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보다는 너와 나. 둘보다는 우리. 연대는 나 하나 보다 우리가 더 큰 힘을 낼 수 있다는 믿음을 먹고 산다. 연대는 때로는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 전달하는 힘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연대는 이익집단보다는 더 나은 삶을 위한 모임에 더 어울린다.

김종득 개발자가 게임 개발자를 모아 게임 개발자 연대를 조직 중이다. 이름도 정해졌다. '게임개발자길드'. '길드'는 사전적으로 조합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MMORPG 속 게이머 집단을 가리키는 말로도 많이 쓰인다. 게이머가 길드를 만들어 게임을 함께 풀어나가듯, 게임 개발자도 힘을 모아 목소리를 내겠다는 뜻이다. 게임 개발자 연대 다운 이름이다. 99년부터 게임 개발자 길을 걸어온 김종득 개발자가 수년 동안 구상한 계획 중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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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업계에 종사하는 개발자가 가진 내부적인 문제가 많습니다. 그리고 게임 개발자와 관련 있는 게임 업계의 외부적인 문제도 있죠. 여러가지 문제가 있는데, 그런 것을 하나로 묶어서 얘기할 수 있는 단체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게임 개발 업계 내부 문제는 게임 개발자가 놓인 개발 환경에 관한 얘기다. 직장 내 성희롱, 급여체납 문제, 불평등한 고용관계나 불합리한 초과근무가 여기 해당한다.

김종득 개발자는 게임개발자길드 조직을 준비하는 동안 게임 개발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도 있다. 얼마나 많은 개발자가 부당한 환경에 놓여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결과는 의외였다. 여성 게임 개발자 3명 중 1명이 직장에서 성희롱을 당했다고 대답했고, 남성 피해자도 상당수였다. 100명 중 4명꼴로 당한 적이 있다고 대답한 임금체납문제는 더 말해 뭣하랴.

물론 이 같은 문제는 게임 업계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우리 사회 전체가 신경써야 하는 그늘이다. 그동안 게임 개발 업계에서는 이 같은 문제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창구가 부족했다는 점이 문제다. 게임개발자길드가 그 역할을 대신 하겠다는 것이다.

외부적인 문제란 게임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을 뜻한다. 언론이나 정부, 정부와 관련된 단체가 게임에 쏟아내는 온갖 질 나쁜 평가가 여기 속한다. 청소년 학교폭력 문제를 게임에 전가한다거나 집단 괴롭힘, 자살, 더러는 살인 사건을 게임과 연관시키는 현상 말이다. 게임 업계가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면, 온갖 사회 문제를 게임이 그대로 떠안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게임개발자길드는 앞으로 게임 업계 안팎에서 게임 산업을 병들게 하는 문제와 투쟁할 예정이다.

"이미 있는 게임과 관련된 협회나 단체는 정부 정책에 강력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처지입니다. 사실상 'G스타' 등 행사를 짜는 것이 역할의 전부죠. 그도 그럴 것이 정부산하 단체에서 예산을 받거든요. 게임개발자길드의 우선적인 목표는 재정적인 독립입니다."

지난 7월 한국게임산업협회가 K-IDEA(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로 이름을 바꿨다. 그동안 게임 업계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는데, 그나마 이름에서 '게임'이라는 말까지 빠졌다. 게임 업계는 반발했지만, 잃어버린 이름은 돌아오지 않았다. K-IDEA가 정부의 입김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반대로 게임 업계의 목소리를 얼마나 잘 대변해줄 수 있을까. 기존 게임 업계 관련 협회를 두고 회의적인 평가를 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 여기 있다.

게임개발자길드는 그래서 재정적으로 정부와 독립해 권력을 담보받을 계획이다. 출범 초기에는 이미 성공한 게임 개발자나 게임 업체 대표로부터 도움을 받을 예정이다. 다행히 많은 게임 개발자가 김종득 개발자와 뜻을 지지했다. 지난 8월 둘쨋주에는 강남역 근처에서 모여 한 차례 의견을 나누는 자리도 가졌다.

게임개발자길드는 참여를 원하는 게임 개발자의 월 회비로 운영된다. 국내 전체 게임 개발자 수는 10만여명이다. 아직 월 회비를 얼마로 할 지는 더 논의해야겠지만, 1만원이라고 가정했을 때 전체 게임 개발자 중 1%만 가입해도 한 달에 1천만원을 운영할 수 있는 단체가 된다. 10명 중 1명이 게임개발자길드 회원이 되면 어떨까. 정부단체나 특정 업체로부터 재정적으로 완전히 독립돼 운영되는 연대를 만드는 것이 꿈같이 먼 얘기로 들리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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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dg_slide_1_500

김종득 개발자가 8월 초 실시한 게임 개발자 대상 설문조사. 총 1201명이 설문에 참여했다.


가만 보니 게임개발자길드는 게임 업계 전체를 아우르는 일종의 산별노조가 아닌가. 하지만 김종득 개발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게임개발자길드의 최종 형태는 일반적인 노조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한다는 게 김종득 개발자의 목표다.

"노조는 내부문제에는 강력하게 대응할 수 있겠지만, 게임의 인식을 바꾸기 위한 운동이나 단체 교섭에는 의외로 약할 수 있습니다. 노조에 외부의 부정적인 시각이나 색깔이 입혀진다든지 하는 문제가 있을 수 있거든요. 게다가 게임 개발자는 우리가 '화이트칼라 노동자'라는 인식도 약한 편이고요."

바꿔 말하면, 게임개발자길드는 노동자의 삶과 게임의 인식을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게임 개발 노동자를 위한 협회인 셈이다.

게임개발자길드는 아직 출범 전이다. 구체적인 활동 계획이 짜인 것은 아니다. 다만 얼개는 마련돼 있다. 내부적으로는 업계의 불공정한 계약 관례를 정리하기 위해 노력할 예정이다. 연봉을 13분의 1로 쪼개 주는 것이나, 퇴직자 퇴직금 정산 문제가 대표적이다. 추가 수당, 야근 수당을 연봉에 포함하는 포괄임금제도도 자세히 뜯어봐야 한다.

게임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활동으로는 게임을 올바르게 이용할 수 있도록 캠페인을 벌이는 일을 계획하고 있다. 지금까지 게임은 별도의 교육이 필요 없다는 인식이 일반적이었다. 앞으로는 게임이 가진 긍정적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이용 가이드가 필요하다는 게 김종득 개발자의 생각이다. 게임개발자길드의 모든 활동은 게임 개발자가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인간의 모든 삶에는 정치가 있다고 말이죠. 국가적인 정치도 있고, 작게는 회사 안에서도 정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자기가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느꼈을 때는 명확하게 의사를 전달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게임 개발자)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삶은 정치고, 정치의 기본은 연대다. 게임개발자길드에 내는 한 달 회비가 아깝지 않도록 정당성을 확보하는 일. 게임개발자길드가 앞으로 어떤 정치를 보여주느냐에 달렸다. 김종득 개발자는 늦어도 9월 말이나 10월 초에는 게임개발자길드를 출범시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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