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실질 판단과 법적규제 기준 ‘부조화’
형식적 자본증가로 사업확대, 리스크 ‘우려’
증권사 대형화 업무확장 책임도 강화해야

대신증권은 최근 30년 만기 상환전환우선주(RCPS, Redeemable Convertible Preferred Stock) 437만2618주를 발행해 2300억원의 자기자본 확충 사실을 공시했다. 우선배당율은 상환권행사 도래기간(2년, 2년6개월, 5년)에 따라 각각 연 6.7% 6.75% 7.3%이며 상환권행사 도래기간 이후 매년 1.5%포인트씩 가산된다. 그동안 3조원 이상 자기자본 확보를 위해 다각적으로 추진해온 대신증권의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보게 됐다. 시장에서는 최근 추진중인 명동 본사 건물 매각도 자기자본 확충의 일환이라는 언론 보도가 있었고, 대신증권은 매각 추진은 사실이지만 구체적으로 확정된 바 없다는 공시를 했다.

증권사가 예기치 못한 손실(unexpected loss)로 파산할 것에 대비해 요구하는 자본규제가 ‘순자본비율(NCR, Net Capital Ratio)'이다. 상환할 부채보다 매각손 위험을 감안한 현금화 가능 자산을 더 많이 보유하라는 유동성위험 관리지표로, NCR이 150% 이하인 경우 시정조치, 100% 미만일 때는 경영개입 대상이 된다. 자기자본 규모가 크고 위험가중치가 낮은 자산을 중심으로 보수적 영업을 하는 증권사일수록 NCR이 높게 나타난다. 2023년 9월말(연결기준, 금융통계정보시스템) 국내 10대 대형증권사의 NCR 평균은 1478%로 비교적 안정적이지만 대신증권은 313%로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또 증권사는 자기자본이 커질수록 할 수 있는 사업범위가 확대되고 수익창출 기회도 늘어난다. 자기자본 3조원 이상이면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 4조원 넘으면 ‘초대형투자은행(IB) 사업자’, 8조원 이상이면 ‘종합투자계좌(IMA, Investment Management Account)’ 사업을 할 수 있다. 결국 자기자본 규모가 증권사의 핵심 경쟁력인 셈이다.

2023년 12월말 영업보고서 기준으로 대신증권 자기자본 규모는 2조 8531억원이다. 이번에 확충된 2300억원을 합치면 별도기준으로 자기자본이 3조원을 초과하게 된다. 증권사가 자기자본 3조원 이상이면 ‘종투사’ 사업 자격을 신청할 수 있다. ‘종투사’ 자격을 얻으면 자기자본의 200%까지 기업신용공여한도가 확대되고 헤지펀드에 자금공급이나 컨설팅 서비스(PBS, Prime Brokerage Service)도 가능해져 수익 창출여력이 강화된다. 물론 사업영역이 확장되는 데 비례해 리스크 부담도 커진다.

대신증권은 ‘종투사’ 자격을 획득하기 위해 상당히 치밀하게 자본확충을 추진해 왔다. 특히 재무제표를 적용하는 규제 대상이 연결기준과 별도기준으로 서로 다른 현행 상법 체계상의 규제 틈새를 잘 활용했다는 평가다. 2023년 10월 대신증권은 5개 계열사로부터 배당을 받아 단기간에 자기자본 4801억원을 미리 늘려 놓았다. 100% 자회사들이라 배당소득세 등 다른 규제 걸림돌이 없기 때문에 누수 없이 전액 대신증권의 이익 증대와 자본 확충에 활용할 수 있었다.

동시에 대신증권은 배당금 일부(495억원)를 남기고 4306억원을 다시 배당 받은 계열사에 그대로 출자해 되돌려줬다. 이 자본거래 영향으로 대신증권은 별도기준 자기자본이 2023년 9월말 2조1700억원에서 2023년 12월말 2조8531억원로 크게 증가했다. 이번 RCPS 발행 자금을 추가해 자기자본이 3조원을 넘어서며 ‘종투사’ 자격 신청이 가능해진 것이다. 계열사간 자본거래를 통해 그룹차원에서 경제적 실질 변화는 거의 없지만 장부상 자기자자본이 확충되어 추진할 수 있는 업무영역을 크게 늘릴 수 있게 됐다.

규제 회피를 위한 이러한 자본거래는 대신증권 뿐 아니라 한국투자증권이 2022년 12월에 먼저 진행한 바 있다. 모기업 한국금융지주와 계열사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이 보유한 카카오뱅크 지분(27.2%)의 ‘계열사간 내부거래’ 과정에서 발생한 매각차익을 재원으로 한국투자증권은 단기간에 자본을 늘릴 수 있었다. 100% 자회사에게 주어지는 연결납세제도를 활용해 세금 이슈 없이 자회사 배당(1조 7000억원)과 모기업 출자(3000억원)를 받았다. 그 결과 자기자본 8조원 이상 증권사에게 주어지는 ‘IMA 사업자’ 신청 자격을 얻을 수 있게 됐다. 한국투자증권은 연내 IMA 사업 자격 취득을 추진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한국투자증권이 단기간에 자본확충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룹내 이미 보유중인 자산을 ‘세무 회계적’ 수단을 활용해 자본화(capitalization)한 결과다. ‘IMA 사업자’가 되면 은행처럼 원금보장상품을 팔 수 있고 고객예탁금으로 기업대출 회사채 등 다양한 투자활동이 가능하다. 또 자기자본 한도 제한 없이 발행어음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운용할 수 있어 사업 다변화와 수익창출 여력이 커진다. 역시 넓어진 사업영역 만큼 감당해야 할 리스크 부담도 무거워진다. 이와 관련 나이스신용평가는 지난해 말 한국투자증권의 신용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 판단하며 위험자산 변동추이 등 모니터링 계획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증권사 업무영역 허가시 적용되는 규제 자기자본은 ‘별도기준’으로 작성된 재무제표상의 자본을 사용한다. 현행 법령상 경제적 실질을 나타내는 주재무제표는 ‘연결기준’이지만 개별 계열사의 업무영역 허가 등 대부분의 중요한 경영규제는 상법상 별도기준 재무제표를 사용하도록 돼 있다. 연결기준으로 서로 상쇄되어 리스크 버퍼(risk buffer)인 그룹의 실질 자기자본은 큰 변동이 없는데 개별 증권사의 사업영역 확대로 리스크 부담이 증가될 여지만 커진다는 지적이다. 경제적 실질 판단과 법적 사업규제 기준이 달라 발생하는 일종의 법체계상의 구멍(loophole)이다. 하지만 우리 상법 체계가 경제적 실질을 반영해 전반적으로 당장 개정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신용평가사들은 회사를 평가할 때 기본적으로 경제적 실질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나이스신용평가는 대신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이 자본거래로 단기에 자기자본이 크게 증가했지만 두 회사의 신용도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시각이다. 유상증자나 현금성 이익 증가가 아닌 계열사간 내부거래로 증가된 자본은 상대적으로 질적 수준이 낮다고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기자본의 질과 경제적 실질이 크게 바뀐 것이 없다는 평가다. 실질적인 자본확충이 크지 않는 상태에서 업무확장으로 위험투자와 차입부채가 증가하면 오히려 재무안정성이 저하되기 쉽다는 우려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고 지적한 신용평가 전문가(나이스신용평가 이혁준 본부장, 2024.3.5)의 조언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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