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혁 SK브로드밴드 미디어 CO장이 28일 개최된 지미콘 2022에서 '아이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건한 기자)
▲ 김혁 SK브로드밴드 미디어 CO장이 28일 개최된 지미콘 2022에서 '아이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건한 기자)

"특정 업체를 비판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글로벌 OTT(온라인영상서비스)에서 흥행한 콘텐츠의 결과물은 배우나 작가에게 돌아갈 뿐, 콘텐츠 제작 생태계로 돌아오지 않는다. 재생산을 위한 선순환 구조가 아니다 보니, 콘텐츠 제작사들은 제작 단가가 점점 높아져도 글로벌 OTT의 선택만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지속 가능한 미디어 생태계를 위해 돈이 흘러야 하고, 콘텐츠 제작에 참여한 사업자가 더 성공해서 여력을 만들어야 한다."

국내 미디어 콘텐츠 제작 생태계가 넷플릭스를 위시한 글로벌 OTT 중심으로 재편된 가운데, IPTV 업계가 경종을 울렸다. 관련해 SK브로드밴드, KT, LG유플러스는 3사 공동 IPTV 브랜드 '아이픽'을 구축, 국내 콘텐츠 업계의 유통 선택지가 글로벌 OTT로 한정되는 불균형 해소에 나설 계획이다.

김혁 SKB 미디어CO장은 28일 여의도 콘래드 서울에서 개최된 제4회 '지미콘(GeMeCon) 2022'에서 아이픽의 구축 배경 및 목표 등을 자세히 소개했다.

넷플릭스 문턱만 바라보게 된 국내 콘텐츠 제작 시장
최근 2년 사이 글로벌 콘텐츠 시장은 OTT에 의한 새로운 질서 재편이 이뤄지고 있다. 선두주자는 넷플릭스다. 잘 만들어진 콘텐츠가 넷플릭스와 만나 세계적으로 흥행하고, 출연 배우와 감독이 일약 글로벌 스타로 발돋움하는 사례는 이제 국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킹덤', '오징어게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넷플릭스도 이 같은 콘텐츠 발굴을 위해 한국에 매년 수천억원을 투자한다. 2022년 기준 한국 시장에만 5000억원이 투자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대박 콘텐츠가 투자비 상쇄와 넷플릭스의 영향력 강화로 이어지는 결과를 만든다. 이는 단편적으로 볼 때 배급사인 넷플릭스와 콘텐츠 제작사, 출연 감독·배우 등이 모두 윈윈(win-win)이 가능한 구조이기도 하다.

문제는 '지속 가능성'이다. 넷플릭스가 흥행 보증수표로 각인될수록 시장의 균형은 중심을 잃기 쉬워진다. 넷플릭스와 같은 대형 OTT는 '입도선매'로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제작 단계에서 우선 확보하고 이를 글로벌 시장에 유통해 '사이즈 업(Size up)'한다. 이 과정에서 선택된 제작사와 그렇지 못한 제작사는 희비가 갈린다. 선택을 받으려면 대형 사업자의 대규모 자본 투자를 유치하고, 넷플릭스 출연을 노리는 배우들의 천정부지로 솟은 출연료와 고품질 영상 콘텐츠 제작비까지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김 CO장은 "이제 편당 10~20억원 정도 하는 제작비는 뉴스거리도 안 된다"며 "배우들도 출연료로 6억~7억원 이상을 요구하고 올해 제작비 300억원 이상인 작품만 5개다. 이 정도의 출연료를 특정 방송사나 채널이 감당하면서 경쟁 구도를 이룰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 글로벌 OTT 쏠림 현상이 심화된 콘텐츠 제작 시장은 최근 급격한 제작비 인플레이션에 따른 생존 부담이 가중된 상황이다. (자료=현장 발표자료 갈무리)
▲ 글로벌 OTT 쏠림 현상이 심화된 콘텐츠 제작 시장은 최근 급격한 제작비 인플레이션에 따른 생존 부담이 가중된 상황이다. (자료=현장 발표자료 갈무리)

이런 변화는 두 가지 시사점을 낳는다. 국내 미디어 시장의 중심이 넷플릭스로 고착화되면서 일어나는 승자독식의 부작용, 다른 면에선 이에 대항하지 못하는 국내 미디어 생태계의 부족한 경쟁력이다.

아이픽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IPTV 업계가 고심 끝 내놓은 방안이다. 3사가 공동 구축한 콘텐츠 브랜드 아래 대규모 투자처를 함께 물색하고, 제작사들에겐 넷플릭스를 대신할 매력적인 선택지로 성장하겠다는 계획이다.

