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자바의 기술표준을 주도하는 자바 커뮤니티 프로세스(JCP)와 오라클의 자바 정책을 대표하는 두 명의 인사가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SK텔레콤이 5월4일 주최한 자바 스탠다드 에디션(아하 자바SE)/엔터프라이즈 에디션(이하 자바EE) 집행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입니다.

패트릭 커랜(Patrick Curran) JCP(Java Community Process) 프로그램 의장과 도날드 도이치(Donald R. Deutsch) 오라클 표준화 전략 및 아키텍쳐 총괄은 행사를 마친 4일 오후 삼성동 한국오라클 본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습니다. JCP의 현황과 오라클의 자바 정책을 소개하는 자리였지만, 기자들의 관심은 오라클과 오픈소스 진영의 갈등 국면에 집중되는 모습이었습니다.

JCP 의장 패트릭 커랜
▲ JCP 의장 패트릭 커랜


패트릭 커랜(Patrick Curran) JCP 의장


2010년 초, 오라클이 썬마이크로시스템즈 인수 작업을 마무리하자, 전세계 자바 개발자들은 촉각을 곤두세웠습니다. 그 동안 수익 창출에 관한한 기민한 능력을 발휘해왔던 오라클이 과연 자바 관련 정책을 어떻게 변화시킬 지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래리 엘리슨 오라클 CEO는 인수작업을 마무리하는 동안, "썬이 매월 1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며 썬 경영진의 방만한 경영을 비판하고 특히, 썬이 자바로부터 많은 수익을 창출해내지 못했다고 꼬집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인수 작업이 마무리되자, 오라클은 썬 창업공신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여러 오픈소스 커뮤니티와 구글을 상대로 싸우면서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2010년 8월, 오라클이 "안드로이드가 자바 기술의 특허권과 저작권을 침해했다"라며 구글을 고소하면서 갈등이 표면으로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뒤이어 전세계 최대 오픈소스 재단인 아파치 소프트웨어 재단(ASF)이 자바SE/EE 최고위원회에서 탈퇴하면서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아파치 재단은 오라클의 상업적인 관심이 자바 생태계의 투명한 통제를 심각하게 간섭하고 편향되게 하고 있다”라며 "오라클이 자바를 과도하게 통제하고 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심지어 '자바의 아버지' 제임스 고슬링(James Gosling)도 오라클을 떠나, 자바 특허 침해 건을 놓고 오라클과 싸우고 있는 구글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고슬링의 이탈은 자바 개발자들도 마음이 오라클에서 멀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억됩니다.

오라클_도날드 도이치 총괄
▲ 오라클_도날드 도이치 총괄


도날드 도이치(Donald R. Deutsch) 오라클 표준화 전략 및 아키텍쳐 총괄


도이치 오라클 총괄은 "아파치 재단과의 갈등은 오라클의 썬 인수 전부터 썬과 아파치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도 "오라클과 자바 개발자 커뮤니티와의 관계에 악영향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는 "현재 개발자들과 관계를 보수해나가는 작업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라며 "특히 오라클의 여러 임원이 자바 개발자들을 이끄는 자바 챔피언들과 활발히 만나며 관계를 강화해나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JCP가 집행위원회 선거에서 브라질의 자바 유저 그룹인 SouJava을 추천한 것도 개발자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구애 작업입니다. 집행위원회 선거에 유저 그룹이 추천된 것은 처음입니다. 커랜 JCP 의장은 "JCP 조직의 프로세스를 개선하고 있는 것도 개발자들의 오랜 의견을 수렴해 진행하고 있는 것"이라며 "개발자들과의 관계 회복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오라클은 개발자들과 관계 회복에 나서는 한편, 기술적으로는 새롭게 자바 표준을 업데이트하며 개발자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입니다. 오라클은 2010년 11월 멀티코어 프로세스와 모듈화를 수용한 자바SE 7과 9에 대한 표준안(JSRs : Java Specification Requests)을 제시했으며 JCP가 12월 이를 승인했습니다. 올 초에는 자바EE 7에 대한 JSRs 구성에 들어갔으며, 연말에는 하드웨어 그래픽 가속과 향상된 UI 제어를 지원하는 자바FX 2.0도 선보일 예정입니다.

