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2008년 아이폰 속에 앱스토어를 열면서 스마트폰에서 애플리케이션과 서비스 유통의 혁신을 일으켜 모바일 업계를 크게 뒤흔들어놓았다. 2011년 말 아마존에서 발표한 '킨들 파이어'는 모바일 업계와 서비스 업계에 또 다른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아마존 킨들 파이어에 대해 살펴보고 앞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인지 예측해 본다.

저렴한 가격 경험

지난 8월 아직 애플 아이패드에 별다른 경쟁자가 나타나지 않던 태블릿 시장에서 고전하던 HP의 터치패드가 생산 중단을 결정하며 파격적인 99달러 할인을 한다. 놀랍게도 HP터치패드는 순식간에 매진되며 짧은 기간이지만 판매량이 안드로이드를 넘어 아이패드에 근접했다. 아이패드와 갤럭시탭 등의 고가의 태블릿 구입에 망설이며 저렴하지만 쓸 만한 태블릿이 있다면 얼마든지 구입할 의향이 있는 소비자들이 많다는 것을 확인했다.

아마존은 9월28일 '프리미엄 제품을 프리미엄 없는 가격에 판매한다'며 킨들 파이어를 하드웨어 생산 가격보다 저렴한 199달러에 내놓았다. 1대에 50달러의 손해를 보고 판다는 조사기관의 분석도 나왔다. 아마존은 킨들 파이어를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지만 콘텐츠 판매를 통해 수익을 만회한다는 전략이다. 기존 태블릿의 절반 가격인 만큼 HW 성능도 다소 떨어지고 운영체제는 안드로이드를 사용하는데 성능이 다소 떨어지는 오래전 버전의 OS인 2.1 에클레어를 사용하고 있다. 태블릿용 OS가 아니라며 구박을 받았던 1년전 출시된 삼성의 7인치 갤럭시탭 보다도 낮은 버전이다.

킨들 파이어는 안드로이드 기기 선택에 중요한 결정 요소인 OS 버전과 하드웨어 스펙은 떨어지고 구글의 서비스도 탑재되지 않아 안드로이드 마켓도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전자책, 음악, 영화, TV프로그램, 게임 등 태블릿 사용자들에게 필요한 핵심 서비스들은 모두 탑재해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이 새로운 태블릿에 소비자들은 하루만에 사전 예약 10만대를 신청했고, 킨들 파이어는 성공을 예약했다. 아마존은 소비자들에게 경쟁력있는 태블릿 기기에 대한 저렴한 가격 경험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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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ndel_fire_500

그동안 애플의 아이패드에 대항하기 위해 애플리케이션 장터를 갖추고, 개발자를 모으며, 사용자 친화적인 UI를 만들고, 하드웨어 스펙과 속도를 올리고, 새로운 기능을 갖춘 최신 운영체제로 버전을 올리면서 애플이 만들어놓은 규칙 위에서 경쟁을 하고 있던 안드로이드 진영에도 아마존은 불을 질렀다. 아이패드와의 가격 경쟁에도 힘들어하는 안드로이드 제조사들은 기존과 같은 방식으로는 킨들 파이어보다 낮은 가격의 태블릿을 절대로 만들어낼 수 없다. 그렇다면 이제 넋놓고 아이패드와 킨들 파이어에 당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기존 제조사들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고 모바일 업계는 어떻게 달라지게 될 것인가. 아이폰 이후 다시 한번 모바일 업계는 큰 변화의 시기를 겪게 될 것이다.

제조사와 서비스사의 제휴

아마존은 애플, 구글, 삼성, HTC, LG 할 것 없이 달려가고 있던 OS 기능과 하드웨어 스펙 경쟁에 딴지를 걸었다. 킨들 파이어는 남들과 다르게 기능과 스펙이 아닌 서비스 경쟁에 승부를 걸었다. 기존 제조사들은 앱스토어로 제품에 가치를 더하고 클라우드 스토리지 등의 서비스를 통해 사용자를 붙잡아두며 하드웨어 판매로 수익을 얻었다. 아마존은 하드웨어가 아닌 서비스에서 직접적인 수익을 올리는 것이 목표로 남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경쟁하고 있다.

