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터닷넷은 앞으로 댓글은 받지 않겠습니다.

어제 새벽까지 회원가입 프로세스 만들고, 실명확인 모듈 붙이고 하느라 끙끙대다가 결단을 내렸습니다. 아예 댓글을 받지 말자고.

이전에 공지해드린 대로 블로터닷넷은 '2010년도 본인확인제 의무도입 대상자'로 선정됐 습니다. 방문자가 일일 10만명을 넘는 인터넷 사이트는 본인확인을 거친 회원들에게만 댓글이나 게시판에 글을 쓸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게 우리의 법입니다. 이에 따라, 블로터닷넷도 이제 실명확인을 거친 회원들에게만 댓글을 쓸 수 있게 해야 하는 의무를 부여받은 것이죠.

그래서 실명확인을 거쳐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는 등록 시스템을 부랴부랴 만들다가(블로터닷넷은 회원가입이라는 게 따로 없었습니다) 결국 댓글을 아예 없애버리자고 생각했습니다. '댓글'이라는 아주 기본적인 소통 채널을 없애버리겠다고 결심하게 된 이유는 이렇습니다.

블로터닷넷은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지지합니다. 자신의 의견을 꼭 실명 확인 후에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터넷 실명제'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해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반대하는 실명제를 불가피하다는 핑계로 슬그머니 도입하려니 부끄러웠습니다. 그렇다고, 대놓고 현행법을 위반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방법은 댓글 자체를 없애는 것이었습니다. 댓글이나 게시판 같은 의사표현 창구가 없다면 본인확인제 의무대상자라 하더라도 본인확인 조치를 할 근거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지지하지만, 익명의 뒤에 숨은 악플이나 스팸까지 지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악플러나 스패머는 우리도 미워합니다. 하지만 본인확인조치가 익명의 폐해를 막을 수 있는지 의심스럽고, 오히려 또 다른 폐해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별도의 회원가입 절차를 거쳐 로그인을 한 회원들에게만 댓글을 허용하는 회원제 도입은 블로터닷넷도 검토했던 사안입니다. 그러나, 회원가입시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해 그 정보를 보관하면서까지 등록을 받는 식은 아니었습니다. 이메일이나 오픈아이디같은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러한 정책은 법적인 강제의무가 아니라 서비스 업자가 자율적인 정책으로 만들어 시행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회원들의 동의와 양해를 구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주민등록번호를 꼭 보관해야 하는 방식의 실명확인 시스템은 부담스럽습니다. 그 무시무시한 '개인정보'를 안전하게 보관해야 하는 일이 자신없고 너무 큰 부담입니다.

회원제를 도입하지 않는 것은 회원들에게 특별하게 제공할 그럴 듯한 서비스가 아직 없는 것도 이유입니다. 블로터닷넷의 기사를 읽고 공감하고 비판하는 이름모를 독자들이 우리에겐 회원입니다. 회원이란 이름으로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할 꺼리가 아직 없습니다. 물론 준비는 하고 있습니다. 준비가 된다면 그때 회원제 시스템 도입을 검토하겠습니다.

댓글을 없애도 괜찮을까 사실 고민많았습니다. 그럼에도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이제 댓글말고도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하고 나눌 수 있는 툴들이 많기 때 문입니다. 블로거라면 트랙백이 있고, 트위터나 미투데이 같은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바로 소셜미디어들입니다. 지금도 많은 트랙백이 블로그나 트위터, 미투데이를 통해 들어오고 있습니다. 다른 많은 소셜미디어 서비스들이 있고, 또 더 많이 생길겁니다. 이들을 활용하면 굳이 사이트안에다 글을 남기고 이후엔 글을 남긴 것조차 잊어버리고 마는 댓글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댓글만이 유일한 의사표현인 시대는 지났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내키지 않은 본인확인 조치를 취해가면서까지 댓글을 유지해야 하는 지 의문이었습니다.

블로터닷넷에서는 앞으로 댓글 대신 트랙백이나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의사 소통을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 툴로 쓰겠습니다. 이를 위해 다양한 소셜미디어들과 연계 서비스에 적극 나서겠습니다. 블로터닷넷은 웹2.0이나 소셜미디어 시대에 빚을 지고 있습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작고 힘없는 미디어였지만, 웹2.0과 소셜미디어라는 거대한 자양분 덕분에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소셜미디어에 진 빚을 갚는 작은 노력이라고 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댓글이 의사를 표현하는데 아주 편리한 툴이기는 합니다. 해서, 이번 조치가 블로터닷넷의 기사에 많은 의견들을 남겨주시던 분들께는 불편하고 난감한 일일 수 있습니다. 진짜 '불가피하게' 사과의 말씀과 함께 양해를 구합니다. 저희 고민의 배경을 이해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라는 1.0 툴을 소셜미디어라는 2.0 툴로 업그레이드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트랙백을 활용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국내외 소셜미디어에 있는 블로터닷넷 공식 사이트와 소통해주시기 바랍니다. 블로터닷넷도 소셜미디어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블로터닷넷 드림

PS : 공교롭게도 오늘이 만우절이네요. 깜찍한(!) 장난쯤으로 오해될 까 걱정입니다. 그런 건 아닙니다. 그리고, 블로터닷넷 상근 블로터들과 필진으로 활동중인 필진들은 보충의견을 남기거나, 트랙백 등을 통해 들어온 독자들의 의견에 답하기 위해 기존의 댓글 시스템을 활용하겠습니다. 다만, 이는 댓글이 아니라 트랙백으로 들어온 독자 의견에 대한 답변이나 공지를 위해 내부 직원들만 사용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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