비록 오픈JDK에 오라클이 의장을 받고 IBM이 부의장을 맡은 것에 대한 비판이 계속되는 등 갈등이 모두 봉합된 아니지만, 오라클이 자바 사양을 본격적으로 업데이트하기 시작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도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썬이 오라클을 인수하기 전부터 지난 2년 간 자바와 관련해 많은 개선 사항이 답보 상태에 있었습니다.

커랜 JCP 의장도 "개발자들은 항상 새로운 것을 원하는데, 자바 개선이 늦어지면서 관심이 줄어들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작년 말부터 자바 SE 7/8, EE 7 등 새로운 발표가 이어지면서 개발자들의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그 밖에 자바의 클라우드 지원에 대한 질문과 모바일 시장에서 제자리에 머무리고 있는 자바의 현 상황에 대한 답변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커랜 의장은 "자바 EE의 아키텍트들이 클라우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클라우드 환경을 적절히 이용할 수 있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면서도 "아직까지 구체적인 사양을 언급하기에는 시기 상조"라고 말했습니다.

자바의 클라우드 컴퓨팅 표준을 제정하는 서브 그룹 위원장을 맡고 있기도 한 도이치 총괄은 "클라우드 컴퓨팅은 아직 초기 단계에 있으며, 서브 그룹에 참여하고 있는 80여개 기업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아직까지 시장의 방향이 분명치 않다는 것이 중론"이라며 "클라우드 컴퓨팅과 관련된 수요가 본격적으로 발생하기 전까지 이를 충족시키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겠다"라고 전했습니다.

'안드로이드가 차지한 부분을 제외하면, 급성장하는 모바일 시장에서 자바 모바일 에디션(자바 ME)의 성장이 제자리에 머무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 커랜 의장은 "현재 자바 ME와 관련된 표준안 제정이 SE/EE와 비교해 다소 늦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4일 열린 회의에서도 자바 ME가 조금 더 개선될 필요가 있다는 점에 의견을 모으고 많은 시간을 투입해 토론을 벌였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추후에 발표될 자바 ME에서 자바 SE만큼의 기능을 제공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으며, 올해 중에 자바 ME에 대한 개선안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구글과의 소송에 대한 진행사항과 자세한 입장, 고슬링의 이탈에 대한 오라클의 의견을 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도이치 총괄은 구글과의 소송건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으며, 고슬링이 구글로 떠난 것에 대해서도 "행운이 함께 하길 빈다"라며 답변을 피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오라클이 썬을 인수한 후 1년이 넘게 흐른 지금까지 자바를 둘러싼 많은 우려와 갈등이 있었지만, 이와 무관하게 자바 기술의 중요성은 날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N스크린과 크로스플랫폼의 시대에 '기종이나 운영체제의 구분 없이 누구나 사용 가능한 응용 프로그램 개발 도구'라는 기치를 내건 자바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데스크톱은 물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과 TV, DVD 플레이어 등 수많은 디바이스에서 자바를 만날 수 있습니다. 전자책 리더와 IP전화, 스마트카 등 새롭게 출현한 디바이스에도 자바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유수의 제조업체가 위치해 있고, 많은 자바 개발자들이 활동하고 있는 등 자바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나라 가운데 하나입니다. 한국에만 21개의 JCP 회원사가 있으며, 78명의 JCP 회원이 엑스퍼트 그룹에서 활동하고 있기도 합니다.

한국의 자바 개발자 여러분은 오라클이 썬을 인수한 이후 펼치고 있는 자바 정책과 최근의 업데이트 사항, 그리고 개발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겠다는 오라클의 약속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과연 오라클은 자바 개발자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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