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에 휴대전화 업계를 뒤흔드는 뉴스가 전해졌다. 구글이 모토토라 모빌리티 홀딩스(이하 모토로라)를 125억 달러에 인수합병(M&A)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번 인수합병은 구글 역사상 가장 큰 규모로, 구글이 보유한 현금 자산의 약 1/3 가량을 쏟아부었다. 한 주당 인수 가격은 40달러로, 현재 모토로라 모빌리티 주가에 무려 63%의 프리미엄을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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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torola with google


래리 페이지(Larry Page) 구글 CEO는 이날 공식 블로그를 통해 "모토로라 인수는 구글의 특허 경쟁력을 강화하고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와 애플 등 경쟁업체로부터 안드로이드를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강조하며, "이번 인수 이수에도 오픈 플랫폼으로서 안드로이드의 위치는 변함이 없을 것이며 모토로라는 독립적인 사업으로 운영할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구글이 모토로라 인수를 계기로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하드웨어를 효율적으로 결합하고, 본격적으로 단말기 사업에 진출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기존 파트너였던 삼성전자와 HTC, LG전자 등과 경쟁사가 되면서 안드로이드를 둘러싼 파트너십에 균열을 가져올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과연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는 안드로이드 진영과 관련 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단기적인 영향과 장기적인 가능성으로 나눠 정리해봤다.

단기적 영향

일각의 우려와 같이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가 삼성전자 등 안드로이드폰 제조업체와 구글의 관계에 급격히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는 최근의 특허 전쟁에 대비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구글이 본격적으로 단말기 시장에 진출하려는 구체적인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구글이 처음부터 45억 달러에 최종 낙찰된 노텔 특허권과 구글 사상 최대의 인수합병 비용을 지불한 모토로라 인수를 동시에 추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구글이 지난 7월 노텔의 특허권을  애플과 MS, RIM 등이 손을 합친 일명 '反구글 연합군'에 빼앗긴 이후, 특허권 방어를 위해 모토로라 인수를 급히 추진했다고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

구글은 최근 안드로이드와 관련해 애플과 MS, 오라클의 특허 공세에 시달리고 있는 입장이다. 노텔이 보유한 특허권은 구글이 모바일 업계의 지적재산권 협상 테이블에서 입지를 한층 강화할 수 있는 최적의 기회로 여겨졌지만, 반구글 연합에 빼앗기며 기회를 놓치게 됐다.

이러한 현 상황에서 구글은 IBM과 협상해 IBM이 가진 특허권 일부를 사용할 수 있도록 지갑을 열었다. 문제는 이것만으로는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의 특허 공세를 막을 수 없다는 것. 이에 구글은 기존 안드로이드 하드웨어 파트너들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음에도 모토로라를 인수하는 초 강력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 이유는 안드로이드 플랫폼을 특허 공세에서 지켜내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하드웨어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공격적인 인수가 아니라 지극히 방어적인 인수합병이었다는 것이다.

모토로라는 세계 최초로 휴대전화를 개발했던 기업으로, 1만7천여 개의 특허와 출원을 대기하고 있는 7500개의 특허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지난달 구글이 애플, MS의 연합군에 빼앗긴 노텔의 6천여 건의 지적재산권을 훨씬 상회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모토로라가 올 1월 모토로라 모빌리티와 모토로라 솔루션즈로 분사한 것을 두고 구글과의 인수합병을 일찌감치 준비해 온 것이 아니냐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구글이 본격적으로 휴대전화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모토로라 인수를 진작부터 추진해왔다는 얘기다.

그러나 모토로라의 분사는 실제 분사를 1년여 앞둔 2010년 2월에 결정된 사항이다. 이 당시부터 모토토라 모빌리티와 구글이 인수합병을 염두에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또 이번 딜을 성사시킨 장본인은 기업 사냥꾼 '칼 아이칸'이다. 그는 2010년 10월 모토로라의 지분을 10% 확보한 뒤 이번 딜에 성공했다. 모토로라가 휘청거리고 있을 때 지분을 획득한 이후 이사회를 통해 꾸준히 구매자를 찾아 나서도록 독려했을 수 있다.

특히 구글은 모토로라의 소프트웨어 인력들만 인수하고 싶어했겠지만 기업 사냥꾼 입장에서는 그렇게 되면 모토로라의 제조 부문을 인수할 적임자를 찾기가 힘들다. 오라클에 인수된 썬마이크로시스템즈가 IBM과 사전 매각 협상을 진행하면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부문을 모두 인수해 달라고 조건을 건 것과 형태면으로 보면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는 동일한 방식이다.

그밖에 산자이 자(Sanjay Jha) 모토로라 모빌리티 CEO가 얼마 전 "MS가 노키아와 같은 조건을 내건다면 윈도우폰7 개발을 고려할 수 있다"고 발언한 것이나, 구글이 안드로이드 4.0(코드명 아이스크림 샌드위치)의 레퍼런스 모델을 삼성전자와 함께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번 모토로라 인수가 일찌감치 계획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뒷받침한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구글이 단기간에 하드웨어 사업 분야에서 모토로라를 인수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모토로라 모빌리티를 독립된 사업부로 남겨둔 채, 최근 안드로이드를 둘러싼 특허 분쟁에서 모토로라 모빌리티의 지적재산권을 통해 안드로이드의 특허와 법률 비용을 낮추고, 전방위적인 크로스 라이선싱을 시도하는 정도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점은 구글 이외에 안드로이드폰 제조업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구글과 안드로이드폰 제조업체의 바람처럼 안드로이드가 변함없이 오픈 플랫폼으로 무료로 제공되기 위해서는 특허권 방어가 필수적이다.

