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뷰]'조제'를 추억하며

발행일 2020-11-24 13:19:17
(스포주의) ‘콘텐츠뷰’는 게임, 드라마, 영화 등 국내에서 서비스되는 콘텐츠를 감상·체험하고 주관적인 시각으로 풀어보는 기획입니다. 스포일러가 있으니 원치 않는 분들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몸이 불편한 여자와 바람기 많은 남자의 운명적인 사랑.'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감정이다. 소설 속 주인공 '조제'가 되고 싶었던 '쿠미코(이케와키 치즈루 분)'와 자유분방한 대학생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 분)'의 만남과 이별을 담담하게 풀어낸 사랑 이야기 정도랄까. TV로 접했던 이 영화의 온도는 '차가운 겨울 공기' 같았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왼쪽)과 조제 포스터. (사진=엔케이콘텐츠,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네이버영화 갈무리)


영화를 접한 지 10년도 더 지난 최근, 비슷한 온도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리메이크한 영화 '조제'의 예고편이다. 한지민과 남주혁이 출연한 '조제'는 원작을 각색한 영화다. '조제' 예고편을 보고 문득 '그때 그 감성과 온도가 왜 차가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제'로 살기 위해 선택한 '이별'

10년 전에 봤던 영화를 다시 보는 것은 꽤 낭만적이었다. 과거의 느꼈던 감성을 다시 경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설렘 때문이다. 넷플릭스에서 '조제' 두 글자만으로 어렵지 않게 원작을 찾아볼 수 있었다.

원작을 감상할 때 주인공 '쿠미코'에 몰입하기 위해 집중했다. 다음 달 국내 개봉하는 리메이크작이 철저하게 '조제'의 시선을 쫓기 때문이다. 구구절절한 사랑 이야기로 생각했던 그때와 전혀 다른 감성으로 다가왔다.

행복한 한때를 보내는 쿠미코(왼쪽)와 츠네오. (사진=엔케이콘텐츠, 네이버영화 갈무리)


'조제'가 되고 싶었던 쿠미코의 시선에서 영화를 보면 더 차가운 온도로 느껴질 수 있다. 영화에서 쿠미코는 츠네오를 만나기 전부터 소설 속 주인공 '조제'를 동경했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일상에 스며든 츠네오는 쿠미코의 시선에선 소설 속 연인 '베르나르'였을지 모른다. 자신을 조제로 만들어 줄 유일한 사람이 츠네오이기에, 사랑부터 이별까지의 모든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쿠미코를 조제로 부르는 사람은 츠네오뿐이다. 츠네오가 쿠미코를 조제로 부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현실 속 '조제'는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조제의 입장이 아닌 쿠미코 시선에서 본다면 세상은 심해에 지나지 않았다. 소설에 등장하는 조제에 감정을 이입하고 세상을 바라볼 때 우연히 츠네오가 등장했고, 이때부터 쿠미코는 조제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더 이상 쿠미코를 사랑하지 않음을 알게 된 츠네오(왼쪽). 쿠미코도 이별의 순간을 담담하게 준비하고 있다. (사진=엔케이콘텐츠, 네이버영화 갈무리)


쿠미코는 이별의 순간도 조제의 삶에서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기에 무던해지려고 애를 쓴다. 츠네오가 고장난 유모차를 '못 고친다'고 해도, '상견례를 가냐'는 친구의 짓궂은 장난에도 쿠미코는 무덤덤하다. 이미 '차'를 빌려 타고 여행을 떠나는 것조차 츠네오와의 이별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소설 삽화에서 '조제'와 '베르나르'는 차 안과 밖에서 이별의 언어를 나눈다.

다만 쿠미코는 여행이 끝나면 찾아올 '헤어짐'을 두려워했다. 화장실에서 츠네오가 자신을 안을 때나 전동휠체어를 사서 자신의 고생을 덜어달라는 얘기를 꺼냈을 때, 왈칵 쏟아져 나올 눈물을 애써 참았으리라. 쿠미코는 경직된 손가락으로 내비게이션 버튼을 끄면서 '바다'로 가자고 말한다. 영화 속 바다는 쿠미코에게 안정감을 주는 반면 세상과 단절했던 심해의 공간이다. 온천 여관이 아닌 물고기성 숙박업소를 고집한 것도 '조제'가 아닌 '쿠미코'로의 순수함을 되찾고 이별의 순간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한국판 '조제'는 어떤 모습일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정주행하고 리메이크작 '조제'의 예고편을 다시 보니 비슷하면서도 다른 요소들을 포착할 수 있었다.

공통점은 주인공의 배경이다. 할머니와 둘이 사는 조제는 자신만의 세상 안에서 오로지 책으로만 지식을 습득한다. 쿠미코와 츠네오가 창문 너머로 이야기를 나눈 부분도 리메이크작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우연히 만난 남자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만 아픔의 순간을 맞이한다는 서사 구조는 원작의 감성을 비슷하게 따라갈 것으로 보인다.

조제 역을 맡은 한지민.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네이버영화 갈무리)


다만 상징적인 장치들이 많이 다르다. 원작에서 쿠미코의 또 다른 '집'이자 '이동수단'으로 사용된 유모차는 리메이크작 '조제'를 거치며 '휠체어'로 바뀐다. 츠네오가 스케이트보드를 달아줬던 유모차는 조제로 넘어오며 휠체어를 고쳐주는 장면으로 대체된다. 시대적 배경 차이가 17년 이상 나는 만큼 스마트폰을 쓰는 등 깨알 같은 변화도 찾아볼 수 있다.

주의 깊게 들여다볼 부분은 원작 제목 가운데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빠졌다는 점이다. '호랑이'와 '물고기들'은 사실 쿠미코가 각각 두려워하는 생물이자 '조제'로 다가서기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관문이다.

조제(왼쪽)와 영석의 관계를 암시하는 장면. (사진=엔케이콘텐츠, 네이버영화 갈무리)


츠네오를 만나 심해와도 같은 암흑기를 탈출한 쿠미코는 물고기가 반가우면서도 물고기 무리와 함께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가장 무섭지만 들여다봐야 하는 생물로 비춰진 호랑이 역시 철창 안에 갇혀 발톱을 감춘 무기력한 존재에 불과하다. 리메이크작 '조제'에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빠진 것을 보면 서사의 완결성이나 전개 과정에 변주를 줄 가능성도 점쳐진다. 원작이 쿠미코와 츠네오의 만남과 관계 변화에 집중했다면, 리메이크작의 경우 '조제'의 서사를 극대화한 로맨스를 부각하진 않을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본 후 커피 한잔을 마시며 생각해봤다.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나는 그렇게 담담하게 놓아줄 수 있을까. 10년 만에 다시 만난 쿠미코의 뒷모습에서 진짜 조제가 보인 뒤 내가 느낀 공기는 더 먹먹하고 싸늘해졌다. 어쩌면 이 영화는 처음부터 '이별'을 말하고 싶었기에 그 쓸쓸함이 여운으로 남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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