스마트폰의 경우 안드로이드가 통신사의 지지를 얻어 iOS와 심비안을 넘어 1위의 자리로 올라갔다. 휴대폰에서는 통신사가 보조금을 통해 낮은 가격으로 스마트폰을 공급하면서 판매를 이끌어내어 안드로이드폰이 빠르게 시장내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태블릿의 경우 소비자들이 추가적인 통신비 지출을 원하지 않아 통신사 네트워크를 필요로 하지 않는 와이파이 모델이 더 많이 팔린다. 하지만  와이파이 모델의 경우 통신사의 보조금을 통한 가격 하락 효과가 적어 소비자 입장에서 선뜻 구매하기 힘들다. 이에 아마존은 서비스 수익을 통해 기기값을 낮춰 판매를 이끌어내려 하고 있다.

다른 제조사가 아마존이 제공하는 저렴한 가격 경험에 대응하려면 그 방식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하지만 제조사들은 아마존과 같은 서비스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직접 만들고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거대 서비스 업체인 구글과의 제휴만으로는 부족하다. 제조사 뿐만 아니라 아마존의 경쟁 관계에 있는 서비스사들도 자신만의 기기로 사용자들을 확보하는 아마존에 대응해야 할 필요성이 있지만, 기기 제조와 유통에 한계가 있다. 그 동안 느린 속도로 제조사와 서비스사들의 제휴가 발전되고 있었지만 아마존의 위협이 커질수록 제조사와 서비스 진영간의 사전 탑재를 통한 제휴 협력도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앱이 사전탑재돼 있으면 스마트 기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이제는 사전탑재 전략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면 스마트 기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시대가 될것이다.

제조사와 서비스 업체의 제휴는 특정 서비스를 제품에 사전탑재하면 서비스 업체가 기기 판매에 보조금을 미리 지급하는 방식이나 판매 이후 서비스에서 나오는 매출의 일정 비율을 제조사에게 지급하고 대신 제조사가 수익을 예측해 기기 가격을 낮추는 형식이 될 것이다. 제조사는 서비스 사전탑재를 기존과 같이 단순히 하나의 앱으로 설치해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제품 전체의 이용자 화면(UI)에 밀접히 결합시켜 수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형태로 수행해야 한다. 사전 탑재된 서비스에서 나오는 수익이 커져야 그에 따른 기기 가격 하락도 커지기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존이 모바일 업계에 주는 변화를 요약하면 기기 가격 하락을 위해 제조사와 서비스사 제휴가 강화되면서 서비스가 사용자에게 전달되는 유통 과정이 기존에 앱스토어를 통해 사용자가 서비스 앱을 내려받아 설치하는 형태에서 제품에 서비스가 밀접하게 결합해 사전탑재돼 제품 구입과 함께 사용자에게 전달되는 형태로 바뀐다는 것이다.

변화가 스마트폰 OS 경쟁에 주는 영향

애플의 iOS가 단일 제품, 단일 UI, 단일 유통 채널 등으로 글로벌라이제이션을 추구하는 제품을 만들어낸다면, 구글의 안드로이드는 글로벌라이제이션에 있어서는 iOS의 장점을 따라가는 동시에 로컬라이제이션이 용이해 '글로컬라이제이션'을 추구하는 제품들을 만들어낸다. 메트로UI등을 탑재한 윈도우폰은 안드로이드보다는 iOS에 더 가까운 글로벌라이제이션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비스는 로컬의 성격이 매우 강하다. 다양한 제조사에 의해 기기와 서비스가 밀접하게 결합돼 로컬라이즈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OS는 현재 안드로이드가 유일하다. 안드로이드가 나오면서 구글 외 서비스와의 다양한 결합이 기대됐는데 드디어 아마존이 제대로된 물건을 들고 나왔다.

구글과 분리된 아마존의 독자 생태계가 안드로이드를 분열시켜 악영향을 미칠까. 아니다. 오히려 아마존이 안드로이드의 잠재력을 제대로 폭발시켰다고 생각한다. 아마존이 HP의 웹OS 구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만약 아마존이  웹OS 를 HP로부터 구입해 킨들 파이어의 OS가 안드로이드에서 웹OS로 옮겨간다 할 지라도, 아마존이 주는 업계의 새로운 변화에서 가장 큰 힘을 받는 OS는 결국 안드로이드가 될 것이다.