이번 인수가 발표된 직후 삼성전자와 소니에릭슨, HTC, LG전자 등 안드로이드폰 제조업체들이 잇달아 환영한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미루어볼 때, 구글이 모토로라 인수를 앞두고 사전에 하드웨어 파트너사들에게 취지를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을 가능성이 높다.

장기적 영향

그러나 장기적으로 봤을 때 구글이 단말기 생산 능력을 확보했다는 것은 분명 다른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독자적인 사업부로 운영될 모토로라 모빌리티의 입장에서는 모회사 구글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할 것이다. 모토로라 모빌리티는 지난 2009년 드로이드 모델의 대성공으로 안드로이드의 대중화 시대를 처음 열었지만, 이후 삼성전자, HTC 등의 약진으로 다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구글의 중립적인 정책과 관계없이 향후 출시될 모토로라의 안드로이드폰은 구글의 후광을 등에 업고 소비자들의 신뢰를 더욱 얻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모토로라와 구글의 관계가 시너지 효과를 내면 낼수록 장기적으로는 다른 안드로이드 제조업체와의 파트너십 조금씩 균열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만약 구글이 안드로이드의 오픈 플랫폼 정책을 유지하고 변함없이 무료로 제공한다고 할 지라도, 삼성전자, HTC 등 기존 파트너의 입장에서는 '플랜B'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애플 iOS와 안드로이드 이외에 대안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는 업체들과 단말기 제조업체의 합종연횡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있다. 일찌감치 노키아와 손을 잡은 MS 윈도우폰을 비롯해, HP의 웹OS, RIM의 블랙베리 OS와 QNX 기반의 블랙베리 태블릿 OS 등이 그 후보군이다.

또한 삼성전자의 바다 플랫폼의 경우 기대 이하의 실적에도 불구하고 '플랜B'로서의 가치로 인해 생명이 연장될 것으로 보인다.

단말기 업체들에 대한 장악력도 이번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로 얻을 수 있는 혜택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안드로이드 생태계에 참여하고 있는 개발자들에게도 상당히 유리한 호재로 보인다.

안드로이드가 시장 점유율 면에서 50%에 육박하고 있지만 제조 회사들마다 안드로이드를 커스터마이징하면서 개발자들은 이를 지원하기 위해 iOS 개발자에 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했다. 구글은 이런 파편화를 막기 위해 넥서스 시리즈를 제조 업체들과 개발했지만 여전히 안드로이드 제조 업체들은 서로 다른 하드웨어 스펙과 서로 다른 소프트웨어 커스터마이징을 하고 있다. 문제가 쉽사리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

이에 비해 애플은 혼자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결합시켜 확실한 시장 장악력을 보유하고 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마이크로소프트 또한 윈도우 폰 7 운영체제를 제공하면서 하드웨어 스펙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업그레이드도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처럼 직접하겠다고 나섰다. 이 두 진영과 비교해 구글은 하드웨어 업체 장악력이 떨어진다. 이번 인수로 인해 구글은 기존 안드로이드 하드웨어 파트너들에게 이런 자사의 전략에 동참해 달라는 메시지를 보냈을 여지가 크다. 이제 함께 하지 않으면 애플의 독주는 물론 마이크로소프트 반격에도 적절히 대응할 수 없을 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보냈을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노키아에 올인하고 있다는 건 삼성전자나 HTC에게는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니다.

개발자들 입장에서도 이번 인수를 통한 구글의 안드로이드 생태계 장악력이 커지는 것을 싫어할 이유가 없다.

한편, 기존 파트너들과의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휴대전화 사업 외에 모토로라 모빌리티가 보유하고 있는 타 사업군과 구글의 협력은 보다 수월하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모토로라 모빌리티는 모토로라 솔루션즈와의 분사 당시 휴대폰과 태블릿 사업 이외에도 광대역 케이블 모뎀과 셋톱박스를 중심으로 하는 디지털 홈 부문을 가지고 나왔다. 이러한 사업군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구글 TV와 구글이 새롭게 추진하는 '안드로이드@홈' 사업과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통신사들의 입장에서는 특허 분쟁 등 안드로이드 플랫폼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다소 해소되고, 앞으로도 안드로이드폰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공급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긍정적인 영향을 기대할 수 있겠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각종 서비스를 보유한 구글과 스마트폰의 결합이 가속화될수록 통신사의 단순통로(덤 파이프: Dumb Pipe)화가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는 면에서 고민도 깊어질 것이다.

애플의 경우 이미 언락버전을 선보이면서 통신사가 주도했던 유통 부문까지 허물겠다고 밝혔다. 장기적으로는 구글이 모토로라를 통해 업계 표준폰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이런 시도를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어쩌면 이번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로 가장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야 될 곳은 전세계 이동통신사들이 될 지 모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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