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LX세미콘)
▲ (사진=LX세미콘)

구본준 LX그룹 회장이 LX세미콘을 대형 반도체 기업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다음 전략은 무엇일까. 차량용 전력반도체 시장 진출 등 팹리스 사업 강화는 예정된 수순이다. 중요한 점은 최근 LX세미콘이 파운드리 시장에 진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는 것이다.

세계반도체 무역통계기구(WSTS)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 규모는 5560억원(한화 800조원)이다. 반도체는 크게 시스템 반도체와 메모리반도체로 나뉘는데, 이중 시스템 반도체가 전체의 70%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시스템 반도체는 5G, 자율주행, 인공지능(AI), 가상현실, 사물인터넷(IoT) 등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용된다. 이중 시스템 반도체를 설계하는 팹리스는 고부가 가치 산업으로 성장성이 커 국가 차원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다만 국내 기업들의 팹리스 경쟁력은 부족한 상황이다. 시장조사기관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팹리스 기업의 글로벌 시장 매출 비중은 1% 수준에 불과하다. 미국이 68%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어 대만 21%, 중국 9% 순이다.

▲ 자료=금융감독원
▲ 자료=금융감독원

M&A 통해 차량용 반도체 시장 진출

LX세미콘은 국내 팹리스 업체 중 유일하게 조 단위 매출을 내고 있다. 주력 제품은 디스플레이 구동칩(DDI)이다. DDI는 TV, 스마트폰 등 디스플레이가 탑재된 전자제품에 필수도 들어가는 반도체다.

LX세미콘은 DDI에 편중된 매출이 한계로 지적된다. 상반기 기준 DDI 매출은 전체 매출의 88.6%에 달한다. 지난해 LX세미콘은 코로나19 펜트업 수요로 인해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다만 올해 전방산업의 침체와 디스플레이 패널 출하량 감소 등 DDI 시장의 성장이 불투명해졌다. LX세미콘은 DDI에 편중된 사업의 수익을 다각화하고 신규 시장을 창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LX세미콘이 반도체 산업의 밸류업을 위해 내세운 첫번째 스텝은 차량용 반도체 시장 진출이다. LX세미콘은 지난해부터 적극적인 M&A를 통해 차량용 반도체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재 LX세미콘은 Power IC(전력반도체), MCU(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 등을 개발하고 있다.

전력반도체는 최근 전기차의 성장과 함께 시장이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전력반도체 세계 전력반도체 시장은 올해 319억달러(한화 46조원)에서 2026년 396억달러(57조원)로 연평균 약 6% 성장할 전망이다.

LX세미콘은 지난해 10월 LG화학으로부터 일본 방열 소재 업체 FJ머티리얼즈의 지분 29.98%를 68억원에 인수했다. LX세미콘은 또 경기도 시흥시 약 3000평 규모의 부지에 방열기판 공장을 건설 중이다. 공장은 연말께 완공될 예정이다.

방열기판은 반도체 가동 중에 발생하는 열을 빠르게 외부로 방출시키는 기판이다. 자동차 전장부품과 전자부품 등의 내구성과 안정성을 높이는 데 필수적이다. 전기차 시장의 성장과 함께 고전력 반도체 사용이 확대되면서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 5월에는 텔레칩스에 약 268억원을 투자해 지분 10.93%를 인수했다. 텔레칩스는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설계 사업을 운영하는 회사다. LX세미콘은 지분 인수로 시스템 온 칩(SoC)과 마이크로 컨트롤러(MCU) 사업 등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연구개발에 투입되는 금액도 크게 늘었다. LX세미콘의 지난해 연구개발비는 1714억원으로 전년(1209억원) 대비 41.8% 증가했다. 최근 5년간 추이를 살펴보면 2017년 792억원→2018년 857억원 2019년 998억원이다. 올해 상반기에는 이미 1000억원을 집행했다.


에피 웨이퍼 제조 특허 양수…파운드리 진출 가시화

LX세미콘은 지난해 10월 LG이노텍으로부터 60건의 특허를 양수받았다. 눈여겨볼 점은 LX세미콘이 양수받은 특허의 상당 부분이 SiC(실리콘카바이드) 웨이퍼 제조 방법에 관한 특허란 점이다. 특허정보검색서비스 키프리스를 살펴보면 LX세미콘이 LG이노텍으로부터 양수받은 특허의 상당 부분은 에피 웨이퍼의 제조 방법, 에픽택셜 웨이퍼의 제조 방법, 웨이퍼 제조 장치의 제조 방법 등에 관한 것이다.

