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신기술과 서비스 등의 시장 출시 및 테스트가 가능하도록 일정 조건 하에 기존 규제를 면제하거나 유예하는 제도인 ‘ICT(정보통신기술) 규제 샌드박스’가 도입된 지 3년이 됐다. 관련 현황과, 성과, 과제 등을 짚어본다.
▲ 뉴코애드윈드의 디지털 광고 배달 박스 '디디박스'가 장착된 오토바이. (사진=뉴코애드윈드)
▲ 뉴코애드윈드의 디지털 광고 배달 박스 '디디박스'가 장착된 오토바이. (사진=뉴코애드윈드)

“지난달에 변호사를 선임했다. 내년에 공무원들 상대로 형사고소를 하고,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도 제기할 것이다.”

장민우 뉴코애드윈드 대표의 말이다. 그는 지난 2019년 5월 ICT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디지털 배달통을 활용한 오토바이 광고 서비스’ 실증특례 승인을 받고 지난해 2월부터 사업을 시작했다. 같은 해 4월엔 ICT 규제 샌드박스 주관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 관계자들이 현장에 방문해 애로사항을 청취하기도 했다. 지역 영세 음식업체의 광고효과와 지역경제 활성화 등이 기대됐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사업은 지지부진했고 결국 장 대표는 올해 7월  행정안전부(행안부) 앞에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현재도 변한 건 없다.

사업이 좌절된 배경의 중심엔 실증특례 승인 ‘조건’이 있다. 실증을 위해 허용된 오토바이 운영 대수가 기존 사업계획과 달리 수익성을 기대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는 ICT 규제 샌드박스를 신청하는 많은 업체들이 아쉬워하는 지점이다.

모빌리티 업체 같은 경우에도 신청한 차량 운영 대수가 허가를 받는 과정마다 대폭 깎이기 일쑤다. 이달 29일 ‘코액터스’, ‘레인포컴퍼니’, ‘파파모빌리티’ 등이 관련 법 개정으로 정식 허가를 받고 사업을 할 수 있게 됐는데 역시 400대를 신청한 레인포컴퍼니는 220대, 500대를 신청한 파파모빌리티는 100대를 허가받았다.

문제는 허가를 받는 과정이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후 안전 기준이라든가 제도권에 들어가기 위한 다른 조건들을 과제로 수행해 나가야 하는 업체들도 있다. 결국 긴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 셈인데, 이는 곧 사업체를 수익성이 없는 상태로 장기간 끌고가야 한다는 걸 뜻한다.

한 업체 대표는 “너무 지역을 한정한다거나, 세부 조건들이 많고 비현실적인 것도 있어 사업을 마음껏 할 수 없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체 대표도 “승인될 때는 사업 모델이 기존 사업계획서보다 굉장히 무난하게 칼질돼 나온다”고 전했다. 심지어 조건이 까다롭게 나와 기존 투자자들이 투자비를 환수해가 고통받고 있는 업체도 있다.

‘보험 가입’도 까다로운 조건 가운데 하나다. 특례를 받으면 이용자 보호를 위해 사업자는 책임보험에 가입하거나 가입이 어려운 경우 별도 배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기존에 없던 새로운 기술 및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이다보니 관련 보험이 없다. 보험사에 가서 만들어 달라고 해야 하는데, 보험사 입장에서도 꺼릴 수밖에 없다. 사업성이나 위험성 여부가 검증되지 않아서다. 이를 검증하려고 특례를 받은 건데, 모순된 상황에 처하는 것이다.

까다로운 조건 안에서 ‘역차별’ 이슈도 나온다. 현행 관광진흥법상 도시민박업은 외국인 관광객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내국인 대상 공유숙박 서비스 제공이 어렵다. 이에 지난 2019년 11월 ‘위홈’이 내·외국인 공유숙박 서비스로 실증특례를 받았는데, ‘서울 1~9호선 지하철역 반경 1km 이내에 위치한 호스트 4000명에 한정’ 등의 제한된 조건이 붙었다. 이에 1.2km를 넘어가도, 1~9호선 지하철역 반경 1km 이내에 있지만 서울을 벗어나도 규제에 걸린다. 문제는 내국인 도시민박을 불법으로 전개하고 있는 에어비앤비에는 손놓고 있다는 것이다.

▲ 지난 2019년 11월 당시 위홈이 받았던 실증특례 조건. (자료=과기정통부)
▲ 지난 2019년 11월 당시 위홈이 받았던 실증특례 조건. (자료=과기정통부)

조산구 위홈 대표는 “에어비앤비로 하면 불법이 돼 불법으로 하고 싶지 않은 호스트들이 위홈이 유일하게 특례를 받았으니 합법으로 하고 싶어 많이들 찾는다”면서 “그런데 오히려 합법으로 하려는 이들을 계속 규제 샌드박스 안에 가두고 에어비앤비는 놔두는 식으로 가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는 관련 법 개정이 지지부진한 데다, 에어비앤비에 대한 단속이 이뤄지지 않는 데 기인한다.

