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꼼수다' 열풍 이후 팟캐스트는 국내에서 주류 미디어의 한계를 보완하는 잠재력을 보여줬지만 유튜브라는 초대형 동영상 플랫폼의 부상 속에 언제부터인가 그 열기가 많이 수그러들었다. 팟캐스트에서 맹활약하다 유튜브로 배를 갈아탄 이들도 적지 않다.

반면 미국은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유튜브에는 못미치지만 팟캐스트도 나름의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다.
미국 인터넷 광고 협회(IAB)와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팟캐스트 광고 시장은 42% 성장한 6억7천870만달러 규모로 추정되고 있다. 2021년까지는 10억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음악 스트리밍으로 유명한 '스포티파이' 등 거물급 콘텐츠 서비스 회사들의 팟캐스트 시장 진출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팟캐스트 전용 콘텐츠 시장에 뛰어드는 기업과 제작자들도 느는 추세다.  팟캐스트 광고에 지갑을 여는 메이저 회사들도 적지 않다.

▲  왼쪽부터 SBS라디오 편성기획팀 남중권 차장,미디어기술연구소 이경렬 차장, 이세훈 PD.
▲ 왼쪽부터 SBS라디오 편성기획팀 남중권 차장,미디어기술연구소 이경렬 차장, 이세훈 PD.

한국과 미국 팟캐스트 시장 간 이 같은 온도차를 어떻게 봐야할까? 영어라는 언어가 갖는 글로벌 파워에 따른 결과일까? SBS 라디오에서 팟캐스트 콘텐츠를 제작하고 서비스하는 남중권 편성기획팀 차장(PD), 미디어기술연구소 이경렬 차장, 이세훈 PD는 크리에이터들이 적절한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투명한 지표와 정산 시스템이 있고 없고의 차이라고 잘라 말한다.

남중권 차장은 "국내 팟캐스트 시장은 팬덤이 확실한 진행자들이 운영하는 것을 제외하면 돈 버는 곳들이 거의 없다. 메이저 광고를 유치할 수 있는 공신력 있는 수치와 유튜브처럼 크리에이터들에게 광고 수익을 배분할 수 있는 체계적인 정산 시스템도 체계적으로 갖춰지지 않다보니, 팟캐스트로는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는 수익을 올리기 힘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팬덤을 가진 일부 유명 팟캐스트 진행자들의 경우 이를 기반으로 자체 광고 유치가 가능하지만 다수 크리에이터들은 팟캐스트만으로는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SBS는 회사 차원에서 그동안 많은 팟캐스트 콘텐츠를 제작해왔다. 라디오와 청취자들 간 접점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팟캐스트가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카드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를 위해 SBS는 기존 라디오 프로그램들을 큐레이션해 제공한 것은 물론 팟캐스트 전용 콘텐츠도 여러개 선보였다. 공식 라디오 프로그램 편성에서 제외됐지만 퀄리티가 좋았던 프로그램들도 팟캐스트를 통해 부활시켰다. <필름클럽> 등 적지 않은 트래픽을 자랑하는 팟캐스트 콘텐츠는 이렇게 탄생했다. 팟캐스트로 뭔가 해볼만 하다는 공감대가 내부에 형성됐다.

하지만 SBS라디오는 팟캐스트 콘텐츠로 발생시킨 트래픽으로 수익화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딜레마에 직면한다. 팟캐스트 콘텐츠를 몇명이 내려받았다는 숫자만으로는 광고를 유치하기가 역부족이었다. 수치는 주류 광고판에선 인정받지 못했다. 그렇다고 광고 없이 팟캐스트만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정규 라디오 방송은 아니지만 팟캐스트 제작엔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라디오 방송 PD들이 별도의 시간을 투입해야 하고, 진행자와 게스트들에게 출연료도 그때그때 줘야 한다. 그러려면 팟캐스트 콘텐츠로도 일정 규모의 수익 기반을 갖춰야 하는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 SBS 라디오팀이 직면했던 딜레마는 대충 이렇게 요약된다.