에피 웨이퍼는 기존 웨이퍼에 화학 증착법을 이용해 유기금속화합물을 얇게 증착시킨 웨이퍼다. 내구성, 전력 효율성이 좋아 GaN(질화갈륨), SiC 전력반도체에 사용된다.

LX세미콘은 팹리스 기업으로 웨이퍼를 생산하지 않는다. 그러나 양수받은 특허의 상당 부분이 제조 특허임을 고려하면, 향후 LX세미콘이 파운드리 시장에 뛰어들 것이라고 유추해볼 수 있다. 국내에선 SK실트론이 SiC 에피 웨이퍼를 만들고 있다.

LX세미콘의 경력 채용에서도 파운드리 시장 진출에 대한 의중을 엿볼 수 있다. LX세미콘은 지난 15일부터 28일까지 진행된 하반기 경력 채용을 진행했다. 공정기술 분야의 경력직도 채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직무는 국내외 유수의 팹과 협업해 신규 공정을 개발하고, 해외 전략 팹의 공정을 개발·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국내외 파운드리 업체를 경험했거나 종합공정개발 및 소자개발 경험을 보유한 지원자를 우대하고 있다. 

LX세미콘은 시장 상황을 조사하기 위해 영업·마케팅 부문에서 파운드리 소싱 업무 경험자를 채용해 왔다. 이전까지 직접 파운드리 공정기술 인력을 채용한 사례가 없었다.

최근 LX세미콘이 매그나칩반도체의 인수를 추진한 것도 파운드리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매그나칩반도체는 2020년 파운드리 사업부를 떼어내 매각했지만, 아직 구미 공장에서 월 3만장 이상의 8인치 웨이퍼를 생산하고 있다. 국내 파운드리 업체인 DB하이텍의 월간 생산량이 13만장임을 고려하면, 매그나칩반도체의 생산 규모는 작지 않다.

일각에선 LX세미콘이 팹리스 업계 최초로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한 것을 두고, 생산설비 증설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LX세미콘은 반도체 설계 기업이기 때문에 온실가스 목표 관리제 의무 대상이 아니다. 향후 공장 증설을 대비해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

▲ LX세미콘이 LG이노텍으로부터 양수받은 특허(자료=특허정보검색서비스 키프리스)
▲ LX세미콘이 LG이노텍으로부터 양수받은 특허(자료=특허정보검색서비스 키프리스)

진입장벽 높은 파운드리…LX세미콘 자체 생산 체제 노리나

파운드리는 생산설비 구축을 위해 대규모 투자와 고객사 확보가 필수적이다. 진입장벽이 높은 분야로 알려져 있다. LX세미콘이 당장 반도체 생산에 나서더라도 시장의 플레이어들과 경쟁하기엔 경쟁력이 부족하다. 또 생산설비 증설에도 오랜 기간이 걸려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LX세미콘은 고객사로부터 반도체 위탁 생산을 받기보단, 자체 설계한 전력반도체의 직접 생산을 꾀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관점에서 매그나칩반도체는 LX세미콘의 팹리스 사업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직접 생산을 하고 있어 LX세미콘은 보다 쉽게 파운드리에 진출할 수 있다.

유사한 형태로 국내 팹리스 기업인 에이프로세미콘이 있다. 에이프로세미콘은 팹리스 기업임에도 GaN에피웨이퍼 제조기술과 GaN전력반도체 소자 공정에 대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웨이퍼 직접 생산을 위해 지난 2020년 GaN 전력반도체용 8인치 MOCVD 양산 장비를 국내로 도입해, 생산을 시작했다. 최근에는 파운드리 기업 DB하이텍과 공정기술 개발을 위해 MOU를 맺었다.

장기적으로 LX세미콘이 자체 설계한 차량용 반도체를 직접 생산한다면 미래 성장 동력을 마련할 수 있다. LX세미콘은 지난해 10월 LG이노텍으로부터 청주 공장 SiC 반도체 제조 장비를 양수받았다. 여기에 추가 M&A로 생산 설비까지 확보한다면, 자체 생산도 무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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