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이 이끄는 새 정부 대통령실 직제에 당초 신설이 예상됐던 ‘과학기술 수석비서관’이 빠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자, 과학기술·정보통신기술(ICT)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26일 다양한 과학기술·정보통신기술(ICT) 전문가들은 대부분 <블로터>와의 통화에서 “과학기술 수석비서관 신설이 꼭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윤 당선인이 대선 후보시절 △과학기술 인사 중용 △과학기술 중심 국가 건설 △과학적 판단 존중 정부 등을 약속한 터라 실망감을 나타내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다만 수석비서관 자리를 두고 ‘갑론을박’을 펼치기보단 윤 당선인이 대선 후보시설 공약으로 내걸었던 과학기술·ICT 비전을 실현할 방안을 고민하는 게 더 시급하단 조언도 나왔다.

▲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후보 시절 내걸었던 과학기술 공약 표지.(사진=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후보 시절 내걸었던 과학기술 공약 표지.(사진=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과학기술 수석’ 신설, 왜 뜨거운 감자됐나
대통령실은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보좌하는 참모기관이다. 대통령 직속의 보좌기관으로 정무직인 정책실장을 비롯해 △각 분야의 수석비서관 △대변인 △대통령 경호처 등으로 구성된다.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관한 사무 처리는 물론 소속 공무원을 지휘·감독하는 역할을 한다.

문재인 정부가 운영 중인 현재 대통령실은 3실(비서·정책·국가안보)·8수석(정무·민정·시민사회·인사·일자리·경제·사회·국민소통)으로 구성된다. 윤 당선인은 이를 2실(비서실장·안보실장)·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1기획관(인사)으로 축소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과학기술 분야가 배제되면서 과학기술·ICT계 안팎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는 당초 이 같은 직제와 주요 인선을 발표할 계획으로 알려졌으나 현재는 잠정 보류된 상태다. 배현진 대통령 당선인 대변인은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기자회견장에서 브리핑을 열고 “가장 유능한 정부를, 대통령실을 보여드리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라고 발표 지연의 배경을 설명했다. 26일에도 “대통령실과 관련된 여러 직제 논의는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과학기술, 경제적 접근 안 돼”
아직 차기 정부의 대통령실 직제가 공식적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윤 당선인이 그리는 대통령실 5수석 자리에 과학기술이 빠질 수 있다는 전망에 힘이 실리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는 상황이다.

