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코 최대 경쟁자가 반도체 업체인 이유

발행일 2010-06-28 15:48:08
전세계 네트워크 장비 업체인 시스코의 최대 경쟁자는 누구일까요? 중국의 화웨이? 프랑스의 알카텔-루슨트? 아니면 쓰리콤을 인수한 HP? 아니면 주니퍼?

모두가 맞는 말입니다. 저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죠. 그런데 업계의 한 전문가는 "그런 시각은 아주 단편적인 것"이라고 지적하고 "시스코의 최대 경쟁자는 브로드컴 같은 반도체 업체"라고 서슴없이 이야기하더군요. 엥? 이게 무슨 말인가요? 시스코의 경쟁자가 브로드컴이라니요?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IT 분야의 흐름을 조금 파악해야 됩니다. IT분야, 특히 이더넷 진영은 항상 '표준'을 이야기합니다. 표준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각 기업들은 자신들만의 기술들을 넣어 시장에서 경쟁합니다. 시장에서 1등이 된 업체가 지원하는 프로토콜이나 기술은 업계에서 '사실상 표준'이 됩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표준을 원합니다.

대화를 하려고 해도 서로 자국말로만 해가지고는 의사소통이 안되듯이 네트워크 장비들도  '프로토콜'을 맞춰야 된다는 것이죠. 이렇게 표준을 지원하는 장비들이 등장하면 장비 가격이 빠른 시간 내에 뚝 떨어집니다. 이것은 표준을 따르는 기업들이 많이 생기면서 제품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진 결과죠.

IBM 호환 PC들이 쏟아져서 업계 표준만 준수해도 PC와 노트북 사업에 뛰어들 수 있게 된 것이죠. 후발주자들에게는 이런 표준이 엄청난 시장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오죽하면 IBM이 델과 HP 같은 후발주자에 PC 시장을 내주고 끝내 중국의 레노버에 관련 사업부를 매각했을 정도입니다. 표준을 지지하는 것은 양날의 칼이 됩니다. 기회도 되지만 시장 방어에도 그만큼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PC 분야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양한 기기들에 반도체가 들어가죠. 문제는 이런 표준화된 칩을 쓰게 되면 1위 사업자의 영향력은 급속도로 떨어지고 그 칩을 가져다가 제품을 생산하는 수많은 기업 중 하나로 전락합니다. 그 안에서 치열한 마케팅 전쟁을 하는 것이죠. 반도체 업체들은 자신들의 제품을 더 많은 해당 업종의 기업들이 사용하게 하려고 합니다. 많은 기업들이 사용하면 그만큼 새로운 반도체 개발에도 위협을 회피할 수 있고, 싸게 더 많은 업체들에게 공급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장도 장악할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 시장 선도 업체들은 최대한 이런 표준화된 칩을 사용하면서 동시에 별도의 칩을 내장해 자신들만의 기능들을 계속해서 구현하려고 합니다. 자신만의 기능이 제공돼야 고객들이 비싼 장비라도 지갑을 열게 되는 것이죠. 경쟁사가 제공하지 못하는 기능들을 칩을 통해 제공하면 고객들도 안 살 수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누가 시장의 변화와 고객의 요구에 제대로 대응하느냐의 싸움이 벌어집니다. 또 누가 더 많은 시장을 가지고 있는 지에 따라 투자 회수의 문제도 발생합니다. 반도체 개발에 독자적으로 뛰어들었다가 수익이 안나면 아무리 제품이 좋아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없는 이유죠.

시스코의 경쟁사인 주니퍼의 경우 항상 독자적으로 개발된 ASIC를 강조했습니다. 반복적으로 처리되는 것들은 ASIC에서 수용하면서 속도를 빠르게 한 것이죠. 성능 면에서 주니퍼가 시스코를 턱밑까지 추격하거나 혹은 앞서면서 시스코도 최근엔 최고 사양의 라우터와 스위치에 자신들이 개발한 ASIC를 탑재했습니다.

시스코는 이런 상황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자사의 주된 수익원은 최대한 보호하면서 역으로 시스코는 인텔의 제온 프로세서 시리즈를 선택해  서버 서장에도 진출합니다. 이제 더 이상 서버 제품이 IBM과 HP의 전유물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네트워크 분야에서 시스코의 독자 행보가 언제까지 이어질 지 지켜보는 것도 IT 분야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면에서 최근 애플이나 구글의 행보는 참 재밌습니다. 다양한 기기들을 만들어 내거나 운영체제를 만들어 내면서 ARM 기술을 가져다가 자신의 장비에 맞는 반도체를 설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도 PC나 노트북 시장에서 인텔과 직접 경쟁하기보다는 시장 기회가 많은 모바일 분야에서 ARM 기반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생산해 내고 있고, 이 분야에서 선두 그룹에 올라서 있습니다.

반도체 기술은 폐쇄된 시장을 표준화 시키는 힘도 있지만 표준화된 시장에서 자신만의 제품 경쟁력을 가져갈 수 있는 핵심 기술이 되고 있습니다. 반도체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저로서도 최근의 업체간 경쟁을 보면 반도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IBM이 PC 분야에서는 인텔에 권력을 넘겨줬지만 유닉스와 메인프레임용 칩 개발을 이어가고 있는 것도 자신만의 경쟁력을 쉽사리 넘겨주지 않겠다는 것이죠.

반도체 공부 열심히 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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