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69돌'을 맞은 한화그룹에게 2021년은 남다른 해다. 승계 문제, 사업전략 등 모든 부문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재계 7위 대그룹 한화그룹이 직면한 전환기적 상황은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 변화와도 연관이 깊다. 전환기를 맞은 한화그룹의 현재와 미래를 들여다 본다.

▲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이 주도해 온 태양광 사업은 오늘날 중국 기업들의 증설 러쉬라는 위기에 직면해있다.(사진=한화솔루션, 한화) 
▲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이 주도해 온 태양광 사업은 오늘날 중국 기업들의 증설 러쉬라는 위기에 직면해있다.(사진=한화솔루션, 한화) 

한화에 태양광 사업은 여느 사업보다도 의미가 크다. 그룹이 일찌감치 점찍은 미래 먹거리이기도 하지만 지배구조 차원에서 김승연 회장의 장남이자 ‘포스트 김승연’으로 불리는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의 경영 능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2010년 ㈜한화 차장 시절부터 ‘경영 수업’이란 이름으로 공개적으로 태양광 사업을 담당했다. ‘한화의 태양광=김동관’으로도 여겨진다. 

문제는 태양광 사업의 수익성이 오랫동안 ‘제자리걸음’ 중이란 점이다. 지난 십수년 간 규모를 키우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만큼 이익을 늘리진 못하는 모습이다. 이에 한화는 조 단위 인수합병(M&A)을 통해 ‘토털 에너지 솔루션 프로바이더’로 변신하는 반전을 모색하고 있다. 국가적 지원을 받는 중국의 태양광 기업들이 대규모 증설 속에서 중장기적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전략을 틀겠다는 것이다.

▲ 2011년 4월 한화솔라에너지 창립기념식. 사진 왼쪽 네 번째가 김동관 사장(당시 (주)한화 차장).(사진=한화)
▲ 2011년 4월 한화솔라에너지 창립기념식. 사진 왼쪽 네 번째가 김동관 사장(당시 (주)한화 차장).(사진=한화)
터질 듯 안 터지는 태양광 사업
한화솔루션 태양광 부문은 한화솔루션 안에서도 가장 덩치가 크다. 자산규모 12조7812억원으로 한화솔루션 연결회사 총 자산(17조2185억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4.2%에 달한다. 그룹을 상징하는 사업으로 2010년대 초반 독일 큐셀(한화큐셀)과 중국 솔라원파워홀딩스(사명 한화솔라원 변경 후 한화큐셀과 합병)를 인수하며 몸집을 불려왔다.

다만 한화가 태양광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2010년부터 태양광 부문 실적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쉽지 않다. 태양광 산업이 암흑기를 걸었던 2010년대 초반 적자를 감수한 끝에 2014년부터 꾸준히 영업이익을 거둬오고 있긴 하다. 그러나 태양광이 그룹 ‘캐시카우’가 되고 있다는 세간의 평가가 무색하게 이익률 자체는 높지 않다.

▲ (자료=한화솔루션 사업보고서 종합)
▲ (자료=한화솔루션 사업보고서 종합)

한화솔루션의 태양광 부문 영업이익률은 성장산업이라고 판단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2010년 사업 초기 영업이익률 10%를 넘어선 뒤(13.88%) 연간 영업이익률에서 5%를 넘어선 건 2016년 단 한 차례(5.43%)에 뿐이었다. 본격적으로 이익을 내기 시작한 2014년 이후 올해 상반기까지 누적 영업이익률은 2.10%에 불과하다.

2017~2018년 영업이익률 0%대로 주춤했던 한화솔루션 태양광 부문은 2019년 연결기준 매출 6조1503억원, 영업이익 2235억원으로 수익성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지난해엔 하반기 원재료 가격 상승의 여파로 매출 6조5380억원, 영업이익 1904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이 늘었음에도 영업이익은 329억원 줄어든 것이다. 이에 영업이익률도 2019년 3.63%에서 2020년 2.91%로 감소했다.

올해 들어 상황은 더 나빠졌다. 상반기 기준 매출은 지난해와 비슷한 3조2758억원을 거뒀지만 영업손실 795억원으로 역성장했다. 지난해 4분기부터 시작된 적자는 3분기 연속으로 이어졌다. 한화솔루션은 지난 2분기 케미칼부문이 역대급 설적을 거두며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냈는데, 그룹의 핵심사업인 태양광은 오히려 그 성과를 깎아 먹었다.

