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 입사한 지 9년째입니다. 9회말 투아웃, 풀카운트 상황에서 다음TV를 출시했습니다."

정영덕 다음TV 대표는 지난 4월20일 열린 다음TV 출시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긴장한 모습이었지만, 곧바로 "해외로 진출하고 싶다"라는 포부를 덧붙이며 자신감도 드러냈다. 출시 한 달이 지나고 만난 정영덕 대표는 피곤해 보였다. 하지만 9회말 투아웃 풀카운트에서 승점이 날 것으로 예감하는 눈치였다.

정영덕 대표는 "한 달 새 너무 바빴다"라며 입을 뗐다. 하이킹, 여행이 취미인데 지금은 다음TV 보기로 바꿨을 정도란다. "유통사에서 셋톱박스를 5천대씩 판 사례가 없지요. 다음TV는 유통 쪽에 납품하고 현금을 확보한 상태인데요. 인기가 좋으니 다 가져가는 것 아니겠어요."

정영덕 다음TV 대표
▲ 정영덕 다음TV 대표

▲정영덕 다음TV 대표


다음TV는 다음커뮤니케이션(이하 다음)과 가온미디어, 크루셜텍이 2011년 3월 합작 설립한 회사로, 4월30일부터 셋톱박스형 스마트TV '다음TV플러스'를 판매했다. 다음은 스마트TV 플랫폼인 '다음TV'를 개발, 운영하고 가온미디어는 셋톱박스, 크루셜텍은 리모콘 제작을 맡았다. 출시 한 달 만에 다음TV플러스는 5천대가 팔렸고, 이마트와 옥션 등 유통회사에는 총 1만대가 납품됐다.

다음TV와 다음TV플러스를 두고 IPTV와 비교하면 콘텐츠가 부족하고, 삼성과 LG전자의 스마트TV와는 서비스에서 딱히 차별점이 없다는 비판도 있다. 정영덕 대표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콘텐츠 수급은 금세 IPTV를 따라잡을 수 있고, 스마트TV 중 인터넷 이용 속도는 다음TV가 가장 빠르다는 게 이유였다. 현재 다음TV엔 EBS의 '지식채널e', '다큐프라임', '원더풀사이언스', '극한 직업' 등 방송 3천여편, KBS의 'TOP밴드2', '안녕하세요', 유럽프리미엄리그, 스포츠 중계센터 등 주로 교육과 스포츠, 어린이 콘텐츠가 있다.

"드라마 다시보기가 없는 점을 많은 이용자분들이 아쉬워하세요. IPTV 대비 VOD 콘텐츠가 부족한 건 약간 아쉽습니다. 하지만 한 달 만에 콘텐츠가 3배 늘었고 분량이나 질도 점점 좋아지고 있어요. IPTV도 초기엔 콘텐츠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다음TV도 어느 순간 VOD 콘텐츠가 IPTV와 비등한 때가 올 겁니다."

사실 정영덕 대표가 TV쪽 사업을 맡은 지는 오래됐다. 다음은 2006년 IPTV 시범서비스 사업을 하겠다고 신청서를 내밀었고, 2008년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셀런과 '오픈IPTV'를 발표했다. 정영덕 대표도 그때 다음의 컨버전스사업팀장으로서 사업 진행을 맡았다. 10년 가까이 다음에서 'TV 사업 도전'을 맡은 셈이다.

"처음 다음에 입사하고 '유비쿼터스 시장을 분석하라'는 미션을 받았어요. 그땐 DMB, 디지털TV 초창기였는데 모바일, MVNO, 게임 콘솔, 전자책 등 다양한 분야를 살폈습니다. 그러다 디지털TV의 'TV윈도우'라는 개념에 꽂혔어요. 이쪽을 파겠다고 결심한 거지요. 그리고선 삼성전자, LG전자와 제휴를 이끌었습니다. 두 회사는 2003년과 2004년 다음과 일했던 경험을 지금도 활용한다고 듣고 있어요."

