석기술을 공유하는 '도메인 갤럭시'라는 데이터 동맹을 갖고 있다. 현대차, 대한항공, 이마트, 스타벅스를 비롯해 아메리칸익스프레스, 넥슨, 미래에셋증권, 야놀자 등이 참여하고 있다. 애플과 PLCC까지 선보인다면 도메인 갤럭시의 위상은 더 크게 강화된다. 애플로서도 국내 주요기업과 데이터사업을 한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반면 애플페이와 제휴가 현대카드의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수 있다. 애플은 미국에서 카드사에 애플페이 결제 수수료로 0.15%를 요구하고 있다. 카드사는 현재 연매출 3억원 이하 영세 가맹점에서 신용카드 결제에 0.5% 수수료를 받고 있다. 0.15% 수수료로 계약이 체결될 경우 현대카드는 수수료 이익의 30%를 애플에 넘겨준다는 의미다. NFC 단말기 비용 부담 측면에서도 애플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현대카드는 올 상반기 당기순이익(1557억원)이 전년 대비 14.5% 감소했다. 롯데카드에 이은 업계 4위로 떨어지는 등 수익성이 악화하고 있다. 같은 기간 현대카드의 영업수익은 1조3097억원으로 전년 대비 4.9% 늘어난 반면 영업비용은 1조1203억원으로 8.3% 늘며 증가폭이 더 컸다. 차입금 확대와 기준금리 상승 영향으로 이자비용이 23.5%, 대손비용이 20.7% 늘어나서다. 금리인상 국면이 장기화될 가능성을 고려하면 애플과의 협력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또 신한카드가 반사이익을 볼 개연성도 있다. 신한카드는 아이폰에 부착해 오프라인 결제를 가능케 하는 '터치결제' 서비스를 일찍이 선보인 바 있다. NFC 단말기 설치는 단시간 이뤄지지 않을 전망이다. 애플페이가 국내에 도입된다고 해서 곧바로 이용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애플페이 고객은 신한카드 터치결제를 병용해 이용할 수 있다. '재주는 현대카드가 넘고 돈은 신한카드가 버는' 그림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저작권자 © 블로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