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거래는 추천 알고리즘을 짜기가 쉽지 않아요. 상품이 딱 하나라 잘 팔리거나 재고가 넉넉한 상품을 추천할 수가 없죠. 개발 난이도가 높긴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해요.” 번개장터의 기술을 총괄하고 있는 이동주 최고기술책임자(CTO)의 말이다.
번개장터는 2011년 만들어진 국내 최초의 ‘모바일 중고거래’ 서비스다. 회원수는 1000만명 이상, 월이용자수(MAU)는 340만명에 달하고 사용자 절반 이상이 1020세대다. 작년 연간거래액은 1조3000억원을 기록해 업계 2위를 차지했다. 취향 기반의 거래를 지향하고, 채팅·안심결제 기능을 통한 ‘비대면 거래’를 권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기술이 있어야 가능한 일들이다. 지난 2일 서울 서초구 본사에서 번개장터의 추천·검색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있는 이동주 CTO, 연종흠 번개장터 데이터팀 팀장, 김현준 데이터팀 시니어 데이터 사이언티스트(Senior Data Scientist)를 만났다.
개인끼리 사고파는 중고거래는 재고가 따로 없다. 거래하는 물건도, 주기도 일정하지 않다. 판매자들이 입력하는 상품정보도 가지각색이다. 추천 알고리즘도 일반적인 온라인 쇼핑몰의 문법과는 다르다. 남들이 많이 사는 물건을 획일적으로 추천할 수도 없고, 장터에 올라온 중고품은 ‘팔릴 만한’ 선에서만 보여줘야 한다. 지나치게 노출되면 구매자들의 사용자경험(UX)을 해칠 수 있어서다. 대개 사용자들의 행태정보를 분석하면 상품·사용자의 연관성을 알 수 있지만, 중고거래에선 이조차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규모도 컸다. 사용자 대비 상품수가 많고 다양해 방대한 로그 데이터를 다뤄야 했다.
대신 번개장터는 사용자들의 취향에 주목했다. 성별·연령대부터 클릭한 상품, 검색기록, 찜·팔로잉, 구매내역 등 사용자가 남긴 각종 데이터를 모아 카테고리·브랜드로 관심사를 분류하고, 비슷한 취향의 사용자끼리 묶었다. 연결고리가 있는 그룹은 다시 엮어 상품 추천에 활용했다. 예를 들어 특정 가수의 팬으로 분류된 사용자가 번개장터에 접속하면 해당 가수의 앨범을 먼저 띄워주는 게 이 회사의 지향점이다.
연종흠 팀장은 “일반적인 이커머스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상품을 추천하고 반응이 오면 반영해 데이터를 쌓아 추천을 고도화하지만, 중고거래는 통계값을 모으다 보면 상품이 팔리기 일쑤”라며 “중고거래 특성상 사용자들이 휘발성 아이템을 찾는 경우가 많아, 유의미한 정보만 추리고자 변동이 적은 카테고리·브랜드를 택했다”고 말했다. 이어 “팔로잉하는 상점이 있을수록 취향을 분석하기 좋고, 없다면 나이대·성별 등으로 분류할 수밖에 없다”며 “트렌드에 맞춰 상품을 추천할 때도 있지만 지향점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용자의 취향을 깊이 있게 파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데이터팀은 인공지능(AI) 모니터링 시스템으로 맞대응하고 있다. 대화의 맥락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사기거래를 유도하는 대화로 판단되면 알림 메시지를 보낸다. 판매글의 특정 패턴을 분석해 부적절한 상품은 감지·차단한다. ‘카드깡’까지도 골라낸다. 이동주 CTO는 “상품정보에 별 다른 게 기입되지 않았는데도 거래가 곧바로 일어나면 의심 대상”이라고 귀띔했다. 앞서 번개장터는 보안전문기업인 에스투더블유랩(S2W LAB)과 협력해 외부경로로 유출된 개인정보를 이용한 가입을 차단하는 기술도 도입한 바 있다.
이 같은 노력을 인정 받아 번개장터는 국내 중고거래 업계 최초로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서 부여하는 정보보호관리체계(Information Security Management System, 이하 ISMS) 인증을 획득했다. ISMS 인증은 국내 최고 권위의 정보보호인증이다. 개발부터 운영 보안, 침해사고 관리를 비롯한 전반적인 정보보호역량이 안정성을 갖췄다는 의미다.
올해의 목표는 사용자들의 의도를 파악해 인터랙션(Interaction)을 개선하는 것. 데이터팀의 고민을 함께 나눌 동료도 구하고 있다. 김현준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는 “일반 커머스와는 다른, 중고장터에서만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들이 있다. 흔히 생각하는 기존의 오픈소스를 단순 적용할 수 없는 일이 많기 때문에 같이 (문제를) 풀어볼 수 있는 사람들이 번개장터의 문을 두드려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