다음TV플러스와 리모콘
▲ 다음TV플러스와 리모콘

▲다음TV플러스와 리모콘


인터넷과 연결되는 다양한 기기 가운데 왜 TV에 끌렸을까. "콘텐츠 소비 측면에서 보면 TV라는 윈도우가 가장 매력적이에요. 당시 한 연구자료에서 '집에 있는 창(윈도우)의 크기와 만족도는 비례한다'라는 글에 공감했는데 저도 TV도 클수록 좋다고 생각해요. 시청자와 소통하는 윈도우가 클수록 할 수 있는 게 많고, 시청자에게 미치는 영향도 크지요.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TV광고가 가장 비싼 것도 이유가 있는 겁니다."

모바일은 화면 크기가 작아 제약이 있지만, PC용 웹에서는 화면 구성부터 광고 배치까지 모바일보다 좀 더 자유롭다. TV 화면은 더 크니, 콘텐츠 사업자는 다양한 시도를 할 여지가 더 많아진다는 이야기다. 물론 TV에서 PC로, PC에서 모바일로 흘러가는 추세이지만, 그 흐름이 다시 TV로 돌아온다고 정영덕 대표는 강조했다. "콘텐츠도 이용자가 만든 콘텐츠(UCC)에서 여의도나 CJ E&M이 만드는 콘텐츠(RMC)로 넘어가고 있어요."

정영덕 대표는 여전히 다음의 컨버전스사업팀장이다. 다음이야 사람들이 콘텐츠 소비 행태가 TV-PC-모바일-TV로 변화해도 흔들리지 않도록 3가지 스크린 모두 서비스하는 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회사가 아닌 개인으로서 정영덕 대표는 TV를 어떻게 바라볼까.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TV는 가장 민주적인 플랫폼입니다." 노인이든 아이이든 누구나 쓸 수 있고, PC나 피처폰, 스마트폰보다 빈부의 격차를 따지지 않는 특징이 있다는 이야기다.

"전세계 1억대의 데스크톱과 2억대의 휴대폰, 10억대의 TV가 있다고 합니다. PC를 쓰려고 하면 키보드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하고, 휴대폰은 적어도 초등학교 3학년 이상이어야 쓰기 시작합니다. 저는 사람들이 채널을 돌리고 또는 VOD를 보다가 조금 더 똑똑하게 사용하는 TV를 만드는 데에 도움을 주고 싶어요."

2013년 1월1일이면 지상파 방송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바뀐다. 디지털 TV 수상기나 안테나가 없으면 이제 TV를 보기 어렵게 되는데 다음TV는 디지털TV 수상기 역할도 해낸다. 케이블TV나 위성TV, IPTV를 신청하지 않아도 가로·세로·높이 10cm인 다음TV 셋톱박스로 스마트TV와 디지털 지상파 방송 보기가 가능하게 한 건 정영덕 대표의 'TV는 민주적인 플랫폼'이라는 철학과 맞닿는다.

다음TV는 스마트TV 시장에 뛰어들며 IPTV와 케이블방송 대신 일체형 스마트TV를 내놓은 기존 사업자를 겨냥했다. 사람들은 TV를 한 번 사면 10년 이상 사용하는데 다음TV는 셋톱박스 형태가 가격 부담을 덜면서 최신 스마트TV 서비스를 쓰게 한다는 장점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그의 바람은 다음이 강조하는 N스크린 전략과 잘 맞아떨어진 모양이다. 다음은 2008년 IPTV 사업자 선정에서 쓴 잔을 들이켰는데 또 다시 TV사업에 출사표를 던졌다. 만약 당시 다음이 IPTV 사업자로 선정됐거나, 혹은 IPTV 사업자로 선정되지 못해 TV사업에서 관심을 거뒀다면 다음TV는 존재할 수 있었을까. 정영덕 대표는 고개를 저으며 "TV시장이 스마트TV로 움직이는 흐름을 당연히 포착했을 것이고, '스마트IPTV'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첫 발을 뗐습니다. 감회가 새로운데요. TV에 혁신을 가져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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