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03월 27일 10시 40분 넘버스에 발행된 기사입니다.

 

자본시장 사건파일

(사진=박선우 기자. 게티이미지뱅크·MG새마을금고 홈페이지)
(사진=박선우 기자. 게티이미지뱅크·MG새마을금고 홈페이지)

억대 금품수수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박차훈 전 새마을금고중앙회 회장의 항소심 첫 재판 일정이 잡혔다. 서울고등법원 제6-1형사부는 오는 5월 22일 박 전 회장에 대한 항소심 첫 공판을 진행할 예정이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지난달 14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수재 등) 혐의를 받는 박 전 회장에게 징역 6년과 벌금 2억원을 선고했다. 1억 2200만원 추징도 명령했다. 이날 박 전 회장은 법정구속됐다.

다만 재판부는 박 전 회장에게 제기된 일부 혐의는 무죄로 봤다. 유·무죄로 나뉜 박 전 회장의 혐의는 무엇이었을까. 항소심을 앞두고 1심 재판을 되짚어봤다. 

 

박 전 회장 "아들 세금 많이 나와"...중앙회서 출자 받은 A씨, 1억 마련 

1심에서 유죄로 인정된 혐의는 두 가지다. 먼저, 박차훈 전 새마을금고중앙회(이하 중앙회) 회장이 자산운용사 대표 A씨에게 현금 1억원을 수수한 혐의다. 박 전 회장과 A씨는 B씨(전 새마을금고중앙회 신용공제대표이사) 소개로 알게 된 사이다.

(사진=이 사건 판결문 일부)
(사진=이 사건 판결문 일부)

재판부가 인정한 A·B씨의 진술에 따르면, 지난 2022년 여름 박 전 회장은 B씨에게 "아들 세금이 많이 나왔기 때문에 세금 문제에 대해 A씨에게 1억원 정도를 한 번 얘기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을 꺼냈다.

이후 B씨로부터 박 전 회장의 얘기를 전달받은 A씨는 돈을 마련했다. 당시 박 전 회장의 요구에 응한 이유에 대해 A씨는 "내가 자산운용사를 운영하고 있고 새마을금고중앙회에서 출자를 받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 상황에서 B씨나 박 전 회장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진술했다.

지난 2022년 8월 31일, 박 전 회장은 사택에서 B씨를 통해 A씨가 보낸 쇼핑백을 건네받았다. 쇼핑백 안에는 5만원권 지폐를 100장씩 넣은 봉투 20개가 들어 있었다.

 

'현금 쇼핑백' 전달 등 관련 진술     

지난해 7월 A·B씨는 검찰에 위 내용이 담긴 자수서를 제출했다. 박 전 회장은 A·B씨가 수사상 이익을 받기 위해 거짓 자수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당시 A·B씨가 별도의 배임 등의 피의사실로 수사를 받고 있었던 점 △A·B씨의 자수가 해당 피의사실로 인한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된 직후 이뤄진 점 △자수 이후 검찰이 A·B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재청구하지 않은 점 등 박 전 회장 주장에 일부 부합하는 듯한 사정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이 B씨를 통해 A씨에게 현금 1억원을 수수했다고 봤다.

우선 재판부는 A·B씨가 수사상 이익을 받기 위해 굳이 자신들의 형사책임을 가중시키는 이번 범죄 사실을 새롭게 자수할 만한 이유가 있을지 의문이 들며, 이들은 법정에 출석해서도 자수와 같은 취지의 진술을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A씨 회사 직원이 그의 지시로 B씨 측에 쇼핑백을 전달한 사실이 있다고 했고, A씨 지인이 A씨의 부탁으로 현금 5000만원을 줬다고 진술하는 등의 증거들도 있었다. 

