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에서 홍반장은 관심분야가 참 다양했다. IT 마을에도 홍반장과 비슷한 인물이 있다.

이 인물은 소셜웹이 미치는 곳이라면 모르는 일이 없는 듯하다. IT 동네 주민이 가려운 곳이 있다고 하면 긁어주고, 궁금한 게 있다고 하면 선뜻 자기 지식을 나눠준다. 코업의 양석원 이장이다. 여기에서 이장은 직책이 아니다. 필명인데 양석원이라는 이름 대신 흔히들 ‘코업 이장’이라고 부른다.

코업 이장
▲ 코업 이장

코업 이장 양석원 @ejang


양석원 씨는 2010년 3월2일 코업의 문을 열었다. 코업의 창시자이자 운영자인 셈이다. 코업은 ‘CO-UP: 여럿이 함께’라는 공간의 줄임말이다. 개인이나 작은 기업이 사무 공간을 공유하고 함께 일하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설명은 간단한데 코업이 품는 의미는 복잡해 보인다. 양석원 이장의 활동 때문이다.

그와 인연을 맺는 사람들은 IT 기자와 IT 신생 벤처기업, 모바일 광고 회사, 인터넷 콘텐츠 제작 업체, 모바일 커머스 업체, 비영리기구, 벤처캐피탈, 창업 인큐베이터, 공유경제 서비스 등 다양한 곳에 퍼져 있다.

‘코업 이장’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분야도 다양하다. 팟캐스트 출현,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선발, 공유경제 알리기, 시민이 직접 불편한 점을 서울시에 신고하는 DIY시티 모바일 앱 제작, IT 여성 모임 조직, 오픈소스 개발자 바캠프 등 여러 분야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도대체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 “어떤 사람이 힘들거나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고민을 쉽게 털어놓을 수 있는 후보에 오르는 편한 사람이면 좋겠어요.” 생각보다 단순하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그럼 이 모든 활동이 돈을 벌기 위한 게 아니라 누군가의 멘토가 되기 위해서란 얘기일까.

그가 운영하는 공간인 코업을 보자. 하루 1만원, 한달 24만원 이용료를 받는다는데 수익사업이라고 보기 어렵다. 활동도 마찬가지다. 팟캐스트 ‘뜨거운 감자’‘내가 니 앱이다’가 그에게 돈을 벌어주기에는 빈약해보인다. 그가 조직한 여러 모임도 사정은 비슷하다.

“대부분 제가 봉사활동을 하거나, 코업이 사회적기업인 줄 알고 있지요. 저는 다른 사람을 돕고, 다른 사람들은 저를 도와 아무런 연고가 없는데 이렇게 하는 게 재미있고 즐거워요.” 최근 그가 꾸준하게 트위터와 코업 웹사이트에 포스팅하는 ‘공유경제’를 자기 생활에 적용한 듯한 모습이다.

코업
▲ 코업

서울 논현동에 있는 코업


그의 지식 나눔에는 평일과 주말이 없다. 트위터와 코업 웹사이트에서 그는 자기가 아는 국내외 소식을 부지런히 전한다. 평일에는 이렇게 온라인으로 전하고, 주말에는 국내외 소식을 전하는 팟캐스트를 녹음한다. 노는 날은 없느냐는 물음에 사람들 만나기 어려운 주말이 심심하다고 대답한다. 취미도 따로 없단다.

코업 이장이 생각하는 자기의 자산은 무엇일까. “저는 (IT쪽) 다른 사람들처럼 카이스트나 연고대를 나오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부잣집 아들도 아니고요. 제가 가진 것이라고는 경험과 지식 뿐입니다.”

그의 경험이라는 게 거창하진 않다. 궁금한 게 있으면 부딪히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일단 시도부터 한 게 그가 말하는 경험이다. 코업을 만들기 전, 그는 2007년 휴가차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했다. 그 때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IT 회사를 찾아다녔다. 그 가운데 트위터도 있었다. 무작정 트위터 사무실 앞으로 갔다가 내부를 견학했다.

이때 비즈 스톤 트위터 창업자와도 마주쳤다. 한때 페이스북보다 인기 있던 프렌드스터도 찾아갔다. 다음해 그는 미국을 다시 찾아 휴가 때처럼 관심있는 행사만 찾아다녔다.(→참고) “‘맨땅에 헤딩한다’라는 말이 있지요. 사람들과의 관계는 맨땅에 헤딩할 때 만들어지는 것이지 어느 학교, 어느 회사라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는 '맨땅으로 헤딩해' 얻은 관계와 지식을 사람들에게 전파하기로 했다. 미국에서 1년 남짓 지내고 한국으로 돌아오며, 사회적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더허브’를 만들 생각을 품었다. 더허브는 지금의 코업처럼 공간을 나눠쓰고 관계를 쌓고 정보를 나누는 곳이다.

“제가 발견한 걸 더 많은 사람이 현장에서 쓰면 좋겠어요. 바닥에서 시작하더라도 나누고 도우면 사회적 자본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올해 3월, 그는 코업 이장으로서 딱 2년을 채웠다. 2년 전에 혼자 시작했는데 여전히 그는 혼자서 코업을 맡고 있다. 혼자라서 외롭다고 푸념을 늘어놓을 법하지만, 그는 코업의 미래를 걱정하는 눈치다. “지금은 코업이 아니라 이장이 중심에 있는데, 이게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입니다. 제가 없어도 코업이 있을까요. 코업이라는 시스템과 커뮤니티를 공고하게 만들지 못한 게 지난 2년간의 실수인 것 같아요.”

그는 2008년을 끝으로 직장 생활을 뒤로 하고 코업 이장으로서 줄곧 자기 지식을 나눴다. 그리고 이제 공유 정신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 모으고, 그들이 꿈을 이루도록 돕기를 자처한다.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는 3월1일 ‘코업쉐어프로그램’ 발대식을 진행했다. 코업쉐어프로그램은 나눔에 관심이 많은 10개 팀을 1년간 3번 선발해 성장을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참가자는 예비 창업가, 주부, 조합을 만들려는 사람 등 다양하다.

코업 홈페이지 ‘코업 대학’ 카테고리에 방문하면 ‘배워서 남주자’라는 문구가 보인다. “제가 가진 것을 나누지 않고서 다른 사람들에게 제 가치를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그의 말마따나 나눔은 내 가치를 높이고, 남들을 도우니 1석2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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