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 '4대 악' 탈을 썼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10월7일 가진 교섭단체 대표연설문에서 게임을 이른바 '4대 중독물'로 분류한 것이다. 게임과 함께 4대 악에 이름을 올린 것은 술과 마약, 도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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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여 대표의 연설문 속에는 게임을 보는 사회의 감정적인 시각이 많이 포함돼 있다. 게임을 술과 도박, 심지어 마약과 똑같은 수준에서 평가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황우여 대표의 발언으로 게임 개발자는 은밀히 마약을 만들어 파는 범죄자와 똑같은 선에 서게 됐다. '묻지마 살인'이라는 자극적인 설명으로 게임을 규정했다는 점도 참담하다. "이 사회를 악에서 구해야 한다"라는 대목에서는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떠올랐다.

황우여 대표는 "중독자 가족과 사회 전반에 심각한 폐해를 초래하고 있다"라며 "최근 게임에서처럼 그냥 죽여보고 싶었다는 '묻지마 호기심 살인'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심지어 한 중학생은 컴퓨터게임 하는 것을 나무란다는 이유로 어머니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은 현실과 가상세계를 구별하지 못하는 게임 중독의 비극"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내에서 게임은 특히 나쁜 역할을 담당했다. 학생의 학업 성적을 떨어뜨리는 주범으로, 때로는 중독을 일으켜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갈 수 없도록 하는 약물과 같이 취급됐다. 게임 셧다운제가 도입된 것도 게임을 바라보는 사회와 국회의 이 같은 일관된 부정적인 시각 덕분이다.

황우여 대표는 연설문에서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4대 중독환자는 알코올 218만명, 인터넷 게임 47만명, 도박 59만명, 마약 중독 9만명으로 국내 인구 중 6.7%인 333만여명에 달한다"라며 "이 나라에 만연된 이른바 4대 중독, 즉 알콜, 마약 그리고 도박, 게임중독에서 괴로워 몸부림치는 개인과 가정의 고통을 이해, 치유하고 환경을 개선함으로써 이 사회를 악에서 구하여야 한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게임 중독, 근거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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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실린 연설문인 만큼 게임이 중독을 불러일으킨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희박하다.

황우여 대표의 게임 4대 악 연설문은 지난 4월30일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에 뿌리를 둔다. 신의진 의원이 발의한 법안의 게임 중독 연구 결과는 지난 2010년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실시한 '2010 인터넷 중독 실태조사'를 토대로 삼고 있다.

문제는 인터넷 중독 실태조사 자료에 나타난 게임 중독 현황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이다. 인터넷 중독과 게임 중독을 혼용해 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중독과 게임 중독이 마치 같은 것인 양 설명하고 있다는 얘기다.

황우야 대표는 연설문에서 "중독 인구는 국내 인구 중 6.7%인 333만명"이라며 "인터넷 게임 47만명"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넷 중독과 인터넷 게임 중독을 혼용한 설명이다.

현재 게임개발자연대 설립을 추진 중인 김종득 게임 개발자는 "게임 중독에 관한 과학적 조사나 통계자료가 명확하지 않고, 혼용하거나 오용하는 사례가 많다"라며 "이것을 근거로 삼는 것은 문제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조직적인 게임 압박

게임 업계는 게임의 중독성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게임 중독에 과학적인 접근을 통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논의해야 한다는 게 게임업계의 입장이다.

황우여 대표의 이 날 연설은 그동안 이어져 온 정부의 계획적인 게임 압박과 관계가 깊다. 지난 1월 손인춘 새누리당 의원은 '게임 중독 예방에 관한 법률'과 '게임 중독 치유에 관한 법률'을 발의한 바 있다. 석 달이 지난 4월에는 신의진 의원이 '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두 의원이 발의한 각 법안을 보면, 서로 겹치는 부분이 많다. 이를테면, 손인춘 의원은 게임의 '중독유발지수'를 평가할 수 있도록 해 영업을 정지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바 있다. 신의진 의원은 '중독유발물질'이라는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숫자로 게임을 규제하겠다는 얘기다.

게임 업계 관계자는 "두 법안이 서로 연관된 것 같다"라며 "여기에 황우여 여당 대표까지 나서서 이를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꼴"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국회 제출된 법안은 검토와 회의를 거처 비슷한 법안끼리 묶이고 통폐합된다. 손인춘, 신의진 두 의원이 발의한 3개 법안도 앞으로 국회 심사를 통해 서로 통합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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