 

박 전 회장 "말할 가치 없어 부인"...재판부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

(사진=이 사건 판결문 일부)
(사진=이 사건 판결문 일부)

현금 1억원을 수수한 경위에 대한 박 전 회장의 주장도 설득력이 낮았다. 박 전 회장은 검찰 1회 조사에서 '2022년 8월 31일 서울 사택에서 B씨로부터 1억원이 들어있는 쇼핑백을 받은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그러더니 이어진 검찰 2회 조사 등에서 박 전 회장은 B씨에게 1억원을 받은 사실은 인정한다며 말을 바꿨다. 다만 박 전 회장은 자신과 부동산 거래를 한 인물로부터 B씨가 관련 대금을 받아온 것으로 생각했다고 했다. 박 전 회장이 '너무 낮은 가격으로 부동산 거래를 했다'고 불평했더니, B씨가 '거래 상대방에게 이야기해 1억원 정도라도 받아드리겠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앞서 위 사실을 부인한 이유에 대해 박 전 회장은 '내가 B씨에게 A씨를 통해 현금 1억원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하고 그들로부터 1억원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너무 황당하고 기가 차서 말할 가치도 느끼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사진=이 사건 판결문 일부)
(사진=이 사건 판결문 일부)

하지만 재판부는 "만약 박 전 회장이 B씨를 통해 (거래 상대방에게) 토지 및 건물 매매계약과 관련하여 현금 1억원을 정당하게 받은 것이라면, 이를 얘기해 곧바로 검사의 추궁 등에 반박할 수 있었다"며 "대답할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사실과 다른 내용을 진술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으로 보인다"고 했다.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이 진술을 번복한 배경에 B씨의 '녹음파일'이 있다고 판단했다. 해당 파일은 B씨가 박 전 회장과 전화 통화를 하며 녹음한 것으로 당시 B씨는 '현금 준 거', '제가 드렸던 것'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사진=이 사건 판결문 일부)
(사진=이 사건 판결문 일부)

재판부는 "(조사 도중 파일을 알게 된 박 전 회장은) 이 사건 녹음파일의 존재로 인해 B씨로부터 현금 1억원을 받은 사실 자체는 부인하기 어려워 보이고, 다만 녹음파일의 내용에 의하더라도 B씨가 현금 1억원을 'A씨로부터 받아온 것'을 특정하지 않은 점에 착안해 1억원은 토지 및 건물 매매계약 상대방이었던 인물로부터 계약과 관련해 받은 것이라는 변소를 내세우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변호사비 2200만원 대납받은 혐의...'직무 관련성' 인정해 유죄

박 전 회장이 중앙회 상근이사 세 명에게 변호사비 2200만원을 대납받은 혐의 역시 유죄로 인정됐다.

박 전 회장은 제17대 중앙회 회장 선거에 당선되기 위해 금품을 제공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는데, 당시 항소심 변호인을 추가 선임하기 위한 착수금 2200만원을 상근이사들에게 대납하게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상근이사들은 각각 700만원, 800만원씩 모아 2200만원을 마련했다.

이들은 "변호사비 대납은 재판으로 고생하고 많은 비용을 지출한 박 전 회장에 대한 인간적인 걱정 등 사적인 동기에서 이뤄진 것일 뿐, 직무에 관해 수수된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직무 관련성을 인정했다.

또한 재판부는 "변호사 선임비용이 2200만원으로 적지 않고, 이들이 중앙회 회장 및 상근이사로서 직무상 인연을 맺기 전부터 오랜 기간 사적인 친분을 맺어온 관계로 보이지 않는다"며 "(위 상근이사 중 한 명은) 이 법정에서 검사로부터 '사회적 부조 차원에서 다른 사람의 변호사 비용 700만원을 대신 내준 적이 있냐'는 질문을 받자 '그런 적은 없다'고 대답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변호사 선임비용 대납이 사교적 의례로서 허용되는 범위에 있다고 보기 어렵고 사회일반으로부터 중앙회 회장의 직무집행의 공정성을 의심받게 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된다"고 판시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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