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사(MNO)보다 저렴한 요금'을 무기로 규모를 키운 알뜰폰(MVNO) 업계가 단순 가격경쟁이 부른 악순환에 빠져 있다. 업계의 자생력은 약해졌으며 알뜰폰 제도의 도입 취지와 달리 사업자들의 이통사 종속성은 높아지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전국 20세~59세 스마트폰 사용자 204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최근 국내 이동통신 서비스 이용행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알뜰폰 가입자의 92%는 요금 경쟁력을 가장 중요한 서비스 이용 가치로 꼽았다. 이통사 가입자는 요금과 더불어 결합혜택과 장기·우수고객 혜택도 70% 이상이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 이동통신 서비스 선택에 따른 중요도(위)와 서비스 만족도(아래) 조사 결과. (자료=ETRI 보고서 갈무리)
▲ 이동통신 서비스 선택에 따른 중요도(위)와 서비스 만족도(아래) 조사 결과. (자료=ETRI 보고서 갈무리)

알뜰폰 업체는 자사와 계약한 이통사의 LTE·5G 망, 요금 상품을 도매가로 빌려 저렴한 통신 서비스를 제공한다. 앞선 조사 결과처럼 소비자들도 이점에 호응했다. LTE 보급 이후 높아진 가계통신비 부담을 알뜰폰으로 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2011년 도입한 알뜰폰 제도의 취지 또한 통신시장의 요금 경쟁을 자극함으로써 전반적인 통신비를 낮추는 데 있었다.

그러나 알뜰폰 경쟁 구도가 장기간 요금제 가성비에만 집중되면서 업체 간 차별성은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현재 알뜰폰 업계에서 비슷한 수준의 음성·데이터를 제공하는 요금제 가격 차이는 몇백원에서 수천원 사이에 불과하다. 통신 품질은 어떨까? 알뜰폰의 통화·데이터 품질은 회선을 제공하는 이통사의 것과 동일하므로 업체 간 차이를 체감하기 어렵다.

따라서 알뜰폰 서비스 차별화에는 소비자를 유혹할 만한 부가 서비스 개발이 필수다. 이통사는 고유의 멤버십 프로그램, 통신 서비스 결합 상품 등을 중심으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반면 알뜰폰 업체는 주력인 통신상품 판매 사업의 낮은 수익성이 투자의 발목을 잡는다.

최근에는 '프로모션 요금제'까지 도입돼 한층 더 저렴한 가격으로 가입자를 모으고 있지만, 수익성 개선에는 큰 도움이 안 된다. 이는 대부분의 알뜰폰 요금제가 무약정으로 판매되는데, 특정 사업자의 서비스를 장기간 이용할 이유가 없는 소비자들이 프로모션 기간이 끝나면 곧장 다른 사업자의 혜택 요금제로 옮겨가기 때문이다.

모 알뜰폰 업체 대표 A씨는 "프로모션 상품 10개를 팔면 2~3명 정도가 원래 요금제 가격으로 돌아가도 가입을 유지한다"며 "사실상 그들 몇 명에게서 이익을 기대하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통사들이 알뜰폰 업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커지고 있다. 독자 서비스 개발에 난항을 겪고 있는 중소 알뜰폰 사업자들에게 이통사가 자사의 소비자 편의 서비스, 협력사 서비스 프로모션 등을 공유하며 부족한 경쟁력을 보완해주고 있는 것.

▲ KT는 지난 6월 '마이 알뜰폰'을 출시했다. 자사망을 이용하는 알뜰폰 업체 가입자들이 데이터 잔량, 요금 명세, 가입회선 정보 등을 통합 조회할 수 있도록 제공되는 공통 서비스다. 기존 알뜰폰 업체에서는 이와 같은 서비스가 갖춰져 있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자료=KT)
▲ KT는 지난 6월 '마이 알뜰폰'을 출시했다. 자사망을 이용하는 알뜰폰 업체 가입자들이 데이터 잔량, 요금 명세, 가입회선 정보 등을 통합 조회할 수 있도록 제공되는 공통 서비스다. 기존 알뜰폰 업체에서는 이와 같은 서비스가 갖춰져 있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자료=KT)

다만 이는 양날의 칼로 평가된다. 당장의 서비스 경쟁력은 확보할 수 있지만 이통사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다. 알뜰폰 업계도 이런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계속된 가격 경쟁과 자체 서비스 부재의 한계를 체감하고 있지만 이를 타개할 마땅한 방책이 없는 상황"이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중소업체가 대부분인 알뜰폰 사업자들은 대기업인 이통사처럼 장기간 손해를 감수하면서 서비스 개발에 집중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또 알뜰폰 사업자들에게 새로운 가입자 확보 기회가 될 것으로 여겨졌던 eSIM(이심) 국내 정식 서비스 개시도 김이 샜다. 이통3사가 이심 기반 듀얼넘버 사용자들이 가입할 수 있는 가성비 좋은 상품을 출시하면서 사용자들이 이심 추가 회선을 알뜰폰에서 가입할 이유가 줄었기 때문이다. 

대안은 없을까? 두 가지 안이 제시된다. 우선 알뜰폰의 존속 기반 확보다. A씨는 "비록 이통사의 영향력은 커지고 있지만 독립된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정책적 기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알뜰폰 업계가 주장하는 건 '망 도매제공 의무제공 일몰제 폐지'다. 이는 알뜰폰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알뜰폰 제도 도입 당시 시장지배적 사업자(SKT)에게 음성·데이터 등에 대한 도매를 의무적으로 제공하도록 한 법이다.

망 도매제공 의무는 지금까지 3년에 한번 일몰(법안 폐기)기간이 연장되어 오고 있다. 정부는 올해도 연장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알뜰폰 업계는 아예 일몰제를 폐지함으로써 보다 안정적으로 망 자원을 확보할 수 있길 바란다. 즉, 알뜰폰 사업자 입장에선 일몰제 폐지를 통해 사업의 불확실성이 줄어야만 보다 장기적인 사업 계획 수립이 가능하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알뜰폰 사업자들이 할 수 있는 작은 서비스 경쟁부터 시작하는 것도 자생력을 키우는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통사처럼 대규모 서비스, 사업 제휴를 통한 편익 제공은 어렵더라도 가입 절차 간소화나 사후 서비스(AS) 개선부터 차별화를 시작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국내 알뜰폰 가격비교 플랫폼인 '모요'도 이점에 착안한 이용자 후기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금처럼 업체 간 요금제 가격 차이가 크지 않은 상황에선 요금 비교만으론 서비스 가치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먼저 가입한 사용자들이 남긴 평가를 통해 후발 가입자들이 업체 간 최소한의 비교·선택이 가능하게끔 하겠다는 전략이다.

▲ 모 알뜰폰 서비스 이용 후기. (자료=모요 갈무리)
▲ 모 알뜰폰 서비스 이용 후기. (자료=모요 갈무리)

한편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알뜰폰 진흥 정책으로 시장 규모를 키워줘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업체 수 대비 작은 시장 규모 또한 알뜰폰 업계의 경쟁 여력을 낮추는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되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무선통신서비스 가입 현황' 통계에 따르면 올해 7월 기준 국내 알뜰폰 선·후불 요금제 가입자 수는 약 684만명이다. 이통3사가 보유한 가입자 6269만명 대비 10분의 1에 불과하다. 이들 가입자를 30여개 업체가 나누어 갖고 있다. 여기에 금융권 등에서 신규 사업자가 등장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지만, 현재 알뜰폰 후불 요금제 신규 가입자 수는 매달 5~7만여명 수준에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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