관련 부처나 이해관계 충돌로 진전되고 있지 않은 사례들도 많다. 1~4인석 소형 영화관 서비스를 운영하는 ‘더브이엑스’의 경우 아직 ‘ICT 규제 샌드박스 심의위원회(심의위)’에 안건이 상정되기 전인데, 현재 국무조정실(국조실)과 함께 논의 중이다. 과기정통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부처 간 이견이 있는 쟁점 과제라서다. 해당 서비스가 비디오방(청소년 출입금지), 영화관(청소년 출입가능)을 결합해놓은 모델이라 고민이 많다고 전해진다. 물론 현행법상 영화상영관은 30석 이상의 좌석을 갖추거나 바닥 면적이 60㎡ 이상이어야 한다는 규제도 있다.

도수안경 온라인 판매 서비스로 규제 샌드박스 신청을 했지만 철회한 ‘라운즈(구 딥아이)’도 있다. 국민 눈 건강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고, 안경사협회가 반발했다. 결국 지난 6월 기획재정부의 ‘한걸음모델’ 과제로 선정됐다. 한걸음모델은 신규 사업자와 기존 사업자 간 갈등이 벌어지면 정부가 중재해 상생 방안을 마련한다는 조정 방식으로 지난해 6월 시작됐다. 그런데 선정됐다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내년 초 연구용역을 발주해 안전성 등을 검증하기로 했다. 검증이 끝나면 다시 또 협의에 들어가야 한다.

이와 같은 연구용역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곳은 또 있다. 지난 2019년 3월 이동형 VR(가상현실) 체험 서비스 트럭으로 실증특례를 받은 ‘브이리스브이알’은 연구결과가 하루빨리 나와 제도가 개선되길 바라고 있다. 사실 해당 사업은 자동차관리법,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및 관광진흥법 등 관련 규제들이 많이 얽혀 있다. 이에 연구가 필요했는데,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해당 업체는 합법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게 계속해서 안전규격에 따라 차량을 개조하며 비용만 지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권종수 브이리스브이알 대표는 “법을 만드는 것이 1~2년 안에 되는 것도 아니고 규제 샌드박스 유효기간이 ‘2+2(2년 이내, 1회 연장 가능)’라 기간이 아직 남아있다”면서도 “하지만 아쉬운 점은 연구결과에 따라 법이 만들어질텐데 해당 연구에 실제 사업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과정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효기간도 사실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5월 임시허가 유효기간이 법령 정비 완료 시점까지로 연장돼, 실증특례를 통해 안전성 등이 입증됐음에도 해당 기간 내 법령 정비가 완료되지 않았다면 해당 사업을 임시허가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운영 중이기 때문이다. 특례 승인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 업체 대표는 “혁신적이냐, 의미가 있냐 보다는 결국 규제를 가지고 있는 부처의 결정이 핵심적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전했다.

이러한 지난한 과정은 규모가 작은 기업들에겐 견디기 힘든 시간이다. 한 업체 대표는 “과기정통부나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에 물어보면 ‘기간을 연장시켜 주겠다’는 불확정적인 말만 들려준다”면서 “그래도 ‘진행 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더 나아간 건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고 말했다. 다른 업체 대표는 “실증특례를 남발만 하고 사후처리는 제대로 못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 (표=블로터)
▲ (표=블로터)

이에 제도 시행 처음부터 현재까지 심의위 민간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임시허가, 실증특례 승인 여부 등을 답변 해주는 시한이 없어 길게는 2년씩 묵혀놨다가 안건에 상정되기도 한다”면서 “실증을 한다한들 안전성 검증이나 부가 조건 이수 등을 신청기업 책임으로 하고 있어 기업들 입장에서 버티기 힘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실증특례를 제한적으로 할 필요가 있고 안전성 검증 등을 기업의 책임으로만 돌리기보다 정부가 짧은 기간 내 같이 참여해서 빨리 검증하고 임시허가 가능 여부를 결정하는 식으로 제도가 임시허가 중심으로 운영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과기정통부가 기업들에게 상당기간 컨설팅을 해주고 관련 부처와 논의 후 ‘이런 조건이면 실증을 해볼 수 있겠다’라는 정도까지 의견이 모아지면 심의위에 올리기 때문에 오래 걸린다”면서 “또 관련 규제를 한 번 풀어주면 문제가 있다고 해서 다시 규제로 돌아가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 보니 규제를 완화해주고 개선하는 데 신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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