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KTH를 보면 재미있다. 개발자 블로그는 연일 국내외 신기술을 소개하고, 해외 콘퍼런스 견학기까지 공개한다. 2011년 11월엔 개발자 콘퍼런스 'H3'을 열었는데, 모든 연사를 KTH 개발자와 디자이너로 꾸렸다. 새로운 서비스는 모바일 응용프로그램(앱)에 집중해 신생 벤처회사가 내놓을 법한 아이템으로 가득하다. 위치기반 사회관계망 서비스(SNS) '아임IN', 사진 SNS '푸딩.투', 카메라 앱 '푸딩카메라', TV프로그램 SNS 'TV토커스' 등 다양한 모바일앱을 2009년 11월, 아이폰이 국내에 도입되기 전부터 내놨다. KT라는 대기업의 냄새보다 벤처의 향기가 더 진하게 느껴진다.

박태웅 KTH 부사장도 "우리는 벤처"라고 말한다. "엄격하게 따지면 벤처보다 속도에 밀리지만, 그래도 다른 기업보다는 움직임이 민첩한 편입니다."

박태웅 KTH 부사장
▲ 박태웅 KTH 부사장

▲박태웅 KTH 부사장. 전략/지원부문장


소속은 KT이지만, 경쟁상대는 벤처 문화가 강한 구글과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이란 뜻일까. 그런데 KTH의 경쟁상대가 벤처라니,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대기업 자회사로, 용역을 대신 도맡고, 포털 서비스 '파란'을 서비스하는 곳으로 알던 KTH 아니던가. 따지자면 NHN과 다음커뮤니케이션, SK커뮤니케이션즈 등 포털 기업을 경쟁상대로 꼽아야 맞다.

KTH는 2009년부터 스스로 '스마트 모바일 컴퍼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제 웹 시대는 가고 모바일이 대세가 될 것이라는 서정수 대표의 판단에 따랐다. 팀장급이 워크숍에서 '우리는 무엇으로 살 수 있을까'란 난상토론 끝에 나온 결론이 '웹에선 기회가 없다'였다고 한다. "이미 네이버와 다음으로 질서가 굳었고 아이폰이 국내에 출시되기 전인 상황에서 10년에 한 번 온다는 빅뱅은 모바일에서 온다고 생각했다"라고 박태웅 부사장은 당시를 떠올렸다.

이때부터 KTH는 다양한 모바일 앱을 쏟아냈다. 지금은 서비스하는지도 모를 음악추천 앱부터 최근 출시된 푸딩.투까지 KTH는 스마트폰 앱 전문 스타트업 같은 모습이었다. 그간 출시한 앱 10개 중 8~9개가 첫날 전체 1등을 기록할 정도였다. 내부에서는 100만 다운로드를 달성한 앱도 서비스를 중단할 정도로 굴곡 많은 모험을 거쳤다.

박수칠 만한 성과이지만, 질보다 양으로 승부한 것처럼 보인다. 조바심 났던 것도 같다. "스마트 모바일의 변곡점이 머지 않았다고 생각했어요. 2009년 '스마트 모바일 컴퍼니'로 회사 기조를 정한 때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1년 반 정도라고 판단했으니까요. 그래서 작고 빠르게, 전속력으로 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서비스간 연계와 시너지를 생각할 새가 없었습니다."

너무 서두른 탓일까. KTH가 출시한 앱들은 각기 다른 회사에서 내놓은 것인 마냥 회원 통합도 안 됐고 서비스 연동도 제대로 구현되지 않았다. 박태웅 부사장은 "KTH는 인력의 질과 양, 자본 등 모든 면에서 웹에서의 강자보다 뒤처지지만, 속도로 선점하는 민첩성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라며 '각자 전속력으로 달려서 알아서 살아남으라'가 전략이었다고 설명했다. 몸집은 대기업이되, 작은 조직으로 움직이자는 게 지난 3년간 KTH가 걸어온 길인 것이다. "충분히 작아지고 민첩해지지 않으면 살아남을 길이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박태웅 부사장은 내부 조직은 작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부에서 그동안 거둔 성과는 나쁘지 않다고 평가하는 모양이다. 모바일 사진 서비스와 LBSNS를 이야기할 때 어느샌가 KTH라는 이름이 보이더니 이젠 모바일을 이야기할 때 KTH가 자연스레 등장한다. 아임IN과 아임IN핫스팟, 푸딩얼굴인식, 푸딩.투, 푸딩 등 KTH가 강세인 분야도 생겼다. 포털 틈에 끼어 있다가 모바일로 넘어오니 물 만난 물고기가 됐다. "경쟁자가 없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말하겠지만, 인스타그램과 포스퀘어가 한국에서 힘을 못쓰지만, 우리 서비스는 가입자 중 실제 이용자가 60%를 넘는다"라고 박태웅 부사장은 목소리를 높였다.