▲ 태양광 모듈 원재료인 폴리실리콘 가격은 2020년 하반기부터 급등해 한화솔루션 태양광 사업의 수익성을 훼손했다.(자료=메리츠증권 리포트 갈무리)
▲ 태양광 모듈 원재료인 폴리실리콘 가격은 2020년 하반기부터 급등해 한화솔루션 태양광 사업의 수익성을 훼손했다.(자료=메리츠증권 리포트 갈무리)

최근 부진한 태양광 부문 실적은 원재료 가격이 급등한 데 따른 원가 압박이 컸다. 한화솔루션의 태양광 사업은 모듈과 셀 등 미드스트림에 치중돼있는데, 원재료인 폴리실리콘과 잉곳, 웨이퍼 등의 가격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급등하며 실적에 악영향을 줬다. 공교롭게도 현재 원가 압박의 주 요인이 되는 폴리실리콘은 한화솔루션이 지난해 초 적자 누적으로 철수한 사업이다. 태양광 가치사슬에서 업스트림을 포기한 지 채 몇 달도 안 돼 원가 상승이라는 악재가 터진 것이다.

지난해 초 킬로그램 당 10달러 아래로 떨어졌던 폴리실리콘 가격은 이후 급등해 올해 상반기 30달러 선까지 치고 오르며 9년만에 현물 가격 기준 최고 수준까지 올랐다. 여기에 글로벌 폴리실리콘 생산의 절반을 담당하는 중국 신장 지역의 인권 문제로 미국 정부가 수입을 제한하며 업계엔 원재료 공급 부족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으로 증권가는 한화솔루션 태양광 부문의 손실이 적어도 올해 하반기까진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중국 기업 '증설 러쉬' 속 한화솔루션 M&A '승부수'
한화솔루션이 태양광 시장에서 충분한 지배력이 있다면 오른 원가를 제품 가격에 전가할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생산용량 기준으로 중국 업체들에 압도적으로 밀리는 탓이다. 2019년까지 한화솔루션의 태양광 모듈 생산용량은 10.7GW로 업계 3위였고 올해 15GW까지 끌어올릴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중국 업체들의 증설 경쟁 속에서 한화솔루션의 생산용량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 (출처=KERI '그린뉴딜 – 태양광산업 분석 2020년 하반기' 갈무리)
▲ (출처=KERI '그린뉴딜 – 태양광산업 분석 2020년 하반기' 갈무리)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KERI)가 지난 6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한화솔루션 계열 한화큐셀은 태양광 모듈 생산용량 기준 세계 7위에 그쳤다. 한화큐셀에 앞서는 융기실리콘(32GW)과 진코솔라(25GW), 트리나솔라(21.5GW), JA솔라(15GW), 라이젠에너지(12.6GW)를 포함해 생산용량 상위 10개 기업 중 한화큐셀과 캐나디안솔라를 제외한 상위 8개 업체 모두 중국 기업이다.

중국의 저가 모듈, 셀 공세에 가격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한화솔루션은 기술력을 앞세워 미국과 독일, 일본, 영국 등의 프리미엄 가정용·상업용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주거용, 상업용 태양광 모듈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낮은 가격을 바탕으로 저변을 넓히고 있는 중국 기업들이 기술력도 따라잡는다면 한화솔루션의 태양광 경쟁력도 상실할 수 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승계를 위한 내부 정리에 치중하던 한화그룹이 향후 5년간 한화솔루션 태양광 사업에 2조8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한 것도 이 같은 위기의 발로로 풀이된다. 지난 9일 프랑스 재생에너지 전문 개발업체 ‘RES Méditerranée SAS’ 지분 100%를 약 7억2700만 유로(약 9843억원)에 인수하기로 하기로 했는데, 이는 업계에서 '승부수'로 받아들여진다.

▲ 한화큐셀 RES프랑스 인수 효과 전망.(사진=한화솔루션)
▲ 한화큐셀 RES프랑스 인수 효과 전망.(사진=한화솔루션)

이번 인수를 통해 한화솔루션은 태양광 셀·모듈 생산과 분산형 발전 기반 에너지 사업을 아우르는 신재생 에너지 ‘토털 솔루션’ 기업으로의 전환을 꿈꾸고 있다. 글로벌 재생에너지 사업권을 15GW로 늘릴 수 있게 됨은 물론, 풍력 발전사업 역량 확보와 함께 향후 발전자산을 활용해 독립발전사업(IPP)도 추진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IPP는 민간 업체가 직접 발전소를 짓고 운영해 투자비를 회수하는 방식으로 도급 사업보다 수익성이 높다.

한화솔루션의 최근 수익성 하락이 폴리실리콘 원가 상승에 따른 단기적 악재인 만큼, 원자재 공급 부족 문제가 해소된다면 수익성은 점차 개선될 여지가 크다. 여기에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 체제에서 태양광 투자를 늘리고 제조업체 세액 공제를 법안을 추진 중으로, 법이 통과될 경우 그 수혜는 미국 주거용·상업용 태양광 모듈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한화큐셀이 입을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들어 삼성과 LG, SK가 차세대 그룹 먹거리로 이차전지를 선택한 가운데 한화그룹은 다소 전망이 모호했던 태양광으로 방향을 잡았다. 한화의 태양광 산업은 빠르게 규모를 확대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지만 오늘날 중국 기업들의 ‘증설 러쉬’라는 도전에 직면한 상태다. 그룹 내 승계 1순위인 김동관 대표가 이 같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며 태양광 리더십을 확보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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