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HMM(옛 현대상선)의 매각을 위해 저울질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나온다. 코로나19 등의 여파로 컨테이너 물동량이 증가함에 따라 HMM을 매각할 적기라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포스코가 유력 인수 후보로 거론되고 있을 정도여서 매각 시기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과 현대그룹의 참여 가능성도 거론된다. 매각 작업이 시작되면 HMM이 5년 만에 민영화에 성공할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한국경제신문>은 지난 27일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산업은행 등이 HMM의 민영화 검토에 나설 것이라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정부 관계자는 "산업은행이 HMM 민영화 방안을 기획재정부에 보고했다"며 "조만간 소관 부처와 함께 본격적인 검토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보도를 종합하면 해운업이 호황을 맞으면서 장기간 '홀드 상태'였던 HMM 매각 작업이 재추진되는 분위기다. 정부는 2016년 현대차그룹의 물류 계열사 현대글로비스에 현대상선 인수를 제안했다. 현대글로비스는 사업성을 검토했지만 시너지가 크지 않아 인수를 거절했다. 이후 HMM 매각 작업은 중단됐고, '공기업' 형태로 운영됐다.

HMM 최대주주는 12.61%의 지분을 보유한 산업은행이다. 신용보증기금이 7.51%의 지분을, 한국해양진흥공사가 4.38%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산업은행 등은 해운업 불황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한동안 매각 작업에 나서지 않았다. 원매자를 찾기 어려운 게 매각에 나서지 않은 주된 이유였다.

그러다 코로나19로 글로벌 해운시장 운임이 상승, 해운업체 실적이 개선됐고, HMM이 3개 분기 연속 흑자를 내면서 매각 가능성이 이전보다 한층 높아졌다. HMM을 매각할 적기라는 게 해운업계와 정부 측의 기류다. 언론 보도도 산은 등이 HMM 매각을 물밑에서 추진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보도를 통해 해운업계와 이해관계자의 분위기를 우선적으로 파악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산업은행은 "HMM 매각을 검토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아직 매각 작업이 시작도 되지 않은 만큼 시장의 논란을 조기에 잠재우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인수 후보로 꼽혔던 포스코는 28일 공시를 통해 "산업은행으로부터 HMM 인수를 제안받은 적 없다"고 밝혔다.

▲  HMM 컨테이너선이 출항을 기다리고 있다.(사진=HMM)
▲ HMM 컨테이너선이 출항을 기다리고 있다.(사진=HMM)

그럼에도 언론 보도 이후 HMM 매각과 관련한 논란은 오히려 확산되는 분위기다. HMM의 시장 지배력 등을 고려할 경우 또 하나의 '대어'가 M&A 시장에 나오기 때문이다. HMM이 2개 분기 연속 흑자 전환에 성공하면서 매각 가능성도 어느 때보다 높다.

HMM은 지난해 2분기 21개 분기 만에 흑자 전환했다.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은 4137억원을 기록했다. 시장은 HMM이 지난해 8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을 것으로 전망했다. 순손실은 128억원으로 여전히 적자다. 전년 매출과 영업손실은 각각 5조5130억원, 2996억원이다.

HMM의 영업활동도 이전과 비교해 크게 개선됐다. 지난해 3분기 매출 원가율은 85.6%를 기록했다. 2019년 매출원가는 100.8%였다. HMM은 화물을 국외로 실어 날라도 이윤을 남기지 못했다. 지난해 코로나19로 글로벌 물동량이 급증하면서 HMM의 선박은 만선 출항했다. HMM은 선박이 부족해 임시로 선박을 빌려 출항하고 있는 상황이다. 상하이 컨테이너운임지수도 집계를 시작한 이래 연일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HMM은 지난해 4월부터 해운 동맹 체제인 '디 얼라이언스(The Aliance)'에 가입했다. 디 얼라이언스는 세계 3대 해운 협력체제 중 하나로 독일 하팍로이드와 일본 ONE, 대만 양밍 등 3개의 회원사가 가입돼 있다. 이는 HMM의 매각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  HMM 실적 추이.(자료=금융감독원)
▲ HMM 실적 추이.(자료=금융감독원)

HMM은 국내 유일의 대형 해운사로 선복량은 지난해 상반기 기준 62만8092TEU를 기록했다. 길이 20피트, 높이 8피트 크기의 컨테이너 62만개를 운반할 수 있다. HMM은 선복량 기준 세계 8위의 해운사다. 점유율은 2.6% 가량이다. 국내 유일의 대형 해운사로 미주와 유럽 등을 오가고 있다. HMM의 미주항로 점유율은 7~8%다.

이 때문에 글로벌 물동량과 운임 지수만 받쳐 주면 사업성이 우수하다는 평이다. 해운업이 불황일 시기에는 HMM의 인수 메리트가 크지 않았지만 지금은 다르다는 게 해운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다만 해운업은 싸이클 산업으로 호황 이후에는 장기간 불황을 겪는다는 점은 단점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 풍부한 자금력과 자체 화물을 보유하고 있는 업체가 인수할 경우 유리하다. 현재 IB업계에서 거론되는 곳은 포스코다. 포스코는 쇳물 생산량 기준 글로벌 5위의 철강사다. 포스코는 연간 12조원 규모의 철광석을 브라질과 호주 등에서 수입한다. 아르헨티나와 호주 등에서 리튬을 수입하고, 미얀마 등에서 LNG를 들여오고 있다. 계열사 포스코인터내셔널은 곡물 트레이딩 사업을 하고 있다.

HMM을 인수할 경우 포스코와 계열사는 원재료를 보다 저렴하게 들여올 수 있다. 수직 계열화도 가능해진다. HMM은 컨테이너선 외에도 벌크선을 보유하고 있다. 전체 매출 중 벌크선 비중은 약 10% 안팎이다. 지난해 3분기 벌크 부문 누적 매출은 4221억원(9.5%)을 기록했다.

포스코가 HMM 인수전에 뛰어들 경우 8년 만에 조 단위 M&A에 나서는 것이다. 포스코는 2019년 그룹 내 분산되어 있는 물류 업무를 통합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당시 해운사들은 포스코가 해운업에 진출하려고 한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포스코가 HMM 인수전에 본격적으로 나설 경우 해운업계의 거센 반발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범현대가도 HMM 인수전에 뛰어들 가능성이 크다. HMM 인수 후보로 거론되는 그룹은 현대그룹이다. 현대그룹은 2016년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HMM을 출자전환하면서 경영권을 뺏겼다. 그러면서 현대그룹은 중견그룹으로 위상이 낮아졌고, 현재 현대엘리베이터를 중심으로 재기를 노리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도 인수 후보로 거론된다. 현대자동차그룹은 현대글로비스의 기업 가치를 키워야 할 필요성이 있다. 현대글로비스의 기업가치가 커져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지분 승계가 용이해 진다. 이미 정부도 과거 이런 점을 고려해 현대차그룹에 HMM 인수를 제안한 바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HMM 민영화는 국내 해운업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며 "해운강국을 위해서는 선복량 확대가 필요해 자금력이 풍부한 것이 인수하는 게 해운업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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