대안을 모색하던 중 미국쪽은 어떤가 하고 봤더니 한국과는 다른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미국은 2017년에 이미 팟캐스트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SBS라디오는 팟캐스트 호스팅 전문 업체 ART19와 커뮤니케이션 하는 과정에서 딜레마의 원인을 발견했다. 숫자의 투명성이었다.

SBS라디오 이경렬 차장은 "미국은 팟캐스트 호스팅 회사들이 모여 업계 표준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팟캐스트 트래픽에 있는 거품을 걷어내고 광고주들이 받아들일 만한 진성 수치를 제공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현했다. 이를 통해 광고주 유치에 필요한 투명성을 확보했다"라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한국 팟캐스트 시장은 투명성 측면에서 미국에는 한참 못미친다. 트래픽에 거품이 많이 끼어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은 팟캐스트에 최적화된 정산 시스템이 나오지 않는 결과로 이어졌다. 숫자에 투명성이 떨어지다 보니 메이저 광고 대행사들을 공략하기도 어렵다. 이세훈 PD는 "미국은 포드 등 메이저 광고들이 팟캐스트에 들어오고 있는데, 미국 인터넷 광고 협회(iAB) 기준을 따르는 수치가 신뢰를 얻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팟캐스트, 동영상과는사용자층 달라...잠재력 여전히 커"

SBS 라디오는 유튜브 전성 시대라고 해도 팟캐스트는 여전히 잠재력이 큰 미디어라는 입장이다. 지금은 듣는 사람들만 있고, 그에 걸맞는 비즈니스 모델이 나오지 않았을 뿐이다.

타깃 오디언스(audience)도 유튜브로 대표되는 동영상과는 다르다고 강조한다. 광고 채널로서도 마찬가지다. 광고 효과 측면에선 팟캐스트가 유튜브보다 오히려 나을 때도 많다. 남중권 차장은"팟캐스트 광고는 전환율이 좋다. 그러다보니 노출당 단가인 CPM(Cost Per Impression)이 좋다"라고 말했다.

팟캐스트는 라디오의 아류 또한 아니다. 라디오 보다 확장성이 좋은 미디어 포맷이다. 이세훈 PD는 "팟캐스트 광고는 라디오와 다르다. 라디오는 광고에 대한 규제가 있지만 팟캐스트는 그렇지 않아 수익 모델을 확대할 수 있다. 예전 팟캐스트 콘텐츠에 붙은 A사 광고를 지금 B사로 바꿀 수 있다. 고품질 팟캐스트가 늘어나면 광고주들도 많이 들어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조건은 역시 투명한 통계 인프라를 먼저 갖추는 것이다. 이를 위해 SBS는 ART19과 제휴를 맺고 미국 IAB 기준에 부합하는 팟캐스트 청취자 통계를 지난 3월5일 공개했다. SBS가 팟캐스트 관련 수치 자료를 외부에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SBS라디오에 따르면 iAB 기준은 중복 청취자와 비정상적인 IP 주소를 제거한 것으로 실제 청취 행태에 가장 근접한 수치로 대부분의 글로벌 팟캐스트 서비스 업체가 사용하고 있다. 그런만큼, 이번 청취자 통계 공개는오디오 콘텐츠 생태계의 불투명성을 해소하고, 청취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그동안 유튜브에 비해 빈약했던 수익 모델을 다각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게 회사측 설명이다.

하지만 원맨쇼로는 판을 바꾸기 어렵다. 팟캐스트 관련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이 함께 움직여야 투명성 확보를 위한 인프라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이경렬 차장은 "시간이 걸릴 수 있겠지만 다른 방송사들과도 기준을 공유하자는 얘기를 하고 있다. 팟빵 등 팟캐스트 서비스 플랫폼들과도  만날 것이다. 이게 광고주 신뢰를 확보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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