이미 콘텐츠로 충분한 수익을 얻고 있는 iOS는 변함없이 현재의 방식을 가져갈 것이고, '타도 iOS'를 목표로 하는 윈도우는 기존의 전략에 위협을 주는 새로운 적의 출현에 힘들어할 것이다.

판매하는 제품의 변화

제조사는 지금까지 하드웨어 중심으로 제품을 팔아 수익을 만들었고 서비스는 간접적으로 유통시켰지만, 이제 능동적으로 서비스를 공급받아 직접 팔아야 하는 시대가 왔다. 그렇다면 판매하는 제품에도 변화가 있지 않을까.

제조사들은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를 강조하고 있지만 안드로이드의 최대 생산자인 삼성전자 제품들의 이름(갤럭시S 와이파이 4.0/5.0,  갤럭시탭 7.0/7.7/8.9/10.1, 갤럭시 S/R/W/M/Y)을 보면 여전히 화면 크기와 성능 등의 하드웨어 차이로 구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앞으로 제품들은 지금처럼 하드웨어 스펙으로 구분되는 것 뿐 아니라 탑재되는 서비스 특징으로도 구분돼야 할 것이다.

서비스 업체가 범용 하드웨어 제품을 공급받아 앱만 올려 파는 형태는 경쟁력이 없다. 제품 자체가 서비스 중심으로 구성되고 브랜딩돼야 한다. 안드로이드가 처음 등장할 때부터 이러한 변화를 예상하고 기대하고 있었으나, 여러 이유로 그러한 변화가 크게 감지되지는 않았다. 서서히 변화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킨들 파이어가 지른 불이 그것을 더욱 빠르게 가속화시킬 것이다. 앞으로는 하드웨어가 아닌 서비스로 차별화된 다양한 제품들의 출현을 기다려 본다.

서비스 그리고 서비스 플랫폼

애플로 인해 모바일 산업 구조가 급격히 재편되고 있는 와중에 아마존이 한번 더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이제 제조사들은 애플과 아마존 두 마리 토끼를 따라 뛰어야 하는 상황이 왔다. 아마존은 낮은 스펙이지만 더욱 매력적인 제품을 만들어냈다. 제조사들은 하드웨어 스펙 경쟁에서 한발 물러나 다시 제품을 정의내려야 한다.

네이버나 다음 등 서비스 업체들이 제기하는 불공정 끼워팔기 논리도 변화하는 가치사슬 상에서 힘을 잃을 수 있다. 서비스 업체들은 새로운 변화에 맞춰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준비해야 한다.

애플이 아이폰을 들고 나오고 구글이 모토로라를 인수하면서 언론이 호들갑을 떨고 난리를 치던 OS, 정부가 몇백억 투자해서 개발하겠다는 바로 그 OS는 현재 변화하는 모바일 산업의 핵심이 아니다. 아마존은 2년 전에 구글이 오픈소스로 공개해놓은 구식 안드로이드 2.1 OS를 가지고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뒤돌아보면 애플의 아이폰과 구글 안드로이드가 가져온 변화의 중심에는 언제나 OS가 아닌 서비스가 있었다. 아마존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 지금 중요한 것은 OS가 아니라 서비스 그리고 서비스 플랫폼이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서비스 산업을 발전시키고 글로벌로 나갈 수 있는 서비스 업체를 육성하는 것이다.

킨들 파이어는 성냥불일까, 산불일까. 나는 매우 거대한 산불로 번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킨들 파이어가 출시될 수 있는 지역은 아마존 서비스가 미치는 범위로 제한돼 있다. 하지만 과거 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때처럼 안이하게 대응한다면 또 다시 크게 당할 수 있다. 안드로이드 진영도 새로운 환경에 전략을 재정비할 필요성이 있어 보이며 '구글로라'가 어떤 대응을 할 지도 촉각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아이폰이 가져온 변화에 물먹고 헤롱거리는 기업들이 킨들 파이어에 의해 다시 한번 변하는 환경을 따라잡지 못하면 이번에는 물먹는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불타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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