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TX 홈페이지 첫 화면. 빨간색 처리된 경고문 안에 '입금하지 말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는 문구가 담겨있다.
▲ FTX 홈페이지 첫 화면. 빨간색 처리된 경고문 안에 "입금하지 말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는 문구가 담겨있다.

중국은 가상자산 채굴을 금지하는 강력한 규제를 펴고 있지만 세계 시장에서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국계 가상자산거래소 FTX의 파산보호 선언이 대표적 사례다. FTX가 고객자산을 임의로 운용한 것이 단초였다면 중국계 거래소 바이낸스의 FTT(FTX 발행코인) 처분 선언 및 인수 번복은 결정타였다. 중국의 '전랑(戰狼·늑대전사) 외교'가 가상자산 시장까지 확장한 모습이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은 규제에 따라 가상자산 거래율이 역성장하고 있지만 홍콩과 마카오는 순성장하고 있다. 마카오는 홍콩과 함께 중국의 특별행정구에 속한다. 법률과 경제 체계가 다르고 자치권을 부여받아 별도 국가로 취급되지만, 결과적으로 '하나의 중국' 원칙이 적용된다.

실제로 블록체인 데이터 플랫폼 기업 체이널리시스가 지난달 발간한 보고서를 보면, 2021년 7월부터 2022년 6월까지 중국의 가상자산 시장은 전년 동기 대비 거래량이 31.1% 감소했지만 마카오는 14.5% 증가했다. 한국(13.2%)보다 더 높은 수치다. 홍콩은 9.5% 증가해 한국의 뒤를 이었다.

중국은 거래량이 역성장했지만 여전히 동아시아 내에서 가장 크고 전 세계에서는 네 번째로 큰 시장으로 나타났다. 최근 중국에서는 몇 달 동안 위축됐던 거래 활동이 회복되기 시작했고, 중국 정부의 규제로 큰 폭의 감소를 겪은 채굴 활동마저 다시 부활했다. 앞서 중국 정부는 2017년 9월부터 중국 내에서 가상자산 신규 발행 및 거래를 금지했으나, 중국계 자본이 국외로 본사를 옮겨 사실상 운영을 지속해왔다.

체이널리시스 측은 "자사 데이터를 통해 중국에는 여전히 가상자산 초창기의 반 체제 정신(anti-establishment ethos)이 남아있음을 알 수 있다"며 "정부의 단속도 분명히 효과가 있었지만, 중국의 가상자산 시장은 중앙화 거래 및 디파이 서비스 모두에서 상당한 거래량을 보이며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 (자료=체이널리시스)
▲ (자료=체이널리시스)

이러한 분석은 해외 가상자산거래소 비트멕스(Bitmex)의 아서 헤이즈 CEO(최고경영자)의 견해와 연결해서 보면 흥미롭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무역 수익으로 미국 재무부 채권을 구매해왔다. 이 같은 전략대로라면 올해 중국은 7000억달러치 국채를 추가로 사들였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미 재무부 등의 자료에 따르면 중국은 올해 미 국채를 가장 많이 판 국가다.

올해 미국은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달러 초강세'를 야기했다. 중국 입장에서는 자국 통화가치가 하락하는 와중에 미국 국채를 더 사는 건 달러 가치를 더 높이고, 위안화 가치를 절하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에 따라 중국 기업이 무역으로 얻은 달러로 비트코인 등 실물경제 바깥에 있는 가상자산을 구매한다면 위안화의 통화권력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추측이다.

아서 헤이즈 최고경영자는 "중국 정부가 사회안전망을 확대하고 소득을 수출 부문에서 가계 부문으로 재조정한다면 흑자를 '쓰게' 할 수 있다"며 "그러나 그것은 중국이 세계의 작업장이 되면서 지난 30년 동안 부와 권력을 얻은 파벌들을 해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극도로 어려운 정치적 결정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올 9월 기준으로 중국의 소비는 GDP 대비 41.3%에 불과하다. 제2위 경제대국치고는 극도로 낮은 수준이다. 미국의 경우 GDP 대비 소비가 60%에서 70% 수준이다. 중국은 사회주의적 통제가 이뤄지는 국가다. 비트코인 구매가 중국 내부의 금융 시스템을 잠식하지 않도록 위안화 자본 통제를 엄격하게 유지할 수 있다.

중국은 내부적으로는 비트코인 규제를 엄하게 펴고 있지만 대외적으로는 홍콩을 대리인 삼아 크립토 자본을 유입하는 이중적인 전략을 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홍콩 증권선물위원회(SFC)는 지난달 가상화폐 선물 상장지수펀드(ETF) 상품 출시와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미국 시카고 상품거래소(CME)와 동일한 방침을 적용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아서 헤이즈 최고경영자는 "중국의 일부인 홍콩의 금융 시스템은 더 자유롭고 실험적으로 허용된다"며 "다음 상승장은 중국이 가상자산 시장을 다시 받아들이는 시기와 연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러한 전망은 '뇌피셜'로도 볼 수 있지만 현재 비트코인 시세와 연동해 보면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비트코인은 FTX가 파산보호 신청을 했음에도 1만6000달러선의 시세를 지키고 있다. 바이낸스 CEO 자오창펑(중국계 캐나다인)이 가상자산 '회복 펀드(recovery fund)'를 출시한다고 밝히자 반등에 성공, 1만7000달러까지 치솟으면서다.

반면 미국의 경우 FTX 사태로 규제는 더욱 강화되면서 투심은 더욱 악화되는 모양새가 나타나고 있다. 캐시 우드 CEO가 이끄는 아크인베스트는 "FTX의 몰락으로 기관투자가의 가상자산 투자가 앞으로 몇 년간은 더 늦춰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 의회에서 규제 강경파에 속하는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은 "현재 가상자산업계에는 너무 많은 부패와 사기가 만연했다"고 했다.

중국계 크립토 참여자들은 이와 반대되는 분위기다. 가상자산 트론의 창시자로 최근 중국계 거래소 후오비를 인수한 저스틴 선은 최근 부산서 열린 '블록체인 위크 인 부산'에서 "현재 하락장세를 초래하게 된 것은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금리를 대폭 인상하고 대차대조표를 축소했기 때문"이라며 "인플레이션에 맞서기 시작하면서 글로벌 경기 침체의 상당 부분이 원인이 됐다"고 강조했다.

앞서 저스틴 선은 올해 시장이 위기에 닥쳤을 때 BTC 등 유동성이 높은 디지털 자산을 매입하는 한편 위기에 빠진 암호화폐 회사를 지원하기 위해 5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5월 비트코인 가격이 폭락했을 때 2억8000만달러를 들여 평균 매입 단가 3만6868달러에 약 4145비트코인을 구입, 평균 2509달러에 약 5만4153이더리움을 매수하기도 했다.

부산시 디지털자산 거래소는 중국계의 영향력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부산시는 바이낸스, FTX, 후오비와 부산 디지털자산 거래소 설립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는데 FTX는 영업력이 복구될지 미지수다. 이로써 부산시 거래소의 지원에 주축이 될 거래소는 현재 중국계가 다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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