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을 준비하는 벤처기업 사이에 '린 스타트업' 이론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비단 IT 분야만 관심을 가지는 건 아닌가 봅니다. 이중호 미래출판전략연구소장이 '출판계도 린 스타트업 이론을 도입하자'고 제안했습니다. 필자 동의를 얻어 블로터닷넷 지면에 소개합니다.

창업 이론인 ‘린 스타트업’은 창업가와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추진하는 기업가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제 린 경영은 창업에 국한된 개념에서 모든 일을 합리적으로 개선할 수 있도록 돕는 경영이론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 같다.

최근 책을 출간하는 것도 하나의 스타트업이라는 개념이 나오면서 IT관련 분야나 경제·경영 도서를 출판하는 저자나 출판사를 중심으로 '린(Lean) 출판'이나 '애자일(Agile) 출판' 등 새로운 출판 방법론이 시도되고 있다. 린 스타트업의 창시자 애릭 리스는 인터뷰에서 “나는 몇 년 전부터 '책은 곧 스타트업이다'(a book is a startup)라고 생각해 왔다”라고 말했으며, ‘런닝 린’의 저자 애시 모리아도 그의 저서에서 “책을 쓰는 과정은 제품을 개발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라고 언급하면서 본인의 저서를 출판하는 과정을 린 경영 사례로 소개하기도 했다.

성공을 100% 보장할 수 있는 벤처 창업이 없듯이 출판도 이제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성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저자나 출판사의 경우 출간할 책의 수요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는 일부 소비자들을 참여시키기도 하지만 책에 대한 실제적인 적합성에 대한 검증은 출간된 후에 진행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출판사는 책을 출판할 때마다 ‘출간계획서’를 작성하는데 이것은 책을 출간해서 판매하가 위한 일종의 간단한 사업계획서라고 볼 수 있으며 저작권, 기획, 편집, 홍보·마케팅, 디자인, 조판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마케팅 계획 속에 가격, 고객층, 판매 목표 등이 언급돼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출판사가 세운 가설일 뿐이지 책이 정식으로 출간되기 전에 실제로 어떻게 제품·시장 적합성을 검증받을 것인지는 큰 과제로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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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an_02

위 그림은 애시 모리아가 ‘런닝 린’을 집필하는 과정을 정리한 것이다. 애시는 린 스타트업 개념을 실제 본인의 창업 과정에 적용한 사례를 블로그에 올리면서 구독자들의 권유로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집필 중에도 계속 고객의 블로깅이나 워크샵 같은 피드백을 통해 제품·시장 적합성을 검증하고 콘텐츠를 반복 개선하면서 얼리어답터들에게는 책의 선주문 조건으로 집필을 끝낸 내용은 2주에 한번씩 PDF 파일로 먼저 배포했다.

이 과정에서 오라일리가 향후 개정판 출간에 대한 관심을 보이기도 했으며, 결국 초판 집필 전자책을 완료해서 혼자힘으로 약 1만부를 판매했다. 초판 전자책이 출간된 이후에도 애시는 린캔버스와 유저사이클를 개발하는 등 콘텐츠를 업그레이드한 후에 오라일리와 함께 개정판(종이책+전자책)을 완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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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an_01

오라일리는 이미 잠재 고객이 확보되고 어느 정도 적합성이 검증된 콘텐츠를 출판할 수 있게 된 것이며, 린 스타트업 개념에서 보면 저자인 애시는 창업자의 역할을 담당하고 오라일리 출판사는 벤처캐피탈이 돼 주었으며, 블로그와 PDF는 베타 버전의 책이 됐다.

나는 솔직히 애시의 반복개선은 개정판에서 끝날 줄 알았다. 나는 ‘런닝 린’ 개정판을 2권 구매했는데 한 권은 영문판 전자책으로 오라일리 웹사이트에서 직접 구매했고, 한글 번역본은 전자책이 없어서 한빛미디어에서 출간한 종이책을 국내 인터넷서점에서 샀다. 그런데 얼마 전에 오라일리로부터 내가 구매한 전자책 내용이 일부 개정됐으니 무료로 내려받으라는 e메일이 도착했다. 책을 내려받아 판권을 살펴보니 개정판이 출간된 뒤 3번에 걸쳐 추가로 업데이트된 기록이 있었다.

여기서 나는 린 출판에 있어서 반복개선이 고객에게 주는 만족감과 함께 디지털 출판과 전자책의 필요성에 대해 절실하게 느꼈다. 종이책이라면 세 번째 에디션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겠지만 전자책은 집필 즉시 업그레이드되는 것을 보고 종이책과 전자책은 서로 경쟁관계라기보다는 보완관계가 될 수 있겠다고 느꼈다. 또한 책 성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출판도 한 번에 완성하는 것보다,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듯이 베타버전을 먼저 내고 고객의 피드백을 받아서 반복개선하는 것이 시장에서의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잠재 구매 고객을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2월 뉴욕에서 개최된 'TOC 컨퍼런스'에서 린 출판과 관련한 발표를 했던 피터 암스트롱 린퍼브 대표는 린 스타트업 이론을 통해서 출판에 적용할 것을 요약해서 발표했다. 주요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1. 가능한 일찍 출판해라. 즉 실패도 하려면 빨리 해라.
2. 자주 출간하고 고객(독자)들에게 귀를 기울여라.
3. 처음부터 모든 것을 집필하기 보다는 계속해서 반복개선해라.
4. 커뮤니티(블로그 혹은 저자 사이트)를 구축해라.
5. 집필 중에도 마케팅과 판매를 시작해라(Pre-Edition, Beta Book).
6. 최종 완성되면 되도록 출판사를 통해서 출간하고 판매하라.


린 출판과 애자일 출판의 개념은 초기 단계이다. 미국에서도 오라일리, 소스북스 등 일부 혁신 출판사와 전문가 중심의 저자들이 협업을 통해서 시도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국내에서 시도되기 힘든 특별한 기술이나 노하우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제 국내 출판계도 새로운 출판산업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 린 출판을 포함한 다양한 출판방법론에 관심을 갖고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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