긴 자랑을 들었지만, 그간 주력한 서비스에서 아직 이렇다 할 매출은 발생하지 않고 있다. KTH가 낸 서비스는 죄다 무료로 나온 데다 광고도 없다. "산업 성장기에는 시장 점유율이 중요하고 성숙기에는 마른 걸레라도 쥐어짜서 효율성을 높여 영업이익을 내야 하는데, 지금은 성장기"라며 박태웅 부사장은 아직 모바일에서 매출에 신경쓸 단계는 아니라고 말했다. 당장 KTH가 모바일 매출에 목말라 할 때도 아니라고 덧붙였다. 매출 대부분이 영화와 애니메이션, TV 시리즈 등 영상 지적재산권을 바탕으로 한 판권 계약에서 발생하는 가운데 모바일은 KTH가 앞으로 가야 하는 길이지, 급하게 흔들어 매출을 낼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앱스프레소'를 출시한 것도 생태계부터 만들자는 뜻에서였지, 매출을 따지려는 게 아니었다. KTH는 지난해 12월 HTML5 기반 모바일 앱 개발 도구인 '앱스프레소'를 무료로 공개했다. '왜 KTH는 돈 안 되는 것만 하나?'란 의문이 들었지만, 지금은 '생태계를 꾸리는 중'인 셈이다. 앱스프레소는 아쉽게도 모회사인 KT가 비슷한 저작도구 '모벨로'를 만들어 오픈소스로 공개하며 빛이 바랬다.

KTH는 '웹에선 기회 없다'란 기조를 3년간 꾸준히 유지하며 내부 조직도 벤처에 가깝게 만들었다. 사업 기획할 때 예산을 먼저 배정받는 절차를 없앴다. 먼저 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대리이든 과장이든 직급에 상관없이 PM을 맡겼다. 사내에서 작성되는 모든 문서는 모두가 공유한다. 일주일에 두 번 진행하는 사내 교육 내용은 야머에 정리해 올린다. 이 문화는 서비스에 관한 소스를 깃허브에 올리는 모습으로 이어졌다.

이는 박태웅 부사장이 실현하고 싶은 꿈이자, 서정수 대표의 철학이기도 하다. 박태웅 부사장은 "제대로 된 소프트웨어 회사 문화를 만들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10여년 전 기자 생활을 뒤로하고 IT에 입문한 이후 종종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이 꿈을 조금씩 내비쳤다. IT인으로 10년 이상 지냈겠다, 연륜도 쌓였겠다, 이젠 '하고 싶다'란 말만 하던 때와 달리 조금씩 실마리도 보인다고 한다.

"제 나이 올해 쉰인데 후배들에게 이바지할 방법은 바로 제대로 된 문화를 만드는 것 아닐까 라고 생각했어요. 한국의 IT 회사에서 개발자뿐 아니라 디자이너나 기획자는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한 명씩 떼어놓고 보면 실리콘밸리 못지 않은 인재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최대한 이상적인 모습에 가깝게 운영해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사내 문화를 만들자는 서정수 대표와 뜻이 맞고, 스스로 경험도 쌓였고, 점차 방법도 알겠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다고 박태웅 부사장은 말했다. KTH가 상장까지 마친 대기업이라는 점 때문이다. 투자를 유치해 회사를 쑥쑥 키워가지 못하고, 젊고 유능한 직원들에게 스톡옵션을 주려 해도 이미 상장한 터라 크게 쓸모가 없는 게 못내 아쉬운 모양이다. KTH가 국내 소프트웨어 인력들이 '가고 싶은 회사'로 자리매김하는 게 곧 그가 꿈을 이루는 순간이 되겠다.

"내년까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실패라고 봐야 합니다. KTH가 문화만 좋다고 평을 받아선 안 되니까요. 지금은 '노력한다'라고 인정은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KTH에서 직원들이 노력한 결과를 구체적인 성과로 연결하고 직원들이 제대로 보답받게 하는 게 제 몫이고 가장 큰 책무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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