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69돌'을 맞은 한화그룹에게 2021년은 남다른 해다. 승계 문제, 사업전략 등 모든 부문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재계 7위 대그룹 한화그룹이 직면한 전환기적 상황은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 변화와도 연관이 깊다. 전환기를 맞은 한화그룹의 현재와 미래를 들여다 본다.

▲ 한화그룹 본사 전경. (사진=한화)
▲ 한화그룹 본사 전경. (사진=한화)

“혁신온도를 지금보다 1도 더 높이는 집요함이 필요하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2018년 신년사에서 ‘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후 사실상 그룹 지주사 역할을 맡고 있는 ㈜한화도 변하고 있다. 지난해 후계자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이 ㈜한화 전략부문장을 맡은 뒤 변화의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반도체는 변화를 원하는 ㈜한화의 새 먹거리 후보 중 하나다. ㈜한화는 반도체 장비 사업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 사업 추진 초기 단계인 탓에 결정된 내용은 없다. 다만 ‘증착 장비’에 관심을 갖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계열사인 세메스를 제외하면 지금까지 대기업이 증착 장비에 뛰어든 사례는 없다.

사업 진출 역량 갖췄나
▲ 반도체 공정 단계. (자료=중소벤처기업부 기술국산화 전략품목 상세분석 보고서)
▲ 반도체 공정 단계. (자료=중소벤처기업부 기술국산화 전략품목 상세분석 보고서)

증착은 보통 반도체 8대 공정 중 5번째, 10대 공정 중 6번째 과정으로 꼽힌다. 불필요한 회로를 제거한 웨이퍼 위에 분자 또는 원자 단위의 박막을 입히는 일련의 과정을 증착이라고 부른다. 박막을 입히는 건 서로 다른 회로를 구분하고 전기 등 다양한 특성을 갖게 하기 위함이다.

증착은 크게 물리적 증착방식(PVD)과 화학적 증착방식(CVD), 원자층 증착방식(ALD)으로 나뉜다. PVD는 금속 박막 증착에 주로 사용되고 CVD는 반도체, 부도체, 도체 등 다양한 부문의 박막 증착에 사용된다. ALD는 CVD 종류 중 하나로 균일한 박막이 중요해진 최근 선호되는 방식이다. 반도체 공정에서는 CVD, ALD를 주로 사용한다.

▲ 증착방식 특성 비교. (자료=이베스트투자증권)
▲ 증착방식 특성 비교. (자료=이베스트투자증권)

㈜한화는 태양전지 분야에서 증착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올해 1분기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한화 기계부문은 지난 3월부터 페로브스카이트 탠덤(Perovskite Tandem)용 ALD 증착 장비 선행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오는 10월 개발 완료를 목표하고 있다.

태양전지 분야에서 쓰일 ALD 개발이 중요한 이유는 ‘반도체 증착 장비’ 사업 진출과 큰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태양전지 분야에서 증착 기술을 갖추게 되면 반도체 부문 증착 기술을 갖추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최근 반도체 증착 장비 업체들이 태양광 시장에 관심을 갖는 것도 같은 이유다. 주성엔지니어링은 국내외 태양전지 업체들과 이종접합 태양전지(HJT) 증착 장비 납품을 협의하고 있다. 교보증권은 지난 1월 주성엔지니어링 리포트에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에 적용되었던 증착 방법은 태양전지용 증착 장비를 양산함에 있어 시너지가 날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증착 장비 업체 관계자는 “어찌됐건 증착 메커니즘은 동일하기 때문에 한쪽 기술을 완벽하게 익히고 있다면 추가 진출에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화는 태양전지 분야에서도 뚜렷한 증착 장비 기술을 갖추고 있는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적 악화, 신사업으로 돌파구 모색
▲ ㈜한화 별도 실적 추이. (자료=한화 사업보고서)
▲ ㈜한화 별도 실적 추이. (자료=한화 사업보고서)

㈜한화가 반도체 증착 장비라는 새로운 사업에 관심을 갖는 건 단순히 혁신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한화 별도 기준 실적을 살펴보면 2018년 이후 매출 감소가 눈에 띈다. 줄어드는 규모도 상당하다. 2018년 5조2242억원이던 매출액은 2019년 4조4331억원, 2020년 4조7억원으로 2년 새 1조원 이상 쪼그라들었다. 영업이익도 2018년 2998억원에서 지난해 1669억원으로 44.3% 감소했다.

방산·기계부문은 상황이 조금 더 심각하다. ㈜한화 IR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방산·기계 부문 매출액 300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5.0% 급감했다. 같은 기간 수익성은 영업손실 94억원을 기록, 적자로 전환됐다.

▲ 방산·기계부문 손익계산서. (자료=한화 1분기 IR자료)
▲ 방산·기계부문 손익계산서. (자료=한화 1분기 IR자료)

악화한 실적 개선을 위해서라도 유망한 신사업이 필요하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지난해 반도체 장비 시장 규모는 711억9000만달러(약82조원)다. 다만 성장세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반도체 장비 산업 성장률은 반도체 산업 성장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올해 초와 달리 하반기 반도체 산업 전망은 불투명한 상태다. 기업과 증권가에서 예상하는 전망치가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 반도체산업과 장비산업 성장률 상관 관계. (자료=중소벤처기업부 기술국산화 전략품목 상세분석 보고서)
▲ 반도체산업과 장비산업 성장률 상관 관계. (자료=중소벤처기업부 기술국산화 전략품목 상세분석 보고서)

한국기업평가는 지난 5일 ‘코로나19 장기화, 산업별 신용도 이슈와 방향성 점검’ 웹세미나에서 “D램은 공급이 타이트한 상황에 가격 상승세도 이어지며 견조한 이익 창출력을 유지할 것이나 낸드플래시는 높은 수요 변동성에 분기 단위로 흑자, 적자 전환이 반복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만약 ㈜한화가 반도체 증착 장비 사업에 본격 진출하면 옥경석 ㈜한화 기계부문 대표의 역할이 부각될 전망이다. ㈜한화 기계부문은 태양광 관련 제조장비, 협동로봇사업 등을 하고 있다. 반도체 증착 장비도 ㈜한화 기계부문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사업 진출 여부도 기계부문에서 검토하고 있다.

옥 대표는 반도체와 익숙한 인물이다. 옥 대표는 삼성전자에 입사한 뒤 ‘반도체 사업(DS)' 부문에서 근무했다. 2004년 반도체총괄 경영지원실 지원팀장에 선임됐고 2010년 반도체 지원팀장, 2011년 DS사업총괄 경영지원실장 등을 역임했다.

한화그룹으로 자리를 옮긴 건 2016년이다. 한화케미칼 폴리실리콘사업부 사장으로 선임된 이후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 2019년 화약, 방산, 기계 3개 통합 부문을 이끌었다. 지난해 9월 인사 이후 기계부문에만 집중하고 있다. 한화그룹은 당시 옥 대표 인사를 두고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화그룹 기계부문 경쟁력 강화를 이끌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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