이우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 회장(서울대 명예교수)은 “과학기술 분야는 (현재 논의되고 있는 대통령실 직제 구조에서) 경제수석 밑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이러면 과학기술 정책을 경제적 관점에서만 바라보게 될 수 있다”며 “미실현 성과 고려는 물론 장기적 안목을 가져가야 하는 과학기술 분야는 경제와 패러다임이 전혀 다르다. 대통령실 내 독립적인 역할을 부여받아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경제적 관점에서 과학기술 정책이 결정될 경우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견해다. 이 회장은 또 과학기술이 상대적으로 현안이 많은 경제 분야와 묶인다면 해당 정책이 뒷순위로 밀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주연 아주대학교 산업공학과 교수(한국산업융합기술협회장·과학기술정책융합연구소장) 역시 “과학기술 수석비서관 제도는 반드시 도입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만약 우리나라에 수평적인 조직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면 수석비서관 논의가 필요 없을지도 모르지만, 현실은 여전히 수직적인 구조라 과학기술 정책이 원활히 이뤄지려면 수석비서관이 꼭 필요하다”며 “과학기술 리더 역할이 없다 보니 부처별로 중복·유사 연구개발(R&D)도 상당히 많은데, 수석비서관이 생긴다면 이를 조율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이와 함께 과학기술의 한 부분인 교육 역시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새 정부가 디지털 인재 100만명 양성을 목표로 내걸었지만, 이는 기존에도 해오던 정책으로 사실 큰 실효가 없다”며 “부처·기관별로 인재 육성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중복되고 정책 집중화가 이뤄질 수 없는 본질적인 문제가 발생하는데, 대통령실 내 컨트롤타워가 마련된다면 이 같은 사안도 조율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학기술 수석비서관 신설은 ‘과학기술 전문가’로 통하는 안철수 인수위원장도 필요하다고 보는 사안이다. 안 위원장은 앞서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기자회견장에서 “23일 과학기술교육분과 보고에 위원장 자격으로 참석해 (윤 당선인에게) 과학교육수석이 필요하다는 점을 말씀드렸다”며 “다음 정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미래 먹거리를 찾고 4차 산업혁명 시기의 인재를 키우는 일이고, 이를 위한 가장 큰 상징 중 하나가 과학교육수석”이라고 말했다. 이어 “청와대 이전이나 조직은 당선인 비서실에서 하고 있어 제 권한 밖의 일이라 저는 건의를 드린 것”이라며 “그 부분을 간곡하게 말씀드렸고 ‘생각해보겠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 지난 2월8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등 30개 과학기술단체가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개최한 ‘대선후보 초청 과학기술 정책토론회’에서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였던 윤 당선인은 이 자리에서 “과학기술을 가장 중시하고 과학적 판단을 존중하는 정부가 되겠다”고 말했다.(사진=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 지난 2월8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등 30개 과학기술단체가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개최한 ‘대선후보 초청 과학기술 정책토론회’에서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였던 윤 당선인은 이 자리에서 “과학기술을 가장 중시하고 과학적 판단을 존중하는 정부가 되겠다”고 말했다.(사진=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기술 수석비서관 절실”…과학기술·ICT 단체 ‘한목소리’
과학기술 단체와 ICT단체들도 “과학기술 수석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과총을 비롯한 4개 과학기술 단체(한국과학기술한림원·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바른과학기술사회실현을위한국민연합)는 최근 ‘새 정부 국정 철학 중심에 과학기술을 세워주십시오’란 제목의 호소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당선인이 ‘과학기술을 가장 중시하고 과학적 판단을 존중하는 정부가 될 것’이라고 약속해 과학기술계는 한껏 고무돼 있다”며 “과학기술계는 대통령을 보좌해 과학기술 중심의 국정 운영과 새로운 성장동력 창출을 위해서는 ‘과학기술 관련 수석비서관’ 설치가 반드시 필요함을 호소한다”고 밝혔다. △인구절벽 △지역소멸 △기술패권경쟁 시대를 맞아 윤 당선인의 철학과 비전을 효과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에 기반한 전문성이 중심이 돼야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 수석이 필요하다는 견해다.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KOSA)를 비롯한 ICT 관련 17개 단체도 앞서 ‘디지털 혁신 디지털플랫폼정부 시대를 위한 호소문’을 발표하고 “과학기술 수석비서관 설치를 건의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인공지능(AI) 산업육성 등 첨단과학기술이 디지털혁신과 디지털플랫폼 정부로 이어져 혁신국가의 기대가 큰 상황”이라며 “이런 경제비전을 효과적이고 신속하게 이룰 수 있는 방법은 선제 대응이다. 여러 분야의 전문성과 다양성을 살리고 조율할 국가 차원의 종합적 전략을 수립·실행할 수 있는 정부조직과 함께 강력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곳에서 과학기술 수석 신설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본질’을 잊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윤지웅 경희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미래혁신정책연구원 원장)는 “과거 사례를 보더라도 과학기술·ICT 정책의 성패는 권력형 직책 설립에 달리지 않았다”며 “이제는 집중된 권력을 실효성 있게 분산하고 혁신적으로 시스템을 개편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윤 교수는 또 과학기술 수석에 관한 논의보다 대선 때 제기됐던 정책 어젠다와 당선인의 과학기술 공약을 구체화하는 방안을 고민해야한다고 봤다. 그는 “당선인이 얘기했던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과학기술 정책’을 어떻게 구체화되는지를 논의해야 한다”며 “과학기술·ICT계 현안들을 정리하고 데이터화해서 청와대 의사결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블로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