김 CO장에 따르면 현재 IPTV 3사도 1년에 2조원 이상의 자금을 콘텐츠 시장에 쏟아붓고 있다. 아이픽은 이 가운데 우선 3000억원의 선투자처를 찾을 방침이다. 이마저도 당장 넷플릭스에 비빌 수준은 아니지만, 아이픽의 궁극적인 목표는 앞서 언급된 지속 가능한 미디어 생태계 조성이다.

이를 위해 아이픽은 투자 후 제작사의 제반 권리를 모두 가져가는 방식의 기존 시장 내 계약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유통권을 비롯한 모든 권리는 계약 당사자들의 투자 지분 및 협의에 따라 분배된다. 예컨대 아이픽과 계약한 제작사가 협의에 따라 해당 콘텐츠를 글로벌·2차 판권으로 스핀오프할 수도 있는 구조다.

김 CO장은 "양측이 리스크(Risk)를 몇 대 몇으로 가져가느냐에 따라 1:9이든, 9:1이든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며 "이것이 아이픽의 차별점"이라고 말했다. 또 "대규모 거래든 단건 거래든 모두 가능하고, 모든 부담을 제작사가 떠안거나 글로벌 OTT만 찾는 외통수 유통 구조를 더 이상 그냥 두고보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생태계 구축을 통해 아이픽이 노리는 바는 3000만명 규모의 국내 IPTV 사용자들에게 안정적으로 콘텐츠를 공급하고, 제작사는 보다 다양한 유통채널 선택을 통해 부가사업의 확장 기회를 넓히는 것이다. 김 CO장은 "K-콘텐츠는 윈윈할 수 있어야 하고 누군가 와서 사냥하듯 시장을 앗아가는 부분이 꼭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 아이픽을 제안했다"며 "정부도 다양한 기금 및 콘텐츠 지원을 이뤄가고 있는 만큼, 팀을 모았을 때 조금 더 규모감 있고 영향력 있는 결과를 낳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혼자서는 개점휴업 상태처럼 의미가 없다. 3사가 마케팅, 홍보를 같이할 것이고 공동 사업의 책임을 갖고 아이픽을 키워가겠다. 추후에는 웨이브, 티빙 등의 OTT 연계 방안도 열어서 논의할 것이며 모든 결정은 투자 비율에 따라 조화롭게 결정되는 구조를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 김 CO장이 공개한 IPTV 3사 공동 브랜드 '아이픽'의 개요 및 전략 방향성. (자료=현장 발표자료 갈무리)
▲ 김 CO장이 공개한 IPTV 3사 공동 브랜드 '아이픽'의 개요 및 전략 방향성. (자료=현장 발표자료 갈무리)

유료방송 시장 주도권 쥔 IPTV, '나무 아닌 숲을 바라볼 때'
IPTV 업계가 이 같은 '상생 제스처'에 선제적으로 나선 배경은 뭘까? 현재 국내 유료방송 시장의 성장은 IPTV가 주도하고 있다. 유선 케이블TV(SO)와 위성방송은 가입자는 갈수록 줄고, 이탈한 가입자와 신규 가입자는 IPTV로 모이고 있다. 이는 인터넷 기반의 IPTV의 사용 편의성, 부가 서비스, 요금제 결합할인 등의 혜택이 기존 유료방송을 앞서는 까닭이다.

28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2022년 상반기 평균 유료방송 가입자 수 및 시장 점유율' 자료에 따르면 국내 IPTV 가입자 수는 상반기에 처음으로 2000만명을 돌파했다. 시장 점유율은 56.11%로 2017년 케이블TV를 역전한 이래 계속해서 격차를 벌여가고 있다. 상반기 케이블TV 점유율은 35.62%, 위성방송은 8.27%로 집계됐다.

IPTV 가입자 증가는 곧 이를 서비스하는 SKB, KT, LG유플러스 등의 매출 증가로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국내 시장 점유율 다툼은 글로벌 OTT와의 경쟁 앞에서 무색해지고 있다. IPTV 전환기를 맞아 아직은 국내 유료방송 총 가입자 수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으나, IPTV도 자생할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이 같은 성장세가 언제 마이너스(-)로 돌아설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3사의 아이픽 구축은 상생의 제스처이자 동시에 각사의 장기적 생존을 위한 선택인 셈.

한편 아이픽의 성공을 위해선 충분한 투자와 더불어 지속성을 갖는 것도 중요하단 의견이 따른다. 방송업계 한 관계자는 "아이픽은 올해 IPTV 3사가 공동투자한 첫 영화 '외계+인'의 후속 활동으로 보인다"며 "외계+인이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어도 시장에 새로운 투자자가 들어왔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다만 "대규모 자본을 얼마나 지속적으로 투자할 것인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 그 지속성을 유지해야 아이픽이 기대하는 효과나 효용 검증이 가능할 것"이라며 신중한 평가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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